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노장을 위한 국가대표팀은 없다? 언제부턴가 서른을 넘긴 선수를 대표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당당히 후배들과 경쟁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지녔다. 대표팀 발표 후에 정조국, 염기훈, 양동현 등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메이저 대회에서 베테랑이 지닌 품격을 보여준 이들을 찾아봤다. 

 

‘전차군단’ 독일 국가대표팀의 20세기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은 단연 미로슬라프 클로제다. '2002 한일월드컵', '2006 독일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고 '2014 브라질 월드컵' 등 네 번의 월드컵 무대를 밟은 클로제는 그야말로 한 세대를 장식한 인물이다.

2001년 23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승선해 '2014 브라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13년간 활약했던 전차군단을 떠났다. 한국 팬들에게 가장 강렬하게 남긴 인상은 클로제가 처음 월드컵 무대에 섰을 당시다. 장소는 한국이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 해트트릭을 시작으로 아일랜드, 카메룬전에서도 골망을 흔들었다. 서막에 불과했다. 세 번의 의 월드컵이 클로제에게 더 주어졌다.

지난 2014년 대표팀에서는 떠났지만 지난 해 까지 라치오에서 현역 생활을 했다. 클럽 팀에서는 풍성한 스쿼드 일원으로 활약하며 연령에 따른 컨디션 혹은 회복을 고려해 출전을 조절할 수 있지만 대표팀은 아니다.  오직 경험만을 ‘형님’으로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제한된 스쿼드에서 어쩌면 클럽 팀보다 더욱 생존하기 힘든 자리가 대표팀이다.

클로제가 대표팀에서 남긴 기록은 137경기 71득점이다. 게르트 뮐러가 세운 종전 독일 국가대표팀 최다골 기록을 깼다. 공격수로는 결코 크지 182cm의 신장이지만, 장신 수비수 사이에서도 클로제의 헤딩은 늘 빛났다. 어린 시절 체조선수 생활에서 익힌 점프력과 위치 선정 능력은 클로제에게 ‘헤딩의 달인’ 혹은 ‘전차군단의 폭격기’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많은 선수들이 연령 변화에 따라 경기 스타일을 바꾸거나, 역할을 바꿔 선수의 생명을 늘린다. 하지만 클로제는 많은 변화를 주지 않았다. 대표팀에서 가장 빛났던 순간. 브라질월드컵 4강전에서도 클로제는 전차군단의 최선방에서 헤딩을 따냈고, 가장 자신 있어하는 오른발 슈팅으로 브라질의 골망을 흔들었다. 월드컵 역대 최다골인 16골 주인공이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클로제는 마지막 무대에서 월드컵 우승을 맛봤다.  

사실 클로제에게 마지막 월드컵은 쉽지 않았다. 요하임 뢰브 감독이 원톱에 대한 비중을 낮추고 있었고, 체력적인 부분 등을 인해 전경기에 거쳐 활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클로제에게 물음표가 붙기도 했다. 하지만 소속 팀에서의 모습, 훈련장에서의 성실함과 동료 선수들의 믿음이 전설의 탄생을 만들었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강했다. 마지막 무대에서 새로운 기록을 탄생시키겠다는 의지, 독일의 우승을 이끌겠다는 의지가 뢰브 감독을 움직였고, 클로제는 화답했다. 

독일의 팬들은 클로제에 대해 꾸준함과 노력의 상징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소년시절부터 ‘천재’라는 말을 듣고 자란 경우는 아니다. 7부리그 소속이었던 블라우바흐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5부, 3부리그를 거쳐 독일 축구의 별이 됐다. 클로제는 여전히 독일 국가대표팀에 남았다. 은퇴 후 트레이너 자격으로 국가대표팀에 몸을 담았다. 새로운 역사의 첫 줄을 쓰고 있다.

글= 김동환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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