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레알마드리드는 아름다운 축구보다 어떻게든 승리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팀으로 바뀌었다. 라파엘 바란이 증인석에 섰다.

19일(한국시간) 스페인 레가네스에 위치한 부타르케 시립 경기장에서 ‘2017/2018 코파델레이(국왕컵)’ 16강 1차전을 치른 레알은 1-0으로 어려운 승리를 거뒀다. 앞서 3경기 동안 2무 1패에 그쳤던 레알은 코파에서도 라리가 13위인 만만찮은 상대를 만났지만 일단 무승 행진을 끊는데 성공했다.

레알의 힘겨운 승리였다. 레알은 1.5군에 가까운 멤버가 나왔다. 특히 공격수 보르하 마요랄은 이번 시즌 모든 대회를 통틀어 5득점에 그친 서눗였다. 침묵하는 마요랄 대신 동료들이 나섰다. 마테오 코바치치가 직접 공을 빼앗아 슛까지 날렸고, 프리킥 상황에서 다니 카르바할이 발리슛을 날리고, 마르코스 요렌테가 헤딩슛을 시도하는 등 모든 포지션이 득점에 가담했으나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빗나갔다.

레알의 선제결승골은 후반 44분 나왔다. 레프트백 테오 에르난데스의 날카로운 크로스를 받아 마르코 아센시오가 골을 터뜨렸다. 최근 레알을 대표하는 유망주로 성장했지만 11월 중순부터 골이 없었던 아센시오는 두 달 넘는 침묵을 깨고 팀에 승리를 선사했다.

주장 완장을 차고 동료들을 이끈 센터백 바란은 경기 후 ‘마르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레알의 현재를 잘 반영하는 발언을 했다.

“우린 다른 날보다 경기력이 나빴다. 그러나 이겼다. 경기력이 좋았던 지난번 경기는 졌다. 나는 나쁜 플레이를 하고 이기는 걸 더 좋아한다. 우리에겐 연승이 필요하다. 이번 시즌 우리 경기력은 나빠졌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이기지 못하는 경기는 즐길 수 없다. 좋은 경기력보다 승리를 거뒀을 때 우리는 더 즐거움을 느낀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축구를 추구하던 레알의 주장이 하기에는 파격적인 발언이다. 레알은 한때 아름다운 축구의 대표적인 신봉자 호르헤 발다노 단장이 이끌던 팀이었다. 세계적인 스타를 수집하는 갈락티코 정책은 그만큼 아름다운 경기력이 따라와야 했다.

레알이 실리적인 축구로 돌아선 본격적인 시점은 지난 2016/2017시즌이었다. 지네딘 지단 감독의 다소 경직된 전술은 크로스와 세트피스 득점의 비중이 높아지게 만들었다. 간판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스타일 역시 팀의 색깔에 영향을 줬다. 호날두는 드리블이나 패스보다 순수한 득점력으로 세계 최고가 된 선수다. 장거리 드리블, 중거리슛 등 특유의 화려한 플레이를 줄이고 더욱 문전 득점에 집중하는 호날두의 스타일은 레알을 점점 실리적인 팀으로 만들었다.

지단 감독 부임 전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2013/2014시즌과 2016/2017시즌의 득점 분포를 비교해 보면 레알의 변화가 잘 드러난다. 2013/2014시즌 당시 레알은 라리가 104골 중 단 6골만 세트피스를 통해 넣었다. 득점 부위를 기준으로 보면 헤딩골이 14골에 불과했다. 2016/2017시즌 총 득점은 106골로 거의 같았지만, 세트피스 득점은 22골로 3.5배 증가했다. 헤딩골은 27골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세트피스에서 7골을 넣은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는 레알 승리의 중요한 요소였다. 호날두와 라모스는 경기를 지배하지 못한 날도 세트피스에서 결정적인 한 골을 터뜨리는 능력이 강했다. 농구에서 주로 쓰는 용어로는 클러치 활약이 뛰어난 선수들이다.

그러나 골 감각은 일시적으로 향상됐다가 가라앉을 수도 있는 변수 요인이다. 선수의 득점력에 의존하는 팀은 상승과 하강을 심하게 반복할 위험이 크다. 팀 전체가 한 콘셉트로 저력을 갖고, 경기 자체를 지배하는 경기 방식이 일반적으로 더 꾸준한 승률을 올릴 수 있다.

바란은 레알이 당장 되찾아야 하는 건 경기력보다 승리라고 말했다. 경기력과 승리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현재 레알은 실리적인 팀이라는 걸 보여준다. 레알은 22일 데포르티보라코루냐와 라리가 20라운드 홈 경기를 치른다. 데포르티보는 18위로 떨어져 있는 하위권 팀이고, 최근 4경기에서 1무 3패에 그쳤다. 레알이 연승 가도로 올라갈 좋은 기회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