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수원] 한준 기자= 모든 승리는 소중하다. 2017시즌 수원삼성에겐 더더욱 그랬다. 수원은 12일 저녁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이스턴SC와 치른 ‘2017 AFC 챔피언스리그(ACL)’ G조 4차전 경기에서 5-0 대승을 거뒀다. 올 시즌 홈에서 거둔 첫 승. 그것도 아주 화끈한 승리였다.

변화는 저절로 찾아오지 않았다. 홍콩 챔피언 이스턴SC는 2라운드에 가와사키프론탈레와 1-1로 비겼고, 3라운드에는 수원과 팽팽한 경기를 한 끝에 0-1로 석패했다. 광저우헝다에 당한 0-7 참패는 두 명의 선수가 퇴장 당한 상황에서 맞이한 ACL 데뷔전 결과였다. 수비 조직이 탄탄해 쉽게 무너트리기 어려운 팀으로 평가 받았다. 

이스턴을 상대로 수원은 올 시즌 전술적으로 지적 받던 모든 부분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이며 이스턴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서정원의 과감한 변화, 스리백 앞에 김종우 둔 공격적인 3-1-4-2

서정원 감독은 이스턴을 상대로 과감한 전술 변화를 시도했다. 측면 자원이 모두 부상으로 이탈한 수원은 한번도 시도한 적 없는 3-1-4-2 포메이션으로 대안을 모색했다. 곽광선 민상기 구자룡이 스리백으로 서고, 탈압박 기술과 패싱 센스를 갖춘 김종우가 그 앞에서 빌드업 미드필더로 뛰었다.

투톱 구성은 염기훈과 박기동이 이뤘고, 이용래 고차원 산토스 고승범이 2선 미드필더로 배치됐다. 이용래와 고승범이 좌우 측면에 배치됐다. 풀백이나 윙백이 아닌 측면 미드필더로 기능했다. 이들 중 전통적인 윙플레이를 구사한 쪽은 고승범이다. 고승범은 전진시 크로스 패스를 배급하기도 했고, 수비시에는 상대 스리톱 공겨에 대비해 구자룡 옆으로 내려가 포백을 이루기도 했다. 

찬유엔팅 감독이 이끈 이스턴SC의 전략은 명확한 선수비 후역습이었다. 4-1-4-1 포메이션으로 나섰는데, 포백이 수비 진영에서 벗어나지 않고, 포백 앞의 바이허도 자기 진영을 떠나지 않고 수비에 집중했다. 

이스턴 공격은 원톱 블레다 뒤에 리홍림 엘리 릉춘풍 매키가 자리했는데, 리홍림과 매키가 역습 상황에서 전진해 블레다와 스리톱을 이뤘다. 그러나 대부분 이 선수들 역시 좌우 측면 수비로 협업하고, 엘리와 릉춘풍도 직접 전진하기 보다 역습 과정에서 패스를 뿌리고 수빕 블록을 유지했다.

수원이 공격적인 김종우를 빌드업 미드필더로 둔 것은 이스턴이 라인을 뒤로 내릴 것을 예상하고 내린 판단이다. 밀집 수비를 깨기 위한 날카로운 크로스 패스는 없었지만, 고차원과 산토스 김종우가 과감하게 중앙 지역을 공략하며 틈을 만들려 했다. 염기훈과 박기동 투톱도 전방에 머물기보다 옆과 뒤로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분투했다. 여전히 측면을 거친 공격은 무뎠으나, 삼자 패스 이후 전방을 파고들기 위한 적극성은 인상적이었다.

김종우는 유려한 드리블과 빠른 타이밍의 패스 전개를 구사했으나 상대 수비 숫자가 많아 공격을 매듭짓는 과정이 지체됐다. 경기 양상은 답답했다. 공격 과정에서 가장 치명적인 플레이를 한 선수는 박기동이었다. 활발한 전후 움직임으로 이스턴 수비를 교란한 박기동은 전반 24분 예리한 스루 패스를 고승범에게 배달했고, 고승범이 다시 문전으로 올린 크로스 패스를 직접 침투해 헤더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골키퍼 선방에 걸렸다.

#박기동이 골로 가는 길을 열었다

박기동의 적극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는 전반 37분 염기훈의 득점으로 귀결됐다.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서 수비를 달고 시도한 강력한 왼발 슈팅이 골키퍼 선방에 막힌 뒤 흘렀고, 이 볼을 고승범이 크로스 패스로 연결했다. 골문이 빈 가운데 염기훈이 헤더로 밀어 넣었다. 도움은 고승범, 득점은 염기훈이었으나 박기동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골이었다.

박기동은 수비 가담에도 적극적이었는데, 전반 44분 수비 좌측면 지역에서 전방 우측 지역으로 깊숙한 스루 패스를 염기훈에게 배급했다. 염기훈은 이 패스를 받아 이스턴 문전까지 치고들어갔으나 왼발 슈팅 타이밍을 잡으려다 마무리 슈팅까지 가져가지 못했다. 비록 무산됐지만 박기동의 장거리 패스는 일품이었다. 

후반전 들어 웅크리고 있던 이스턴이 라인을 높이고 적극적으로 동점골을 노렸다. 수원 수비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스턴 공격은 기술적으로 투박했다. 특히 역습 전개 과정에서 공을 가장 많이 만진 우측면 공격수 제이미 매키는 드리블 과정에서 첫 번째 터치가 매끄럽지 못해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수원 수비는 별다른 위기를 겪지 않았다.

#빠른 타이밍의 선수교체, 후반에 불 붙은 수원

후반 9분 수원은 고차원을 빼고 다미르를 투입하며 중원 공격력을 보강했다. 후반 13분 다미르가 돌파 시도로 얻은 프리킥을 염기훈이 크로스로 연결했다. 민상기의 헤더가 강하게 이어졌으나 골문 옆으로 빗나갔다. 

후반 18분에 수원의 추가골이 나왔다. 이용래가 왼쪽 측면에서 문전 우측으로 길게 넘겨준 크로스 패스를 고승범이 발리 슈팅으로 강하게 때려 넣었다. 3-1-4-2 포메이션 시도가 완벽하게 적중한 결과다. 이용래의 크로스 패스 과정에 염기훈과 박기동의 기민한 패스 연결이 있었다. 두 선수가 뒤로 내려와 빌드업에 관여하면서 이스턴 수비가 혼돈에 빠졌다. 

슈팅은 측면을 활용해 나왔지만 집요하게 중앙을 공략하며 시선을 흔들었다. 수원의 노림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스턴을 괴롭혔다. 후반전 두 번째 교체 타이밍도 빠르게 가져갔다. 두 번째 골 직후인 후반 20분 이용래가 나오고 김민우가 들어갔다. 이용래가 막 어시스트를 올리며 기세를 올린 직후다. 주저 없이 도 공격적인 옵션을 가동해 체력을 보강하고 추가 득점을 노렸다.

수원은 후반 26분 이른 시간에 세 번째 교체 카드까지 썼다. 염기훈을 빼고 조나탄을 투입했다. 주말 리그 경기에 대비한 교체이자, 전방 공격의 파괴력을 높인 교체다. 이 교체는 후반 29분 세 번째 골로 이어진다. 산토스와 볼을 주고받으며 문전 우측을 파고든 조나탄이 강력한 마무리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산토스와 조나탄 콤비는 2분 만에 한 골을 더 합작했다. 산토스가 우측면에서 올려준 크로스 패스를 조나탄이 문전에서 가슴으로 트래핑한 이후 강력한 발리 슈팅으로 득점했다. 수원의 기세는 거칠 것이 없었다 서정원 감독도 벤치에서 원 없이 포효했다. 후반 34분 김종우의 패스를 받은 고승범이 문전 우측에서 또한번 총알 같은 대각선 슈팅으로 득점해 5-0을 만들었다. 

수원이 공식전에서 5골을 넣은 것은 지난해 7월 제주유나이티드전 이후 9개월 여 만이다. 5골 차 승리는 서정원 감독 부임 이후 처음이다. 2015년 4월 FC서울전 5-1 승리로 거둔 4골 차가 가장 큰 승리였다. 2005년 5월 베트남클러 호앙안자라이와 ACL 경기에서 6-0 승리를 거둔 이후 12년 만에 거둔 대승이다. 

평일 저녁 7시에 열린 경기라 입장객은 2,759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느때보다 크고 힘찬 함성이 빅버드 관중성에 메아리쳤다. 수원은 정말 오랜만에 내용과 결과 양 면에서 만족할 만한 경기를 했다. 전반전에 “우리에게 골을 보여달라”던 수원 서포터즈의 구호는 후반전에 “우리가 수원!”이라는 구호로 마무리되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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