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개최국’ 러시아가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이하 컨페드컵) 러시아 2017’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컨페드컵이 월드컵 리허설 형식으로 열리기 시작한 것은 2001 한국/일본 대회부터다. 이번 대회까지 월드컵 개최국에서 1년 전 열리는 형식으로 다섯 번 열렸다. 러시아의 성적은 과거를 돌아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역대 월드컵 개최국의 컨페드컵 성적은 준수했다. 일본이 2001년 대회 준우승, 독일이 2005년 대회 3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2009년 대회 4위를 차지했다. 브라질은 2013년 대회에서 우승했다. 일본과 공동개최했던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 외에 월드컵 개최국이 조별리그 3경기 만에 일정을 마친 것은 러시아가 처음이다.

 

러시아가 특별히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뉴질랜드와 A조 1차전에서 2-0 완승을 거두며 기세를 높였고, 2차전에선 우승후보로 꼽히는 ‘유럽 챔피언’ 포르투갈에 0-1로 석패했다. ‘북중미 챔피언’ 멕시코와 세 번째 경기에서도 접전 끝에 1-2로 졌다. 뉴질랜드전은 필요한 골을 얻었고, 포루투갈전은 결정력이 부족했으며, 멕시코전은 수비 집중력 문제와 불운이 겹쳤다.

 

러시아는 이미 2018년 월드컵 개최를 확정한 이후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FIFA 월드컵 브라질 2014’에서 2무 1패로 조별리그 탈락을 겪었고, ‘UEFA 유로 프랑스 2016’에서도 1무 2패의 실망스런 성적으로 탈락했다. 러시아는 파비오 카펠로 감독, 레오니드 슬러츠키 감독과 모두 결별했다.

#체르체소프 러시아의 변화, 스리백과 투톱

 

러시아는 유로 실패 이후 레기아바르샤바의 2015/2016시즌 폴란드리그 우승을 이룬 스타니슬라브 체르세소프 감독 체제로 돌입했고, 올해 들어 3-5-2 포메이션을 시도하며 적극적인 세대 교체도 추진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러시아 축구 A매치 최다 득점자 알렉산드르 케르자코프(90경기 30골), 최다 출전자인 수비수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120경기 8골) 이후 세대로 컨페드컵을 준비했다.

 

이들 외에도 체르체소프 감독은 러시아 수비의 중심 기둥으로 101회 A매치에 출전한 만 35세의 베테랑 바실리 베레주츠키도 지난해 11월 카타르전 이후 소집하지 않았다. CSKA모스크바 수비수 빅토르 바신, 만 24세의 젊은 수비수 게오르기 지키야를 중심으로 한 스리백을 구성하고, 베테랑 측면 자원 유리 지르코프, 알렉산드르 사메도프를 윙백으로 배치했다.

 

체르체소프 감독은 표도르 스몰로프를 공격진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삼았다. 뉴질랜드전에 득점한 스몰로프는 멕시코와 경기에 알렉산드르 부카로프와 투톱을 이뤘다. 러시아는 포르투갈과 경기에 유효 슈팅을 하나도 기록하지 못했는데, 이 경기에서 수비를 신경쓰며 원톱 체제로 나섰다가 화력이 무기력해진 문제를 겪었다. 승리해야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러시아는 멕시코와 경기에서 대회 들어 가장 공격적인 자세로 경기에 임했다.

 

러시아는 멕시코전에 운이 따르지 않았다. 전반 18분경 스몰로프가 문전을 거침없이 치고 들다가 멕시코 수비의 파울에 넘어졌다. 페널킥 판정을 위해 VAR 시스템이 적용되었으나 정상적인 플레이로 최종 결론이 났다. 유사한 장면이 한번 더 있었으나 주심은 페널티킥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공격수와 수비수의 접촉이 있었으나 주심의 판단 기준은 이날 더 엄격해보였다.

 

저돌적으로 멕시코 문전을 파고들던 러시아 공격은 전반 25분에 결실을 맺었다. 중앙 미드필더 좌측에 배치된 알렉산드르 골로빈이 왼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올린 크로스 패스를 미드필더 알렉산드르 에로힌이 우측면으로 밀어줬고, 수비 범위 바깥에서 오버래핑한 오른쪽 윙백 사메도프가 대각선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측면 살아난 러시아, 노련함이 부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러시아가 주도하는 형국의 경기였다. 윙백과 투톱을 활용한 러시아 전술이 어느 정도 효과를 냈다. 스몰로프는 포르투갈전보다 활기찼고, 중앙 지역에 공격 숫자가 늘어나면서 윙백의 오버래핑 상황도 더 매끄럽게 나왔다. 문제는 헐거워진 수비 집중력이었다. 멕시코는 실점 5분 뒤 세트피스 공격 상황에서 동점골을 얻었다.

 

안드레스 과르다도의 직접 프리킥 시도가 이고르 아킨페예프의 선방에 걸린 가운데 배후로 빠져나온 공을 엑토르 에레라가 긴 패스로 문전에 찔러 넣었고, 공격 지역에 남아있던 수비수 네스토르 아라우호가 헤더로 마무리했다. 아킨페예프와 센터백 사이 공간이 허점을 노출했다.

 

후반 7분에 나온 멕시코의 역전골도 비슷했다. 러시아의 공격을 차단한 뒤 역습 공격이 이어지던 상황에 에레라가 높고 강하게 전방으로 롱패스를 보냈다. 러시아는 라인을 높인 상화이었고, 에레라의 패스는 골키퍼 아킨페예프와 스리백 사이 공간에 예리하게 떨어졌다. 공격수 어빙 로사노가 이 위치를 빠르게 포착했고, 아킨페예프와 충돌을 감수하면서 정확한 헤딩 슈팅으로 빈 골문에 득점했다.

 

두 득점 상황 모두 골키퍼 아킨페예프와 멕시코 공격의 타이밍이 간발의 차이로 어긋나며 골이 됐다. 러시아는 강공의 기세 속에 더 득점하지 못한 것, 수비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러시아는 리드 상황에 더 노련한 경기를 할 필요가 있었다. 베테랑 윙백 지르코프가 후반 23분 팔꿈치 가격으로 두 번째 경고를 받고 퇴장 당한 것도 막판 총공세의 동력을 잃게 만든 장면이었다.

#완전체 꿈꾸는 러시아

 

러시아가 이번 대회에 정예 전력을 모두 소집한 것은 아니다. 공격수 아르템 주바(22경기 11골), 미드필더 로만 조브닌, 알란 자고예프, 수비수 마리오 페르난데스 등은 당초 예비 명단에 들었으나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다.

 

주바와 함께 제니트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뛰고 있는 알렉산드르 코로린(44경기 12골)도 이번 대회 부름을 받지 못했다. 이번 대회 참가 선수 중 A매치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한 선수는 없었다. 독일 출신으로 러시아 대표를 택한 수비수 로만 노이슈테터 역시 예비 명단에는 들었지만 최종 엔트리에서 빠졌다.

 

러시아는 전술적 변화에서 가능성을 봤지만, 실행 과정에 숙제가 드러났다. 기존 선수의 조직력을 높이는 것도 과제지만, 더 노력하고 날카로운 선수들을 불러들려 활기를 불어 넣는 것도 고려해볼만한 일이다. 체르체소프 감독에 대한 판단은 컨페드컵이 아닌 월드컵 본선에서 이뤄지는 것이 합당하다.

러시아는 10월 10일 본선 진출이 확정된 이란, 11월 10일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친선 경기를 확정한 상황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주선으로 한국과 친선 경기도 추진되었으나 한국이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에 참가할 가능성이 생겨 현재까지 미정이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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