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신태용 감독에게 소방수 역할은 익숙하지만, 이번 일정은 어느 때보다 촉박하다. '2016 리우올림픽'을 맡았을 때는 예선 성격의 AFC U-23 챔피언십이라는 징검다리가 있었고, '2017 FIFA U-20 월드컵'은 개최국으로 참가해 6개월여의 준비 기간 동안 합숙 훈련을 길게 가질 수 있었다. 

A대표팀을 맡게 된 이번에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전이 두 경기 밖에 남지 않았고, 이 두 경기를 통해 본선 직행이 좌절될 수 있다. 경기까지 두 달여의 시간이 남았지만 유럽과 국내 모두 시즌 중이라는 점에서 조기 소집이 불가능하다. 여기에 핸디캡이 하나 더 있다. 주전 공격수 손흥민과 주장 기성용의 부상이다.

손흥민은 지난 6월 카타르와 원정 경기에서 팔 부상을 입어 수술했다. 이란과 8월 31일 예선전까지 부상 부위는 치료될 수 있으나 경기 체력 및 감각 회복은 쉽지 않다. 카타르전에서 무릎 부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난 기성용 역시 수술을 받았다. 소속팀 스완지시티의 프리시즌 일정 불참이 확정됐다. 이적설까지 제기되고 있더 8월 말 A매치 일정에 정상적으로 참가할 수 있을지 여부가 미지수다.

울리 슈틸리케 전임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은 손흥민과 기성용에 대한 전술적 의존도가 높았다. 손흥민은 최종예선에서 카타르와 홈경기에 3-2 승리를 이끈 결승골 외에 득점이 없었지만 왼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치고 들어가는 과감한 돌파로 상대 밀집 수비를 깨트리는 역할을 했다. 후방 빌드업의 기점은 기성용이었다. 기성용이 공을 쥐고 손흥민에게 배달해 공격을 진행하는 것이 주요 루트였다. 

기성용은 손흥민에게 공을 뿌린 뒤 공격 지역으로 침투해 득점 마무리 과정에도 직접 관여했다. 실제로 기성용은 예선전 두 번의 카타르전에 모두 득점했다. 두 선수는 공을 소유했을 때 가장 위협적인 옵션이었다. 

둘은 무엇보다 프리미어리그 무대에서 주전 선수로 활약해 상대 수비 라인에 심리적 부담을 줄 수 있는 자원이다. 신태용 감독은 U-20 대표팀을 이끌면서 백승호와 이승우를 중용하며 “소속팀의 이름 자체가 상대에 주는 부담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 대표 선수 가운데 국제적 명성이 가장 높은 선수다. 신 감독 입장에선 이란-우즈베키스탄전에 차포를 떼고 임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만, 그동안 대표팀이 두 선수에 대해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수비적 대응이 쉬운 팀이 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점에선 쇄신의 여지가 있다.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후반전에 투입하는 플랜B 전략이 읽힌 것과 마찬가지로, 최근 치른 경기에선 손흥민과 기성용에 대한 상대의 대응이 더 타이트해졌다. 신 감독이 두 선수의 부재 기간 팀을 맡은 것은 새로운 전술 구조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신 감독은 이미 슈틸리케호 출범 당시 코치로 성인 대표팀을 함께 지휘했기 때문에 성인 대표 후보군에 들 수 있는 선수들의 면면을 잘 알고 있다. ‘2015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을 이룬 과정에서 파악한 선수들이 있고, ‘2016 리우올림픽’에 데려갔던 선수들도 쇄신 과정의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선수 선발 부분에서도 신 감독에게 모두 권한을 줬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선 마지막 소집 전 기술위원회가 선수를 추천하는 등 도움을 준 바 있으나, 신 감독은 국내 감독인데다, 새로 구성된 기술위원회에 현직 K리그 감독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첫 대표팀 명단 결정은 신 감독이 확실한 지배권을 잡고 진행한다. 

신 감독은 예선 탈락 시 곧바로 계약이 해지된다. 최하위 중국까지 조 3위를 노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은 남은 2경기에서 모두 질 경우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한 3위 자리를 놓칠 가능성도 있다. 경각에 달린 상황에 팀을 맡은 만큼 신 감독은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신 감독이 부임 후 처음 진행할 일은 코칭스태프 선임이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코치 선발 권한을 신 감독에게 위임한다고 했다. 신 감독은 '2016 리우올림픽'에서 김기동, 전경준 코치, 이운재 골키퍼 코치, 플라비오, 신상규 피지컬 코치와 함께 했다. FIFA U-20 월드컵에선 전경준 코치와 플라비오 코치만 유지되었다. 김기동 코치는 포항스틸러스, 이운재 골키퍼 코치는 수원삼성에 합류했다. 공오균 코치와 김해운 골키퍼 코치가 새로 들어왔다. 

신 감독은 U-20 대표팀에서 최근까지 동고동락한 코치진을 재가동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U-20 대표팀 당시와 전술 구조는 다르게 가져갈 수 있다. 신 감독은 ‘풋볼리스트’와 인터뷰 당시 “성인 대표팀의 경기였다면, 한 경기에 죽고 사는 문제가 되면 어떻게 해서든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짤 것”이라고 했다. 지금 대표팀이 그런 상황이다. 육성이 중요한 연령별 대표팀도 아니다. 

슈틸리케 감독은 공 소유와 주도적 경기라는 방향성과 철학을 고수했지만 신 감독은 준비 시간이 촉박한 당장의 2경기의 경우 방향성부터 원점에서 고민할 수 있다. 기술위가 신 감독을 택한 이유는 활발한 소통과 전략적 변화 능력을 통해 선수들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실제로 몇몇 대표 선수들은 신 감독이 올림픽 팀으로 떠난 이후 대표팀의 훈련 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점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신 감독은 대표팀의 분위기를 바꾸고, 전략적 접근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줄 수 있는 안정된 구조가 필요하다. 코칭스태프부터 전술의 틀까지, 신 감독은 개인이 아니라 팀이 작동하기 위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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