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인천] 김정용 기자= 김보경은 전북현대 팬들 앞에서 인사할 때 눈물을 흘렸지만, 출국 직전 인터뷰에서 개그 파트너 이재성이 거론되자 “더 부려먹었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유머로 인사를 대신했다. K리그에서 가장 웃긴 선수의 인사법이다.

전북은 김보경에게 첫 K리그 팀이었다. 유럽 경력을 일단락하고 돌아온 김보경은 1년 반 동안 전북에서 활약했고, 지난 25일 경기 이튿날 클럽 하우스를 떠났다. 행선지는 J리그 가시와레이솔이다. 2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풋볼리스트’와 만난 김보경은 전북 팬들에 대한 감사,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밝혔다. 꾸준히 팬과 소통할 것을 예고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김보경의 개그 본능으로 인터뷰는 산으로 간 뒤 끝났다. 김보경은 예능인으로 성공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선수들과 언제 인사했나요

대구전(25일) 다음날 인사하고 팀을 나왔어요. 어제 쉬고 오늘 공항에 왔죠.

 

-동료들은 어떤 인사로 김보경 선수를 보내줬나요

시즌 중간에 이적하는 거라서 미리 말해주면 분위기를 해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강원전(21일) 직전에야 선수들이 알게 됐어요. 전 대구전 직전까지 숨기고 싶었는데.

여름에 가니까 많이 섭섭해 하더라고요. 재성이 형(수비수 이재성), (이)용이 형은 올해 전북에 왔잖아요. 같이 뛴 시간이 짧은데 제가 가니까 너무 아쉽다고 하고요. (김)신욱이 형과 (이)동국이 형은 가서 잘 하라고 말해 줬고요. (이)승기 형과 (정)혁이 형은 작년에 발을 거의 못 맞추다가 올해 들어서 재밌게 축구하고 있는데 왜 가냐고 했고요. 안 가면 안되냐고 섭섭해하는 동료들이 많았어요. 엄청 미안하더라고요.

 

-사랑 받으셨네요. 동료들에게 뭐라고 대답하고 오셨나요

1년 6개월만 있던 팀인데 서포터들도 너무 좋아해주셨잖아요. 저도 한국에서 첫 번째 팀이라 정이 가요. 선수들끼리도 그런 느낌이 있지 않았나 해요. 솔직히 해줄 말이 없더라고요. 미안하다, 포항전 꼭 이겨라, 다시 전북에서 뛸 기회를 만들겠다, 라고 했어요. (지키기 힘든 약속일 수도 있는데요) 전 K리그에서 뛸 기회가 분명 다시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전북이 아니라면 다른 팀에서 만날 수도 있을 거예요.

 

-단짝이었던 이재성(미드필더) 선수 이야기가 빠졌네요.

아, 재성이 이름이 나오니까 갑자기 눈물이… (짜내시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눈, 눈물이 날 것 같아요. (결국 나지 않았다)

이적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말을 잘 듣더라고요. 팀 나오기 전전날부터 시키는 거 다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이적한다고 재성이에게 미리 뻥 쳐 놓을 걸. 한 달 전에 뻥 쳤으면 한 달 내내 부려먹었을 텐데. 그게 하나 아쉽네요.

재성이는 좀 삐친 것 같아요. 같이 몰려다니던 애들이 저, 재성이, (고)무열이, (임)종은이, (이)종호 정도인데 종호는 울산으로 먼저 갔고, 저 가고, 무열이와 종은이는 올해 마치고 입대할 생각도 있는 것 같고. 재성이 상황상 아무래도 삐칠 만하죠.

무열이는 부상 중인데 어제 잠깐 봤거든요. 같이 잠깐 운동 하면서 ‘마지막으로 너와 발을 맞추고 가는구나’라고 이야기했어요. 같이 더 뛰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죠.

 

-팬들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다가 울컥 하는 걸 봤어요.

경기가 끝난 뒤 고별전을 비겨서 아쉬워하고 있는데 ,구단 직원 분이 팬들에게 인사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지? 감사한 마음이 많은데 어떻게 말할까?’ 생각하다가 ‘이럴 때 울어줘야 되는 거 아닌가? (웃음) 근데 눈물이 안 날 것 같은데?’ 까지 생각이 미쳤어요. 마이크 잡고 팬들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팬들이 응원해주시고 고맙다고 해 주셨다는 대목에서 울컥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정말 일부러 운 게 아니에요. 저도 모르게. (성공하셨군요) 그렇죠! 전북이란 팀에 애정 이렇게 깊구나. 다시 느꼈어요. 울고 싶었지만 정말 눈물이 잘 줄은 몰랐는데. 그동안 팀을 많이 옮기면서도 울거나 한 적 없고 조용히 다녔거든요. 세레소오사카(2011~2012)는 경기 끝나고 따로 고별식을 해 줬어요. 팬 300분 정도 오셨는데 그 때도 울진 않았죠. 이번엔 시즌 중간에 떠나는게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요.

 

-그때 팬들이 선물을 많이 던져주더군요. 김연아 선수 팬들이 하는 것처럼.

제 이니셜을 딴 KBK 팔찌, 전북 머플러, 인형 등등. 그리고 핸드폰을 던지는 분이 계신 거예요. 이걸 나한테 주는 건가 싶어서 흠칫 했는데, 셀카 찍어서 돌려달라는 거였어요.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비하면 많은 사랑을 받고 가시네요.

시간은 짧은데, 팬들과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많았어요. 그래서 제게도 짧게 느껴지지 않아요. 가장 힘들 때 손 내밀어 준 팀이 전북이고, 응원해 준 게 전북 서포터니까요. 다시 좋은 선수로 도약할 수 있는 팀이었고,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목표를 함께 이루고 기뻐해 줬고, 결혼도 했고. 서포터들과 공유할 수 있는 순간이 많았죠.

 

-이야기하신대로 전북에 올 때가 선수 생활의 위기였어요.

유럽에서 아시아로 돌아왔는데 이제 뭘 해야 하나 싶었어요.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생각해 전북을 선택했죠. 그래서 전북이 전환점이라고 말한 거예요.

 

-유럽에선 경험을 쌓았고, 전북을 시작으로 이제 꾸준한 커리어를 이어가겠다는 건가요?

유럽은 한국 선수 중 몇몇만 경험할 수 있는 곳이죠. 가서 실패했다는 생각은 없어요. 몸으로 느껴보기 위해서 간 곳이기 때문에. K리그든 J리그든 아시아로 돌아왔을 땐 어떤 목표를 갖느냐가 중요하죠. 그게 우승입니다. 그 점에서 전북은 좋은 시작이었죠.

 

-김보경에게 남은 커리어 계획은 뭔가요?

전 확고한 생각이 있어요. 마무리는 K리그에서 하고 싶어요. 유럽에 있을 때도 마지막은 K리그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K리그가 어떤 리그인지 경험했고, 전북에서 많은 걸 받았어요. 꼭 돌아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름 이적시장인데도 J리그로 가는 선수가 많잖아요. J리그가 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겨울엔 더 많이 갈 수도 있어요. 저를 비롯한 선수들은 경력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이적을 선택하게 되는데, K리그 팬들께는 죄송하죠. 좋은 선수들이 있어야 경기장을 많이 찾아주실 텐데. 가면서도 걱정이 돼요.

 

-남은 도전이 있다면?

전북에서 우승컵을 하나 들었죠. 우승할 때의 느낌을 이제 알기 때문에 J리그 가서도 우승컵 들고 싶어요. 그게 첫 번째 목표입니다. 두 번째는 대표팀 분위기 안 좋으니까, 제가 더 노력을 해서 대표팀에 기여하고 대표팀이 변할 수 있도록 해야죠. 제게 남은 목표라면 러시아월드컵이거든요. 제겐 마지막 월드컵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꼭 나가고 싶어요.

 

-아프리카, 페이스북 라이브 같은 개인 방송으로 팬들과 즉흥적인 소통을 하곤 했어요. 지난 겨울엔 ‘제 1회 KBK 풋살리그’라는 작은 이벤트에 팬들을 초청하셨죠. 해외파가 된 뒤에도 이어질까요?

KBK는 즉흥적으로 한 거예요. J리그도 겨울엔 휴식기니까 또 할 수도 있지만 조용히 진행할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 라이브 같은 건 즉흥적인 건데, 외국에 있으면 집에 오래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나곤 하거든요. 팬들이 재밌게 봐 주신다면 앞으로도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팬들과 소통할 아이디어를 평소에 생각하시나요?

그건 없는데, 주위에서 ‘넌 은퇴하면 예능계로 가야 될 것 같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 말 들으면 겉으로는 “에이, 내가 무슨 예능이야”라고 대답하지만 속으로는 생각이 다르죠. 그렇다. 난 준비된 예능인이긴 하다.

 

-일단 '무한도전' 효도르 특집, 커리 특집처럼 김보경 특집부터 하고 그 다음 서장훈 씨처럼 전문 예능인의 길로…

그러기 위해서는 커리어를 세워야 되거든요. 그래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능인이 되고 싶어서 우승컵을 모은다고요?

그렇죠. 큰 그림을 그리는 건데 (푸훗) 예능에 처음 나가면 제가 누군지 소개해야 되고, 선수 이력이 나오잖아요. 그럴 때 멋있게 쫙 길게 이력이 나와야 되니까. 맨유와 경기할 때 헤딩골 넣은 거, 투레 털었던 거 자료화면으로 계속 돌려쓰고…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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