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형제가 닮은 건 긴 얼굴과 매부리코뿐이었다. 축구 실력은 차이가 컸다. 잔루이지 돈나룸마가 18세 나이에 AC밀란의 주전으로 활약 중인 반면, 27세 안토니오 돈나룸마는 골키퍼로서 성공하지 못했다.

밀란 유소년팀을 동생 잔루이지보다 먼저 졸업한 안토니오는 밀란 1군으로 올라간 뒤 피아첸자, 구비오 등 하부 리그 임대를 다녔다. 2012년 제노아로 이적했고, 이탈리아세리에A 1경기 출장에 그쳤다. 지난해 여름 제노아와 계약 연장에 실패한 뒤 그리스 슈퍼리그의 아스테라스트리폴리스에 입단, 주전급 골키퍼로 한 시즌 활약하며 모처럼 출장 경험을 늘렸다.

안토니오는 동생을 따라 올여름 밀란에 합류했다. 이적 요청 파동을 일으켰던 잔루이지는 우여곡절 끝에 잔류했다. 잔류 조건 중 하나가 안토니오의 영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안토니오는 4년 계약을 맺었고, 연봉은 100만 유로(약 13억 원)다. 밀란 입장에선 사실상 잔루이지에게 연간 100만 유로를 더 주는 셈이다.

밀란은 2005년에도 비슷한 선수를 영입한 바 있다. 당시 밀란의 에이스였던 카카를 따라 동생인 디강이 합류했다. 디강은 본명이 히카르두인 형에게 카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그게 축구인으로서 남긴 가장 큰 영향력이었다. 디강은 상파울루와 밀란을 거치며 형과 같은 한 직장을 다녔다. 디강의 연봉도 안토니오와 같은 100만 유로였다. 그러나 세리에A에서 성공할 잠재력이 없었던 디강은 밀란에서 몇몇 비중 없는 경기에 출장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력을 노출한 뒤 자리를 잃었다. 여러 팀으로 임대를 다니다 2012/2013시즌 뉴욕레드불스(미국)를 마지막으로 프로 경력을 사실상 마감했다. 당시 28세였다.

형제를 따라 출세하는 선수들은 밀란 외의 팀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크리스티안 벤테케는 2016년 크리스털팰리스로 이적하면서 동생 조나탄 벤테케의 이적을 이끌어냈다. 조나탄은 모국 벨기에 구단 쥘터바레헴에서도 주전을 차지하지 못했고, 한 시즌 최다골이 2골에 불과했다. 크리스털팰리스에서 지난 시즌 단 6분 활약에 그쳤다. 훌리오 산타크루스는 형 로케를 따라 2008년 블랙번로버스에 입단했으나 공식 경기를 하나도 뛰지 못했다.

비슷한 사례 중 가장 극단적인 선수는 셰드릭 시도르프다. 셰드릭은 형 클라렌스가 뛴 아약스, 레알마드리드, 인테르밀란을 따라 세 유소년팀을 모두 거쳤다. 그러나 어디서도 프로 데뷔를 하지 못했고, 네덜란드 리그와 이탈리아 하부 리그에서 커리어를 이어갔다. 프로 경력의 정점을 찍은 것도 형 덕분이었다. 2008년 형의 소속팀인 AC밀란으로 다시 이적했다. 역시나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분에 넘치는 팀으로 이적하는 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디강은 브라질, 셰드릭 시도르프는 네덜란드에서 청소년 대표 발탁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곧 기량미달이 들통 났다. 명문팀에 자리 잡은 경우는 찾기 힘들다.

안토니오는 동생 덕분에 밀란에 합류한 것으로 보이지만, 나름대로 프로 경력이 있고 골키퍼라는 것이 다르다. 세 번째 골키퍼는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채 시즌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잔루이지의 후보 노릇을 해 온 건 40세 베테랑 마르코 스토라리, 25세 가브리엘이었다. 스토라리는 지난 6월 재계약을 맺었다. 잔루이지의 후보 선수로 스토라리와 안토니오가 대기한다면 가브리엘은 방출 가능성이 있다.

다만 안토니오가 밀란에서 오래 뛰려면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잔루이지에 이어 천재로 기대를 모으는 17세 골키퍼 알레산드로 플리차리가 테르나다로 임대된 상태다. 플리차리가 프로 경험을 쌓고 복귀할 경우 안토니오의 자리는 더 좁아질 가능성이 있다.

사진= AC밀란 공식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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