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한국대표팀이 북한에서 축구 경기를 치른 것은 1990년 10월 11일 국가대표 간 친선전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다. 북한이 '2018 AFC 여자 아시안컵' 예선전을 유치했고, 한국 여자대표팀이 북한에 속한 B조에 배정되면서 역사적인 만남이 성사됐다. ‘풋볼리스트’는 뜻 깊은 경기를 기념해 남북 축구의 추억을 시대별로 정리했다. 이영무, 조진호, 최태욱 등 북한 축구와 직접 살을 맞대고 교류한 역대 대표 선수들이 구술한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월드컵 직후니까 2002년 9월이었을 거예요. 북한이 우리 민족이긴 하지만 우리와 가장 동떨어진 나라잖아요. 문화도 다르고. 그런데 그때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화합하는 분위기였고 그게 스포츠로 많이 표현됐어요. 남북통일축구 이후에 열린 아시안게임(2002년, 부산)에서는 남북이 공동 입장하기도 했고요. 그땐 통일이 실현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고, 개인적으로도 그런 기대가 들었어요. 몸으로 느껴지잖아요. 이제 남북의 벽이 많이 낮아졌다는 것이. 아시안게임에 단일팀으로 못 나간 걸 아쉬워할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경기는 아시안게임을 대비하는 진지한 평가전이라기보다 친선 경기 성격이 강했죠. 경기 전날 남북 선수들이 섞여서 만찬회도 했어요. 정치적인 이야기는 금지지만 축구 이야기는 상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생각이 나요. 제 옆에 있었던 북한 선수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다들 순수한 면을 봤어요. 일단 남쪽에 내려왔고 월드컵 직후였으니까 “월드컵은 다 봤냐”고 물어봤죠. 봤다고 하더라고요. 부러워하는 눈빛이 기억나요. 월드컵 4강에 들었고 그 멤버가 아시안게임에도 주축으로 나온다는 걸 알고 왔을 거예요. 그때는 북한이 국제 대회에 잘 못 나올 때니까 부러워할 만하죠.

경기 자체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요. 이벤트 성격이 강한 경기다보니 거스 히딩크 전 감독님이 오셔서 우릴 격려해 주셨고, 벤치에도 잠깐 박항서 감독님 대신 앉아있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죠. 박 감독님도 축구적인 주문보다 화합을 더 강조하셨어요. 물론 경기 전에 포메이션 정도는 잡아줬지만 킥오프 이후엔 그리 심한 주문이 없었어요. 관중들도 “대한민국”이 아니라 “통일조국”인가? 그런 구호로 응원을 해 주셨죠. 경기 끝나고 한반도기를 들고 관중석 앞을 돌았죠.

골을 못 넣은 건(0-0 무승부) 북한 선수들이 워낙 열심히 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워낙 투지가 강한 선수들이라 악착같이 막더라고요. (이)영표 형이 기막힌 찬스를 하나 만들어줬는데 제가 날려먹은 기억이 있네요. 만약 골이 들어가면 코너플래그를 하나 뽑아놓고 선수들이 그 위를 넘어가는 퍼포먼스로 통일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못 한 것이 아쉽죠.

경기 끝나고 바로 옆에 있던 북한 선수와 유니폼을 교환하다가, 내친 김에 축구화까지 갈아신자는 생각이 들어서 신발까지 벗어 줬어요. 그때 제가 신고 있던 게 나이키, 그 친구가 신고 있던 게 필라였을 거예요. 신어보니까 북한 선수들이 당시 신고 있던 축구화는 굉장히 안 좋더라고요. 좋은 환경에서 축구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 순간이었어요. 그때 받은 유니폼과 축구화는 부모님이 갖고 계세요.

지금 평양에 가 있는 선수들에게 부러운 마음이 드네요. 저도 한 번은 가 보고 싶었는데. 아무도 못 가는 곳에서 축구를 하고 있으니 좋은 성과를 낸다면 축구 인생을 통틀어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 될 거예요. 승부는 승부니까 땀흘린 보람을 얻었으면 좋겠고, 국민들에게 기쁨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입니다.

구술= 최태욱 서울이랜드FC U-15 감독

정리= 김정용 기자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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