[풋볼리스트=전주] 김정용 기자= 이동국의 축구 실력은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다는 점에서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과 동급이다. 오히려 이동국은 경기를 읽는 눈과 패스 능력을 키웠고, 전북에서 가장 중요한 교체 카드로 활약 중이다.

1일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전주 월드컵경기장에서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공식 개막전을 가진 전북이 울산현대에 2-0으로 승리했다. 이동국은 후반 15분 교체 투입돼 1분 뒤 K리그 전체 첫 골을 터뜨렸다. 후반 40분에는 도움도 기록했다.

 

28분당 한 골, 놀라운 득점력

이동국은 현재까지 공식 경기에 세 번 교체 출장해 4골을 넣었다.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2경기에서 3골, K리그1 1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선발로 뛰는 선수들도 힘든 경기당 한 골이다. 겨우 세 경기 기록이므로 앞으로 점점 떨어질 것이 확실시되지만 아직까지는 28분당 한 골을 넣고 있다.

탁월한 득점 감각과 함께 운도 따랐다. 이동국은 울산전에서 경기에 투입된지 단 1분 만에 첫 슛으로 골을 넣었다. 이재성이 올린 코너킥은 양팀 선수들이 뒤엉켜 경합하는 곳을 그냥 지나쳐 가장 먼 쪽에 있던 이동국에게 전달됐다. 이동국 자신도 “위치선정도 좋았지만 운이 좀 따랐다”고 말했다.

 

중요한 순간에 빛나는 스타의 본능

K리그 최고 스타인 이동국은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골을 넣는 스타 기질을 갖고 있다. 울산을 상대로 넣은 선제골은 이번 시즌 프로축구 전체 첫 골이다. 동시에 열린 수원삼성과 전남드래곤즈의 경기에서 전남의 완델손이 넣은 골보다 9분 빨랐다. K리그 개막 축포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시즌에도 이동국은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넣었다. 지난해 10월 29일 제주유나이티드와 가진 홈 경기는 K리그 우승을 걸고 겨루는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에는 전북의 우승 이야기만큼이나 이동국 한 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쏟아졌다. K리그 최초 200골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언론과 축구 팬들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경기에서 기록을 달성하며 주목 받을 줄 아는 남자라는 걸 잘 보여줬다.

2016년 하반기부터 선발 멤버가 아닌 ‘슈퍼 서브’로 보직이 바뀌자, 이동국의 큰 경기 활약상은 더 좋아졌다. 원래 이동국은 큰 경기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부상 등 불운 때문에 큰 경기를 앞두고 컨디션 난조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2016년 ACL 결승전에서 도움을 기록하며 전북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10골 중 4골을 막판 상위 스플릿 경기에서 강팀 상대로 몰아쳤다. 그 외에도 FC서울, 수원삼성 등 전북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팀을 만날 때 유독 활약했다.

이동국처럼 주전급 기량을 가진 선수가 벤치에서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경기 흐름을 전북 쪽으로 가져온다면 그만큼 이상적인 교체 멤버는 없다. 이동국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비교적 이른 시간에 교체 투입돼 30분 이상을 소화하는 경우가 많다. 축구의 서브 멤버보다 농구의 식스맨에 가까워 보이는 높은 위상이다.

 

이동국의 전술적 가치

최강희 전북 감독은 지난해 “코치들이 자꾸 투톱 하지 말라고 반대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최 감독은 화려한 스트라이커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 하지만, 팀의 완성도를 생각한다면 공격수를 한 명으로 줄이고 2선 자원을 더 투입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전북의 2선 역시 공격진 못지않게 화려하기 때문에 원톱을 쓴다고 딱히 공격력이 감소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최 감독은 “홈에서는 강하게 나가야 한다”며 올해 개막전부터 공격수를 두 명 기용했다.

김신욱과 아드리아노의 조합은 기대한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우려대로 전북의 경기 장악력이 떨어졌다. 장신 공격수 김신욱과 기민한 아드리아노는 고전적인 ‘빅 앤드 스몰’ 조합에 가깝다. 그러나 둘 중 미드필더 성향을 갖고 경기를 풀 줄 아는 선수가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울산이 밀집수비를 할 때 빈 공간을 찾아내고 공략할 줄 아는 선수가 없었다.

김신욱, 아드리아노, 이동국 중에서는 오히려 이동국이 가장 지능적이고 세련된 경기 스타일을 갖고 있다. 원래 다재다능했던 이동국은 경력이 쌓이면서 점점 노련해졌다. 이젠 과거만큼 상대 문전에서 수비수들과 몸싸움을 하지 않는다. 대신 미드필드로 자주 내려가 적재적소에 패스를 배급하는 역할을 한다. 울산을 상대할 때도 이동국이 투입되자 김신욱에게 가는 패스의 질이 좋아졌다.

‘빅 앤드 스몰’은 약간 구식 조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투톱을 쓰더라도 한 명은 득점력뿐 아니라 골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겸비해야 더 세련된 경기 운영이 가능하다. ‘창조자와 습격자’라고 부르곤 하는 조합이다. 이동국은 2011년 K리그 도움왕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계 플레이에 능숙한 원톱이었고, 지금은 눈치와 재치가 더 늘었다. 장신 공격수처럼 보이지만 은근히 경기를 운영할 줄 안다는 점에서 한때 잉글랜드 대표팀과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테디 셰링엄과 비교할 수 있다. 셰링엄이 맨유의 러브콜을 받으며 기량을 새삼 인정받았던 시기도 이동국처럼 30대 노장이 된 이후였다.

이동국은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한다는 점을 장점으로 바꿨다. 선발로 뛰는 선수들보다 더 차분하게 경기 흐름을 분석하고, 전북 플레이 중 무엇을 개선해야 하는지 유심히 살핀다. 그러다가 교체 투입되면 동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주며 이후 전북의 공격 방향을 조정해 나간다는 것이 이동국의 설명이다. “왜 스트라이커가 공을 못 받고 있는지, 왜 찬스가 안 나는지, 대화가 안 돼서 그런 건지, 그런 점을 중점적으로 본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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