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적시장이 열렸다. K리그 이적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리그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 리그다. K리그는 더 이상 주도적으로 아시아 시장을 이끌어가지 못한다. 아시아 리그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리그에 파급력이 미치는 이유다. '풋볼리스트'는 2018년 겨울 이적시장을 주도하는 '아시안 마켓'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호주의 1부 리그인 ‘현대 A리그(이하 A리그)’는 한국 선수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적시장에서 소극적인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다. 지금 호주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한국 선수들에게 취업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다.

A리그에서 처음 뛴 한국 선수는 신태용(당시 퀸즐랜드로어) A대표팀 감독이다. 선수 생활을 호주에서 마무리한다는 새로운 인생 진로를 개척한 2005년 선수로서 호주를 찾은 뒤 지도자 생활까지 시작했다. 신 감독은 유학 사업까지 차리며 후배 축구인들의 호주행 물꼬를 텄다. 하향세인 선수만 호주로 가는 건 아니다. 송진형, 이기제(당시 뉴캐슬제츠), 김승용(센트럴코스트마리너스) 등이 한창때 호주에서 뛰다 K리그로 돌아와 주전급으로 활약한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김재성이 2017년 전반기를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총 11명이다.

 

엄격한 샐러리캡, 축구보다 농구에 가까운 A리그 이적시장

호주 대표팀은 한국, 중국,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 4강 중 하나지만 A리그는 아니다. A리그가 미국 프로스포츠에 가까운 운영 방식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A리그는 샐러리캡(구단 총연봉 상한선)이 존재한다. 승강제는 없다. 프로축구보다 프로농구나 프로야구에 가까워 보이는 운영 방침이다. 오히려 아마추어 리그에 승강제가 있다.

호주풋볼, 럭비, 크리켓 등 전통적인 인기 종목에 비해 A리그는 아직 성장 중인 단계다. 구단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도 한국 선수들의 진출에는 걸림돌이다. 2017/2018시즌 호주 구단의 샐러리캡은 292만 8천 호주달러(약 24억 5천억 원)에 불과하다. 이 돈으로 20~23명의 연봉과 숙박, 차량 지원비 등을 다 해결해야 한다.

다양한 예외 제도를 통해 샐러리캡에 구애받지 않는 선수가 생기곤 하지만 이 카드를 한국인에게 쓸 가능성은 낮다. 호주는 리그 전체의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스타 선수의 연봉을 축구협회가 보조해 주는 정책도 갖고 있다. ‘게스트 플레이어 제도’다.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오노 신지, 팀 케이힐을 영입할 때 이 규정이 적용됐다. 이 규정은 선수의 실력이 아닌 홍보효과가 기준이다. 한국 선수가 여기 해당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한국 선수가 호주 구단으로 갈 때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연봉은 최대 1억 원 정도다. 여기에 높은 세율이 매겨진다. 실력이 검증된 선수라면 K리그에서 받을 수 있는 연봉보다 못한 액수다. 한국 선수들이 선뜻 호주행을 택하지 않는 이유다. 이적료라는 개념이 없는 농구, 야구 구단처럼 자유계약 대상자 위주로 영입하려 하는 것도 선택지를 좁게 만든다.

 

‘한국 풀백이 좋다’며 영입 노리는 A리그 팀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선수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존재한다. 한 관계자는 “일부 구단이 한국 선수 영입을 추진 중이다. 포지션은 풀백 또는 윙어”라고 밝혔다. 최근 호주에서 뛴 이기제, 김승용, 김재성 모두 킥력이 좋은 측면 자원이다. 호주 수비수들이 신체조건을 갖췄고, 일본 미드필더들이 가술을 갖췄다면, 한국 측면 자원의 돌파와 크로스가 강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조건이 맞는 선수만 있다면 영입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A리그의 겨울 이적시장은 1월 31일 끝난다.

호주 구단이 한국 선수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아시아쿼터다. 현재 A리그에는 아시아쿼터 제도가 없다. 국적에 관계없이 외국인 선수를 5명 보유할 수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아시아쿼터가 없는 나라에 규정 신설을 권고한다. A리그가 이를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각 구단은 아시아 국적 선수를 선점해야 새 규정에 대비할 수 있다. 또한 AFC 챔피언스리그(ACL)에 나가는 팀은 아시아쿼터가 있어야 전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 2017년 김재성을 영입해 ACL에 활용한 애들레이드가 대표적이다.

유럽 진출을 꿈꾸는 유망주라면 호주를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호주에서 2년 반 동안 뛴 뒤 프랑스 구단 투르로 이적한 송진형이 성공 사례다. 호주 축구계에서 유럽 에이전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눈에 띄기 쉽다. 현재 이탈리아 대표 출신 노장 스트라이커 마시모 마카로네(브리즈번로어), 덴마크 대표 수비수 미카엘 야콥센(멜버른시티), 스페인라리가에서 주전급으로 뛰었던 미드필더 사비 토레스(퍼스글로리) 등 잘 알려진 유럽 선수들이 호주에서 활약 중이다. 반대로 호주 선수들의 유럽 진출도 활발하다.

현재로선 큰돈을 벌기 힘든 리그지만 점차 리그 상황이 나아진다는 점도 참고할 만하다. A리그는 폭스스포츠와 계약을 맺으며 이번 시즌부터 중계권 수익을 크게 늘렸다. 관중도 증가 추세다. 샐러리캡은 리그의 총수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샐러리캡을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세미 프로 구단이 찾는 ‘워킹홀리데이’ 선수

승강제를 도입하면서 호주의 취업 시장은 다시 변화를 겪고 있다. 호주는 2019/2020시즌부터 챔피언십(가제)이라는 이름의 프로 2부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신생팀이 2팀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머지 자리는 아마추어 팀들이 프로로 전환해 메울 것으로 보인다.

선수 수급이 필요한 아마추어 리그 상위 구단들은 저렴한 외국인 선수를 알아보고 있다. 아직 세미프로 상태인 만큼 원하는 선수도 세미프로다. 축구 경기를 치르는 한편, 학원 강사 등 ‘부업’을 병행할 수 있는 선수를 원한다. 호주 유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워킹홀리데이 제도의 응용이다. 한 관계자는 “세미프로 구단이 원하는 선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갖고 들어와 뛸 선수들이다. 그래서 만 30세 이하인 선수만 찾는다. 국내 프로구단 취업이 어려운 선수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K리그 취업이 좌절된 선수들이 갈 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한때는 일본이나 동남아 진출이 해법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시장에서 더 뛰어난 선수를 원한다. 이젠 동남아 진출도 엘리트들의 이야기가 됐다. 워킹홀리데이는 안정적인 직장이라기보다, 젊은 선수가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까지 택할 수 있는 임시방편에 가깝다.

사진=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 홈페이지 캡쳐,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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