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로마(이탈리아)] 김정용 기자= ‘노 토티 노 파티(No Totti No Party)’ 즉 ‘토티 없이는 잔치도 없다’는 AS로마 팬들의 유명한 표어다. 프란체스코 토티가 은퇴한 뒤에도 저 문구는 응원석에서 여전히 펄럭이고 있다.

12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로마의 스타디오 올림피코에서 열린 ‘2017/2018 이탈리아세리에A’ 24라운드에서 베네벤토를 5-2로 꺾을 때 역시 저 문구가 보였다. 토티는 25시즌 동안 로마에서만 뛰며 구단 자체가 됐고, 이번 시즌부터 디렉터로 직업을 바꾸고 관중석에 앉아 있다. 토티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으니 파티를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아리송한 상황이다.

로마는 세계적인 관광도시를 연고지로 둔 팀답게 스페인 광장 주변에서 판촉 활동을 한다. 관광객들은 오드리 햅번 흉내를 낸 뒤 홍보에 홀려 티켓을 산다. 로마를 찾을 때부터 올림피코 방문을 관광 코스의 일부로 포함시킨 사람들 역시 많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로마의 대형 용품 매장이 있다. 세리에A 팀 중에는 아직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지 못한 팀도 많지만 로마는 벤치의 선수용 의자까지 팔 정도로 다양한 물건을 갖췄다.

노점상이 파는 로마 유니폼에는 이제 팀에 없는 선수들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었다. 토티와 모하메드 살라다. 살라는 지난 시즌 로마에서 가장 파괴력 있는 선수였다. 토티는 살라에 앞서 약 20년 동안 그 역할을 했다.

두 선수가 모두 빠진 지금, 로마는 정체기를 맞고 있다. 토티의 창의성과 살라의 드리블 능력이 모두 사라진 지금 이들을 대체할 만한 스타가 영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 약해진 선수단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반 선전했던 로마는 지난해 말부터 6경기 무승(3무 3패)에 그치며 위기론에 봉착했다.

베네벤토를 상대한 홈 경기 역시 초반 20분 동안 로마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로마는 한동안 고수하던 4-3-3 포메이션 대신 4-2-3-1 포메이션으로 나왔다. 공격 자원의 숫자가 늘어났지만, 공격력 강화가 아니라 중원 장악력 약화가 더 눈에 띄었다. 베네벤토의 공격 전개가 더 짜임새 있었다.

로마는 베네벤토를 상대로 조직력에서 밀리고 개인기량으로 응수하며 기대 이하의 플레이를 했다. 전반 7분 베네벤토 공격수 기예르메의 현란한 드리블에 당해 실점했다. 기예르메의 세리에A 데뷔골이었다. 로마는 세트 피스로 응수하는 게 고작이었다. 전반 25분 프리킥 상황에서 알렉산다르 콜라로프가 올린 크로스를 페데리코 파지오가 헤딩으로 마무리해 동점을 만들 수 있었다.

로마의 문제는 역시나 2선이었다. 현재 로마 공격진 중 최고 스타인 에딘 제코는 장신 공격수다. 2선에서 함께 공격을 만들어나갈 선수가 필요하다. 에우세비오 디프란체스코 감독은 스테판 엘샤라위, 디에고 페로티, 쳉기스 윈데르를 모두 투입해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특히 페로티는 원래 기량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이들을 받치는 수비형 미드필더 조합도 문제가 있었다. 최근 기량이 떨어진 케빈 스트로트만, 공격적인 제르손이 짝을 이루자 수비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후반전, 로마는 토티 없이 파티를 시작했다. 주최자는 윈데르였다. 윈데르는 터키 대표팀이 기대하는 21세 유망주다. 전 소속팀 바샥세히르의 연고지인 이스탄불은 한때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윈데르는 이 경기를 통해 ‘원조 로마’에서 스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오른쪽 윙어로 배치된 윈데르는 전반전부터 제코에게 가장 좋은 크로스를 올려주는 선수였다. 왼발잡이지만 오른발 크로스도 날카로웠다. 후반 14분, 윈데르가 총알처럼 치고 나가는 측면 돌파에 이은 정확한 크로스를 날렸다. 제코는 정석에 가까운 헤딩골을 터뜨려 경기를 뒤집었다. 윈데르는 후반 17분 빠른 패스워크에 이은 페로티의 패스를 왼발로 밀어 넣었다.

후반 30분에 나온 윈데르의 두 번째 골은 개인 기량이 잘 발휘된 장면이었다. 오른쪽에서 골문을 바라보고 선 윈데르는 왼발로 강하게 감아 찬 슛을 골문 구석으로 꽂았다. 윈데르는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한 경기에서 세 골 이상 관여한 로마 선수는 이번 시즌 윈데르가 처음이다. 7일 전 엘라스베로나를 상대로 세리에A 데뷔골을 넣고 연속골을 터뜨렸다. 터키 국적 선수가 세리에A에서 2골 이상 넣은 건 2002년 엠레 벨레조글루(당시 인테르밀란) 이후 처음이다.

윈데르가 후반 37분 교체되자 로마 팬 상당수가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기자 중에서도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들은 주위 눈치 보지 않고 윈데르를 마음껏 응원했다. 로마는 이날 홈 통산 리그 800승을 달성했다. 유벤투스, AC밀란, 인테르밀란에 이어 네 번째로 세운 기록이다. 북부 명문들에 대항하는 남부의 대표 구단다웠다.

베네벤토전이 잘 풀렸다고 해서 섣불리 낙관론을 펴긴 힘들다. 어차피 베네벤토는 최하위 팀이고, 로마 경기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윈데르의 왼발 중거리슛 이후 단 1분 만에 베네벤토의 짜임새 있는 역습에 당해 실점했다는 점도 문제였다. 로마는 후반 추가시간 얻은 페널티킥을 그레고리오 데프렐이 성공시키면서 승리를 잘 지켜냈지만 팀이 다소 삐걱거렸다는 점은 문제로 남아 있다.

로마 팬들은 토티의 후계자를 봤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팬들이 집에 가며 부르는 노래의 후렴은 “로마 고마워”라는 말의 반복이었다. 토티가 은퇴한 뒤에도 파티는 계속될 거라는 기대가 담긴 노래였다.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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