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김포공항] 한준 기자= “'2019 프랑스 여자월드컵'까지 여자축구는 긴 공백기를 가질 수 있었다.”

여자축구대표팀이 부정적 전망을 깨고 ‘2018 요르단 여자 아시안컵’ 본선 진출 티켓을 확보하고 돌아오던 날. 12일 오후 김포국제공항에서 만난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평양에서 얻은 결과가 한국 여자축구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성과라고 설명했다.

여자축구대표팀의 일정표는 요르단에서 열리는 ‘2018 요르단 여자 아시안컵’과 프랑스에서 열리는 ‘2019 여자월드컵’으로 이어진다. 여자 아시안컵은 여자 월드컵 아시아 예선전을 겸한다. 여자 아시안컵 예선 탈락은 여자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로 이어진다. 2017년을 포함해 최대 3년 간 여자축구가 표류할 수 있는 중대 기로였다.

북한 여자축구는 세계적인 강호다.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은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이 역대 두 번째로 경험한 본선 무대였는데, 북한 여자대표팀이 도핑 문제로 출전권을 잃으면서 기회가 주어졌다.

징계가 해제된 북한 여자축구는 여자 아시안컵 예선전 유치 신청을 했고, 하필 한국 여자대표팀이 북한과 한 조에 속하며 원정으로 예선을 치르게 됐다. 객관적 전력에서도 열세로 평가받았고, 원정에서 경기를 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전망이 컸다.

한국 여자축구는 1990년 이후 무려 27년 만에 성사된 한국 축구의 북한 원정 경기에서 의미 있는 승점 1점을 얻었다. 한국 여자대표팀은 내용상 열세의 경기를 했지만, 골대의 행운과 골키퍼 김정미의 페널티킥 선방, 장슬기의 크로스 패스 시도가 북한 수비를 맞고 굴절되며 이어진 극적인 득점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안간힘으로 거둔 북한전 무승부 이후, 인도(10-0), 홍콩(6-0), 우즈베키스탄(4-0) 등과 경기에서 다득점에 성공했다. 총득점 21골을 통한 골 득실 차 우위로 홈에서 예선을 개최한 북한(18골 1실점)을 제치고 본선 티켓을 확보했다. 어쩌면 한국 여자축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었던 위기를 넘긴 거대한 성과다.

 

기적을 현실로 만들고 금의환향한 여자 대표팀이 북에서 남으로 돌아오는 길은 길었다. 북과 남의 도로가 연결되었다면, 두 시간여 남짓이면 돌아올 수 있었다. 여자대표팀은 베이징을 거쳐 남으로 돌아왔는데, 11일 베이징에서 서울로 향할 예정이던 비행기가 하루 미뤄졌다.

12일 오후 3시 경 김포공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던 일정도 다시 지연됐다. 4시 30분경 도착 예정으로 재공지되었는데, 실제론 베이징에서 4시 30분에 출발해 오후 5시 50분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입국장에 등장한 것은 저녁 7시경이었다. 저녁 일정으로 인해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결국 여자대표팀이 돌아오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 위원장은 자리에 없었지만, 여자 대표팀은 외롭지 않았다. 역대급 환대를 받았다. 방송 카메라와 사진 기자, 취재 기자 수십여명이 낮부터 긴 시간 여자대표팀이 돌아오는 길을 기다렸다.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에서 사상 첫 16강 진출을 달성했을 때보다 많은 수의 취재진이 공항에 모였다.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한 취재진보다, 집으로 돌아와 편히 쉬고픈 마음이 간절했던 여자 대표 선수들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긴 기다림 끝에 입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여자 대표 선수들의 표정은 밝았다. 몸도 가벼웠다. 우즈베키스탄과 여자 아시안컵 최종전에서 센추리 클럽(A매치 100회 출전)에 가입해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3D 트로피를 선물 받은 주장 조소현은 동료들의 “춤 춰라!”는 요구해 부응해 유명한 광고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기도 했다. 

북한을 상대로 값진 무승부를 거두고 한국 여자축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성과를 이루고 돌아온 여자 대표팀은 자유로웠다. 먼저 기자회견에 임한 윤덕여 여자대표팀 감독은 “북한의 인조잔디 상황과 수만 관중의 일방적 응원에 대비한 훈련이 효과를 봤다”면서도 “월드컵에 가고자 하는 선수들의 열망이 강했다”며 준비와 정신력이 이끌어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여자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는 윤 감독은 인터뷰 내내 선수들의 공을 높이기 위해 애썼다.

윤 감독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여자 대표 선수들은 마치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처럼 해맑고 즐겁게 포즈를 취하며 사진 기자들의 요청에 응했다. 짧지 안은 시간 동안 이동의 자유가 제한된 가운데 선수들 사이의 응집력은 더 강해졌다. 조소현은 “평양에서 선수들끼리 기념사진도 찍고 수다도 많이 떨었다”고 했다. 역사는 강박이 아니라 우정을 통해 이뤄졌다.

실제 거리보다 멀었던 평양 원정에서, 아득해 보이던 영광을 갖고 돌아온 한국 여자축구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개척했다. 기적이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았다. 비장함 보다 즐김이 눈에 띄었던 입국 현장에서 여자 대표 선수들의 희망이 읽혔다. 

14일에는 이 선수들이 원정의 피로를 뒤로 하고 나설 2017시즌 WK리그 개막전이 열린다. ‘CU@WK리그’다. 윤덕여 감독도 “이제부터 새로운 선수를 보기 위해 WK리그 현장을 찾겠다”고 했다. 올 시즌부터 금요일 저녁에 경기를 진행하는 WK리그에 2019년 한국여자축구가 프랑스로 가는 길의 실마리가 있다. 

사진=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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