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풋볼리스트=수원] 한준 기자= “잘 할 거라고 기대는 하지만, 잘 할 거라고 믿어선 안 된다. 믿었다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질책하면 선수는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
서정원 수원삼성 감독은 신인 공격수 유주안(19)을 강원FC과 25일 ‘KEB하나은행 K리그클래식 2017’ 16라운드 경기에 선발 출전시키면서 오묘한 말을 했다.
서 감독은 염기훈의 무릎 타박상을 조나탄 선발 파트너 변경 이유로 짚었지만, “컨디션이 좋고 성장하고 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당연하다”며 유주안에게 프로 첫 경기 경험을 선발 출전으로 준 이유를 설명했다.
유주안은 18일 치른 안산그리너스와 R리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최근 R리그 경기에서 지속적으로 좋은 감각을 보여 서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유주안을 꾸준히 봤다. 어리지만 문전에서 재치나 골을 넣는 능력은 상당히 좋다. 기존 (주전) 선수들에 안 떨어진다.”
서 감독이 유주안에게 내린 지령은 “뒷공간을 파고들라”는 전술적 주문 외에 “편하게 하라”는 자신감이 더 컸다. “첫 경기를 선발로 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이다. 덜어주려고 노력했다. 편하게 해줘야 한다. 어제 훈련 끝나고 불러서 괜찮으니 하고 싶은대로 편하게 하라고 했다. 요즘 같은 자신감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했다.”
서 감독은 유주안을 선발로 내면서 행여 이 경기에서 부진하더라도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다독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서 감독이 유주안을 다독일 필요는 없었다. 경기 시작 3분 만에 조나탄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해 프로 첫 공격 포인트를 올렸고, 전반 45분 조나탄의 패스를 받아 첫 득점까지 올렸다. 후반 15분 염기훈과 교체 아웃되기 까지 데뷔전 기록은 1골 1도움. 특급 데뷔전이었다.
너무 이른 시간 교체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서 감독은 “보여줄만큼 보여줬다. 근육 경련이 왔다고 신호를 보냈다”며 전술적 이유에서 내린 교체는 아니었다고 했다. 유주안은 자신있게 경기했지만 “데뷔전이다 보니 몸이 경직된 것 같다”며 평소였다면 근육 경련이 올 정도의 시간대가 아니었다고 했다.
믹스트존에 모인 상당수 기자들은 유주안을 기다린 것이었다. 수원이 3-3 무승부로 경기를 마치면서 유주안은 공식 기자회견장에는 오지 않았다. 믹스트존에서 만난 유주안은 “이기지 못해 아쉽다”며 어두운 표정을 보였다. 하지만 데뷔전 소감과 데뷔골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며 표정이 밝아졌다. 부담이 적지 않았을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른 만큼 스스로도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꿈에 그리던 빅버드에서 경기하는 것 자체만으로 설레고 기분이 좋다. 데뷔골도 넣었는데 경기를 이기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형들도 그렇고 코치님들도 훈련한 것처럼 자신감을 갖고 하라고 하셔서 그렇게 했다. 운이 좋았고, 형들의 도움으로 도움도 하고 골도 넣을 수 있었다.”
수원 유스 출신 유주안은 2017년 대학이 아닌 프로 직행을 택했다. 하지만 2017년은 아쉬움의 해였다. ‘FIFA U-17 월드컵 칠레 2015’에 등번호 9번을 달고 뛰었지만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최종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유주안은 “나도 들어갔다면 좋았겠지만, 한편으로는 (U-20 대표팀에) 친구들이 많아서 응원했다”며 경기를 지켜봤다고 했다.
U-20 월드컵은 뛰지 못했지만 프로 데뷔전의 임팩트는 U-20 대표 선수들 이상이다. 유주안은 후반 15분 염기훈과 교체되어 나오면서 수원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 그런 상황을 또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유주안은 득점할 경우 서포터즈가 있는 N석으로 달려가서 세리머니를 할 계획이었으나 이날은 그러지 못했다. “너무 기분이 벅차올라 생각이 안났다.”
유주안은 수원 유스 출신으로 1군에 진입해 골 맛을 본 일곱 번째 선수다. 1호는 2014년 8월 포항스틸러스를 상대로 득점한 권창훈이다. 2호는 2015년 4월 유스 출신 1호 프로 입단 선수 민상기가 부산아이파크전에 기록했다. 이후 구자룡, 김건희, 연제민, 김종우가 유스 출신 선수로 1군에서 득점했다.
유스 출신 선수 가운데 데뷔전에서 1골 1도움을 몰아친 선수는 없었다. 유주안은 수원 유스의 역사에 남을 기록을 썼다. 그러나 데뷔전보다 중요한 것은, 경기 전 서 감독이 말한 것처럼 그 이후다. 첫 경기는 반짝할 수 있다. 첫 해를 잘하고 다음 시즌에 급격히 부진한 경우도 있다.
지난 2016시즌 기대를 모았던 김건희도 부상과 슬럼프를 겪었다. 연제민은 결국 수원을 떠났다. 국가대표가 되어 프랑스 리그앙 소속 디종으로 이적한 권창훈 정도가 수원 유스의 성공 사례다. 유주안이 데뷔전에서 챙겨야할 것은 자신감이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고비와 장애물은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헤쳐 나가야 한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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