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한때 국내 축구 팬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축구 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의 팀이 망가지고, 그가 조롱의 대상이 된 모습을 보는 건 누군가에겐 슬픈 일이다. 이스널을 떠날 거라는 이야기가 진지하게 나오고, 이번엔 진짜일지도 모른다. 작별의 예감이 드는 지금, 아스널이 아직 멋졌던 시절의 기억을 소환해보려 한다. 벵거의 행복한 시간, 일명 벵행시 속으로 들어가 보자. 

2003/2004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무패 우승과 이듬해 FA컵 우승 이후 아스널은 긴 무관의 세월을 보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맨체스터시티, 첼시 등이 번갈아 가며 EPL 우승을 차지하는 사이 아스널은 4위권을 유지하는 팀이 되어버렸고, 컵대회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13/2014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스널에 기대치는 낮았다. 안드레이 아르샤빈, 제르비뉴, 데닐손 등이 팀을 떠났지만 영입한 선수는 어린 유망주 야야 사노고 뿐이었다. 오랜 기간 애정을 갖고 아스널을 응원하던 팬들도 구단과 아르센 벵거 감독에 대한 인내심에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한 뒤 아스널은 메수트 외질을 영입하며 팬들을 놀라게 했고, 결국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9년만에 무관에서 탈출했다.

 

# ‘시작은 좋았으나…’ 희망고문으로 끝난 아스널의 EPL 우승 도전

아스널의 2013/2014시즌 시작은 악몽이었다. 홈에서 열린 EPL 개막전 아스톤빌라와 경기에서 시작한 지 5분 만에 올리비에 지루가 골을 넣으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지만 이후 페널티킥으로 2골을 실점하며 흔들렸다. 키어런 킵스의 부상과 로랑 코시엘니의 퇴장까지 겹치며 한 골을 더 내주고 1-3으로 패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뚜렷한 영입이 없던 데다 첫 경기부터 패하자 벵거 감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높아졌다.

1라운드 패배로 가라앉았던 분위기는 2라운드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풀햄 원정에서 3-1 승리를 거둔데 이어, 토트넘홋스퍼와의 북런던 더비에서 1-0으로 승리했다. 토트넘전이 끝난 뒤에는 아스널이 외질의 영입을 발표하며 팬들을 기쁘게 했다. 선덜랜드전에서 데뷔한 외질은 곧바로 도움을 기록하며 팀에 빠르게 녹아 들었다.

아스널은 첫 경기 패배 이후 승승장구했다. 5라운드가 끝나고 EPL 1위에 오른 이후 24라운드까지 선두권을 지켰다. 상승세의 중심에는 지루와 아론 램지의 활약이 있었다. 지루는 리그에서만 16골 9도움을 올리며 확실한 득점원으로 자리매김했다. 유망주 꼬리표가 따라다니던 램지는 공격 재능이 만개하며 10골 9도움을 기록했다. 램지는 중원에서 미켈 아르테타, 잭 윌셔 등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아스널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빡빡한 연말연시 일정을 소화하고도 아스널은 EPL 선두 자리를 지켰다. 이번 만큼은 아스널이 우승을 할 수 있을 것라는 기대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25라운드 리버풀전 이후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스널은 전반 20분만에 리버풀에 4골을 실점하며 1-5로 대패했다. 1위 자리도 첼시에 내줬다. 이어진 경기에서 중위권에 처져있던 맨유와 무승부를 기록했고, 스토크시티, 첼시, 에버턴에 패하며 선두권과 멀어지고, 어김없이 4위로 리그를 마무리했다.

 

# 험난했던 아스널의 무관 탈출기

아스널은 FA컵 첫 경기부터 더비 라이벌 토트넘을 상대했다. 당시 토트넘은 로베르토 솔다도와 엠마누엘 아데바요르 투톱을 앞세워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아스널은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이었고 벵거 감독은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아스널이 어려운 경기를 펼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전반에는 산티 카솔라가, 후반에는 토마스 로시츠키가 골을 넣으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4라운드 상대는 3부 리그팀 코벤트리시티였다. 벵거 감독은 니콜라스 벤트너, 루카스 포돌스키 등을 투입하며 로테이션을 가동했고 4-0으로 가볍게 승리를 거뒀다.

5라운드에서는 아스널에게 대진운이 따르지 않았다. 며칠 전 리그에서 1-5 패배를 안겼던 리버풀과 만나게 됐다. 아스널은 리그 선두권 경쟁에 유럽대항전까지 치르느라 주전을 모두 기용할 수 없었고, 리버풀은 아스널전에서 대승을 거뒀던 선수들을 거의 비슷하게 내보냈다. 지난 리버풀전과 달리 아스널은 초반부터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2골을 먼저 넣으며 앞서갔다. 후반 중반 스티븐 제라드에게 페널티킥을 내주긴 했지만 끝까지 승리를 지켰다. 아스널은 8강에서도 EPL팀 에버턴을 만났지만 4-1로 승리를 거두며 준결승에 진출했다.

아스널의 준결승 상대는 2부 리그 팀 위건애슬래틱이었다. 위건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위건은 2012/2013시즌에 이어 FA컵 2연패를 노리고 있었고, 준결승전 전에 열린 리그 경기에서도 주전들을 쉬게 하며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아스널은 수비적으로 나온 위건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노고와 포돌스키는 수비를 뚫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수비진은 위건의 역습에 여러 차례 흔들렸다. 후반 18분에는 페어 메르테사커가 파울을 범하며 페널티킥을 허용해 선제골을 내주기도 했다.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던 메르페사커는 후반 37분 헤딩 골을 넣으며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연장전에서는 양 팀 모두 골을 넣지 못했고,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루카스 파비안스키 골키퍼가 2차례 선방을 보여주며 아스널이 결승에 진출하게 됐다.

리그 우승 경쟁에서 멀어진 상황에서 아스널이 무관에서 탈출할 방법은 FA컵 우승뿐이었다. 벵거 감독도 우승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며 최상의 선수들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다. 선제골은 경기 시작 4분 만에 나왔다. 헐시티가 먼저 골을 넣으며 앞섰다. 헐시티는 전반 8분 추가골을 넣었고 아스널의 우승 도전은 힘겨워 지는 듯 보였다. 카솔라가 전반 중반 프리킥으로 한 골을 만회하며 아스널이 경기 주도권을 잡았지만 헐시티 수비는 단단했다. 답답한 흐름이 이어진 후반 16분 코시엘니가 동점골을 넣으며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연장에도 골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고, 벵거 감독은 연장 후반 시작과 함께 로시츠키와 윌셔를 투입했다. 두 선수의 투입으로 아스널의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기 시작했고, 연장 후반 5분 윌셔와 지루가 간결한 패스로 건넨 공을 램지가 결승골로 완성하며 아스널이 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직후 벵거 감독은 아스널과 3년 재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에도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FA컵 결승전 멤버

우카쉬 파비앙스키 - 키에런 깁스, 로랑 코시엘니, 페어 메르테사커, 바카리 사냐 - 애런 램지, 미켈 아르테타 - 루카스 포돌스키, 메수트 외질, 산티 카솔라 - 올리비에 지루

(벤치 : 보이치에스 슈쳉스니, 토마스 페르말런, 나초 몬레알, 토마스 로시츠키, 잭 윌셔, 마티유 플라미니, 야야 사노고)

글= 김완주 기자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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