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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S] A매치 베테랑 ① 스타 넘어 존경 받는 선수, ‘멕시칸 카이저’ 마르케스
김정용 기자 | 승인 2017.03.18 10:29

 

 

[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노장을 위한 국가대표팀은 없다? 언제부턴가 서른을 넘긴 선수를 대표팀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여전히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당당히 후배들과 경쟁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지녔다. 대표팀 발표 후에 정조국, 염기훈, 양동현 등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메이저 대회에서 베테랑이 지닌 품격을 보여준 이들을 찾아봤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때론 그마저 걸리적거리니까 ‘똥머리’를 한 채 호나우지뉴, 메시에게 공을 뿌리는 남자. 우리가 라파엘 마르케스의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습이다.

마르케스는 프로 22년차, 국가대표 21년차인 올해도 여전히 현역이다. 1997년 대표팀에 데뷔한 마르케스는 이달 열리는 코스타리카, 트리니다드토바고전을 위한 대표 명단에 또 이름을 올렸다. 멕시코 대표팀에서만 136경기를 뛰었지만 마르케스의 플레이는 멈추지 않는다.

멕시코 명문 아틀라스에서 단 17세에 프로 데뷔한 마르케스는 이듬해 멕시코 대표팀에서도 데뷔하며 천재적 기량을 일찌감치 인정받았다. 1999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을 이끌었고, 승부차기 키커로 나설 정도로 큰 신임을 받았다. 1999년 코파아메리카에 칠레 대표 수비수 파블로 콘트레라스를 관찰하러 왔던 AS모나코 스카우트가 멕시코 수비진에서 활약 중인 마르케스를 발견하고 유럽으로 전격 영입했다. 세 시즌 동안 활약한 마르케스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바르셀로나는 마르케스가 가장 화려하게 빛난 시기다. 2004/2005시즌, 차비 에르난데스와 호나우지뉴가 중심이 된 바르셀로나의 정규리그 우승에 마르케스도 크게 기여했다. 원래 포지션인 센터백뿐 아니라 4-3-3 포메이션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임무도 에드미우손과 번갈아 수행했다. 다음 시즌엔 라리가와 UEFA 챔피언스리그(UCL)를 동시에 우승하며 마르케스의 경력은 화려하게 빛났다.

마르케스는 호나우지뉴의 시대와 리오넬 메시의 시대를 잇는 버팀목이었다. 바르셀로나가 혼란기를 거쳐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을 선임한 2008/2009시즌, 그 유명한 3관왕을 달성할 때 마르케스가 주전으로 활약했다. 비록 첼시를 상대한 UCL 준결승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우승의 주역이라는 점을 폄훼할 순 없었다. 마르케스는 2010년 여름 바르셀로나를 떠날 당시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한 비유럽 선수(지금은 당연히 메시다)로 구단 역사에 남았다. UCL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은 46경기를 소화한 북중미 출신 선수이기도 했다. 멕시코를 넘어 북중미 축구 전체의 전설이 된 것이다.

이미 전설이 된 뒤에도 마르케스의 인기는 높았다. 피오렌티나, 유벤투스 등 이탈리아 구단들의 유혹을 뒤로하고 미국의 뉴욕레드불스에서 활약했다. 뉴욕에서 부상으로 신음하다 2012년 레온으로 이적하며 멕시코 축구로 복귀했다. 레온에 두 차례 우승 타이틀(2013 후기리그, 2014 전기리그)을 안기며 부활한 마르케스는 2014년 돌고돌아 결국 이탈리아 축구계로 진출했다. 마르케스를 영입한 헬라스베로나는 ‘노장들의 팀’으로 유명해졌다. 수비는 마르케스, 공격은 이탈리아 대표 출신 노장 루카 토니가 책임지며 강등 위기를 뚫고 13위로 잔류에 성공했다.

고대하던 유럽무대를 다시 경험한 마르케스는 멕시코, 프랑스, 스페인, 미국, 이탈리아까지 5개 나라에서 활약한 첫 멕시코 선수가 됐다. 2015년 12월 마르케스가 향한 구단은 고향팀 아틀라스였다. 마르케스가 찾아간 곳은 코끼리 무덤이 아니라 당당한 주전으로 활약할 새 보금자리였다. 2016/2017시즌 현재 22경기에서 활약하며 어엿한 주전으로 활동 중이다.

대표 선수로서 마르케스가 남긴 족적 역시 화려하다. 마르케스의 너무 일렀던 데뷔는 팀 동료 세자르 마르케스를 소집하려다 이름을 헷갈렸다는 당시 감독의 실수 때문인 것으로 유명하다. 코미디는 첫 소집뿐이었다. 마르케스는 1999년 컨페더레이션스컵, 2003년 골드컵 우승을 이끌며 성공적으로 대표 경력을 밟아 나갔다. 노장이 되어 참가한 2011년과 2015년 골드컵에서도 역시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다. 월드컵에선 2002, 2006, 2010, 2014년 대회에 모두 주장으로 참가하며 이 부문 최초 기록을 세웠다.

마르케스는 다섯 번째 월드컵을 앞두고 있다. 나이가 들어 신체 능력은 감소했지만 ‘멕시칸 카이저’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리더십과 경기를 읽는 시야, 간결하게 경기 흐름을 바꾸는 패스 등 마르케스의 능력은 다른 선수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비할 땐 중요한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상대 공격수가 들어왔을 때 민첩한 동작으로 공을 빼앗아낸다. 지능적인 위치 선정은 어느 나라 수비수들에게나 중요하지만, 특히 멕시코 축구에선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다. 멕시코식 스리백이나 파이브백의 중앙에서 활약하기에 마르케스만큼 기량이 완성된 선수는 여전히 드물다.

공격에 가담할 때 여전히 위력적인 이유는 마르케스의 오른발이다. 마르케스의 킥력은 정평이 나 있다. 프리킥 전담키커로서도 훌륭하고, 짧고 긴 패스를 자유자재로 전달할 수 있는 원동력도 오른발 킥이다. 그러면서도 코너킥 상황에선 전담 키커가 아니라 헤딩을 하러 문전으로 가담하곤 한다.

플레이스타일은 마르케스가 바르셀로나에서 유독 좋은 활약을 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멕시코식 스위퍼의 역할은 바르셀로나 축구가 요구하는 ‘4번’ 수비형 미드필더와 비슷한 면이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선수 생활 말년을 멕시코 리그에서 보내기도 했고, 최근 ‘라볼피아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빌드업 방식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 역시 멕시코 축구의 스위퍼들이다. 마르케스는 스위퍼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다른 선수들 사이의 조직력을 잇고 빌드업을 시작하는 선수였다.

마르케스의 리더십은 대표팀을 넘어 멕시코의 모든 선수들에게로 미칠 분위기다. 지난 2월, 마르케스는 각 팀을 대변하는 선수들을 불러모아 회동을 가졌다. 멕시코 축구선수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첫 움직임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선수회 설립에 앞장섰던 고(故) 최동원 선수처럼, 약자 위치에 있는 동료 선수의 권익 보호를 위한 행동이다. 마르케스는 자신이 멕시코 축구의 상징적 존재로 남아있는 동안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남겨주려 한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김정용 기자  cohenwise@firstdivi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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