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파주] 한준 기자= “우리 사회는 실패한 이들에게 너무 기회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 경험이 신태용 감독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4일 오후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강당에서 신태용 감독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했다. 기술위원회를 주관하고, 이날 오후 2시 파주NFC에서 신 감독 선임 발표 회견을 가진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회견장 밖을 나와 조금 더 편안한 얼굴로 기자들에게 말했다. 

“사실 신 감독이 낸 결과가 실패는 아니지 않은가. 소소(so, so)였다.” 김호곤 위원장을 기자회견 도중에도 리우올림픽 8강, U-20 월드컵 16강으로 당초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신 감독의 지난 성과에 대해 “큰 성공은 못했지만 어느 정도 결과는 냈다”고 했다. 오히려 지난 두 번의 연령별 대회를 치른 경험과 감각이 신 감독을 택할 수 있는 요건이 되었다고 했다.

김호곤 위원장은 여러 차례 신 감독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환기하면서도, 목표 달성을 이루지 못한 지난 두 번의 ‘실패 경험’이 더 큰 성장의 동력이 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이날 기술위원회 회의에서는 지난 실패로 인해 여론에서는 배제했던 지도자들이 후보군에 올라 검증을 받기도 했다. 

#실패를 성공으로 매듭짓기 위한 도전

“본인이 경기를 치르면서 강해지지 않았겠나.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어려울 때 충분히 그 경험이 발휘될 것이다. 그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신 감독에 대한 우려는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모두 수비 조직력에 있었다.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하다 상대 역습에 허를 찔려 균형을 잃었던 기억이다. 김 위원장은 “내가 봐도 한국팀의 수비 조직력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연령별 팀과 성인 대회는 다르다”는 말로 신 감독이 대표팀 수준에서는 더 나은 경기력을 낼 수 있다고 기대했다.

더불어 “신 감독도 잘 인지하고 있고, 기술위원회도 대표팀의 문제점을 이야기해 충분한 조직력을 만들어 낼 것”이라며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했다. 신 감독 역시 U-20 월드컵을 결산하던 ‘풋볼리스트’와 인터뷰에서 수비 조직 구축과 실리적인 전략 구성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신 감독 스스로도 U-20 월드컵을 통해 배운 게 많다고 했다.

기술위원회가 신 감독을 택한 것은, 그가 이미 대표팀 코치로 일하며 현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가 지닌 축구 철학에 대한 선택이기도 하다. 신 감독은 U-20 월드컵을 준비하며 “언제까지 버티는 축구로 이기려 할 것인가”라며 공을 소유하고 지배적인 경기를 하면서 이기는 게 목표라고 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주 진행한 ‘2017년 제1차 KFA & K리그 유소년 세미나’에서 KFA 플레잉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축구 전체를 관통하는 전술적 틀을 발표했다. 1-4-3-3 포메이션으로 명명한 공격적인 방식의 축구로, 신 감독이 U-20 대표팀을 이끌며 시도한 전술과 경향적으로 부합했다. 협회와 신 감독은 철학적 측면에서 비전을 공감하고 있다. 물론, 성인 대표팀에서는 비전만큼이나 결과가 중요하다. 철학을 지키기 위해선, 신 감독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오랜 격언에도 실패에 가혹한 평가가 내려지는 요즘이다. 한번 내려진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낙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신 감독에게 주어진 기회는 메시지다. 한국축구는 신태용이라는 이름의 모험에 나선다.

신태용의 성공은 약점을 지적 받는 실패한 이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도 된다는 믿음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또 한번 실패로 귀결된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 신 감독에게 기회가 제시된 시점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신태용 선임...도전, 모험 혹은 도박

모든 대회는 결과로 평가 받지만, 결국 연령별 대표팀 운영의 목적은 성인 축구 대표팀의 결과로 결실을 맺는다. 신 감독은 올림픽 대표팀과 U-20 대표팀에서 쌓은 경험, 그리고 지휘했던 선수들로 한국 축구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팀을 구성해야 한다. 결국 지도자 신태용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의 2경기를 통해 내려질 것이다. 준비 시간이 충분하지 않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라는 결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실패가 될 것이다. 홍명보 감독의 실패를 바라본 이들이 신 감독 선임을 우려하는 이유다. 홍 감독 역시 예선 기간 두 명의 감독이 바뀐 팀을 이어 받아 1년도 되지 않는 시간을 남기고 월드컵을 준비했다.

U-20 대표팀을 맡을 때도 신 감독은 어찌 보면 보다 안정적인 자리였던 월드컵 대표팀 코치직을 버리고 도전에 나섰다. 2경기 만에 한국 축구 사상 최악의 실패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소방수 자리를 수락한 것은 도전이나 모험보다 도박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그러나 신 감독 입장에선 쉽게 거절 할 수 있는 제안도 아니다. 지난 두 번의 연령별 대회를 거친 신 감독 입장에선 지도자로 월드컵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그간의 경험을 결실로 매듭지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 축구 전체가 신 감독과 함께 사상 가장 어려운 모험에 나선다. 

김호곤 위원장은 “한국축구가 다들 위기라고 하지만 우리가 월드컵을 갈 때는 항상 순탄하게 가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는 말로 한국 대표 선수들의 역량과 신 감독의 지도력을 믿고, 믿음을 주겠다고 했다. “여러분이 이렇게 염려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데, 꼭 월드컵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신 감독은 러시아월드컵 본선까지 임기를 보장 받았다. 본선에 가지 못하면 도전은 거기서 멈춘다. 문제는 다시 이 지점이다. 여전히 한국축구가 시스템 보다 개인의 능력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에 있다. 책임은 여전히 개인의 몫이다. 지금은 신태용 개인의 역량을 넘어 한국 축구가 가진 힘을 발휘해야 하는 순간이다. 그러기 위해선 감독 선임이라는 단기적 과제를 넘어 한국축구가 더 이상 모험이나 도박과 같은 단어 속에 싸우지 않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리우올림픽과 U-20 월드컵의 결과는 신 감독 개인의 리더십을 넘어 신태용호를 출범시킨 협회의 책임이다. 한국축구 전체의 운명을 신 감독이 짊어져야 한다고 표현한다면 여전히 한국 축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월드컵 본선행 여부는 협회가 지난 몇년간 이어온, 그리고 반복해온 일들에 대한 최종 평가가 될 것이다. 신 감독은 6일 오전 10시 축구회관에서 선임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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