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수원] 한준 기자= 백승호와 이승우를 쉬게 했다는 점으로도 위안을 얻기 어려운 완패였다. 점수 차는 한 점. 마지막까지 한국이 보인 투혼은 뜨거웠으나 전력 차이는 현격했다. 새로 꺼낸 전략과 홈팬의 응원 속에 보인 정신력으로도 잉글랜드를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2승 1무로 ‘FIFA U-20 월드컵 코리아 2017’ A조 1위를 차지한 팀은 잉글랜드였다. 한국은 잉글랜드전 0-1 패배로 2승 1패를 기록, 조 2위로 16강에 오르게 됐다. 스코어는 석패였지만 잉글랜드는 두 차례 골대를 때린 것 외에 득점에 근접한 상황을 수 차례 만들며 대량 득점이 가능한 경기 내용을 보였다. 

#전통적 스리백 꺼낸 신태용, 변형 투톱으로 대응한 잉글랜드

신태용 감독은 평가전에서도 선보이지 않았던 전통적 스리백으로 전술 승부수를 띄웠다. 잉글랜드가 지난 두 경기에서 투톱을 내세우고 측면 미드필더를 통해 공격을 전개하는 전통적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경기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최종전 상대 잉글랜드의 경우 A조 초반 두 경기를 보고 분석하겠다고 했다.

신 감독이 그동안 단련한 스리백은 공격적인 스리백이었다. 김승우나 이승모를 포어리베로로 두 센터백 앞에 배치해 후방 빌드업 밀도를 유지하며 좌우 풀백을 윙백으로 전진시키는 전술이다. 잉글랜드전의 스리백은 포어리베로가 아닌 스위퍼를 뒀다. 중앙 수비수 이정문은 왼쪽 센터백으로 투입하고 주장 이상민을 스리백의 중심에 뒀다. 오른쪽 센터백으로 정태욱이 섰다.

"상대가 상당히 높이가 높기 때문에 이정문 선수를 선발로 냈다. 이정문 선수가 (작년에) 수원에서 잉글랜드와 경기 했을 때 상당히 잘했다.  그런 느낌을 갖고 선발로 나가서 잘해줄거라 믿고 선발했다."

좌우풀백으로 우찬양과 이유현이 배치되었는데, 역습 상황에는 주저 없이 전진했으나 대체적으로 수비 라인에 머물렀다. 잉글랜드가 공격을 주도하는 양상으로 경기가 이어져 수비 상황에서는 5백 라인을 형성했다. 잉글랜드가 두 명의 공격수와 두 명의 측면 미드필더고 달려 들어 5백을 수비 라인에 두며 수적 우위를 가져가려 한 것이다.

신 감독은 이날 경기의 스리백이 기대한 만큼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수비적 부분 보다는 공격적 부분의 개선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상대가 강하게 공격하고, 프레싱 들어올 때, 사실 오늘 이정문 선수 때문에 고민을 상당히 많이 했다. 수비는 조직력 흔들리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상민 선수가 할 수 있는 역할, 김승우 선수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스리백 수비의 사이드 쪽에 공간을 주면서 실점했다.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스리백을 쓰면서 포어리베로로 공격을 전개할 때, 빠르게 역습으로 나갈 때 전개하는 부분도 아쉬웠다. 이상민 선수가 수비적으로 잘해줬지만 공격적으로는 잘 안됐다. 공격에 나갈 때 상대를 어렵게 하는 부분만 잘 하면 16강전도 충분히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폴 심슨 잉글랜드 감독도 한국의 스리백 시도에 대비한 모습이었다. 예상과 달리 지난 두 경기에서 투톱으로 선발 출전한 아담 암스트롱과 도미닉 솔랑케를 모두 선발에서 뺐다. 아르헨티나전에 왼쪽 미드필더로 뛴 도미닉 칼버트르윈과 기니전에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던 에인슬리 메이틀런드나일스를 전방에 세웠다.

좌우 측면 미드필더로 드리블이 좋은 아데몰라 루크만과 왼발 킥이 좋은 키어런 도월을 배치했다. 수비라인에도 변화를 줬는데, 레프트백 자리에 카일 워커피터스가 새로 투입됐고, 피야코 토모리의 센터백 파트너로 델 프라이가 출전했다. 프라이는 194세티미터의 장신 수비수로 한국이 정태욱을 활용한 세트피스 공격을 즐겨 사용해 꺼낸 카드로 보였다. 

심슨 감독은 한국의 스리백 수비의 허점을 만들기 위한 공격 전략을 짰다. 칼버트르윈과 메이틀런드나일스 모두 전통적인 투톱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칼버트르윈이 종종 원톱처럼 올라가고, 메이틀런드나일스는 공격형 미드필더 영역을 오갔다. 두 선수가 투톱 자리로 올라가기도 했으나 타깃형 공격수 보다는 좌측면 미드필더와 자리를 바꿔가며 스리백 수비의 제어 범위 밖을 노렸다.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로 선 조시 오노마와 오비 에자리아도 중원에서 기술적으로 뛰어난 플레이를 펼쳤다. 잉글랜드는 대회 개막 후 가장 공격적인 경기를 했다. 왼쪽 측면의 워터피터스와 루크만 모두 좌측면에서 적극적으로 돌파 시도를 했다. 라이트백 존조 케니 역시 윙어 지역을 빈번하게 달려들어 측면 공격을 강화했다. 

심슨 감독은 "전방에서 강한 압박을 통해 한국 수비를 괴롭힌 것에 만족한다"며 미드필더를 투톱으로 올려 경기한 것이 전방 압박 능력을 높인 측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심슨 감독은 "몇 달전 한국이 에콰도르전에 3-4-3으로 경기한 것을 분석했다. 선발 명단을 보고 스리백으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했고, 그대로 나왔다"며 한국의 스리백 전략을 예상하고, 잘 대처했다고 자평했다.  

#메이틀런나일스의 부상 변수에도 균형 회복한 잉글랜드

전반전은 잉글랜드의 공세 일변도였는데, 여기에는 메이틀런드나일스의 축구지능과 볼 관리 능력이 크게 역할을 했다. 메이틀런드나일스는 전반 4분 에자리아의 패스를 이어 받은 뒤 날카로운 크로스 패스를 보냈으나 칼버트르윈의 슈팅이 빗나갔다. 전반 18분에는 메이틀런드나일스가 적극적인 전방 압박으로 한국 수비의 공을 따낸 뒤 역습 공격을 만들었으나 마무리 패스를 칼버트르윈이 놓쳤다.

잉글랜드의 좋은 흐름이 끊긴 것은 전반 20분 메이틀런드나일스가 발목 부상을 당한 이후다. 하승운이 경합 상황에서 강하게 발목을 가격했다. 메이틀런드나일스는 다시 일어서 뛰려고 했으나 통증을 극복하지 못해 전반 28분 솔랑케와 교체됐다. 잉글랜드는 여전히 공수 양면에서 훨씬 노력하게 공을 다루며 경기 주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솔랑케 투입 이후 문전 지역에서 세밀함이 떨어졌다.

더불어 한국이 조영욱의 힘 있는 전방 움직임을 통해 좋은 역습을 보였다. 잉글랜드가 라인을 높이고 경기하면서 한찬희나 임민혁의 스루패스와 조영욱, 하승운의 배후 공간 돌파로 여러번 잉글랜드 수비의 뒤통수를 가렵게 했다. 전반전에 잉글랜드가 56%의 볼 점유율을 기록했으나 슈팅 숫자는 잉글랜드가 6회, 한국이 5회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잉글랜드 수비는 위기를 영리하게 넘겼다. 하지만 전반전 분위기를 주도하도고 득점하지 못한 것은 잉글랜드에게 뼈아픈 부분이었다. 잉글랜드는 후반전에도 현란한 돌파력을 보인 루크먼을 중심으로 좋은 공격을 만들었다. 골키퍼 송범근은 전반 35분에도 루크먼의 결정적 슈팅을 막은 것에 이어 후반 3분에도 문전 왼쪽을 파고든 루크먼의 슈팅이 다리 사이로 날아들었으나 침착하게 차단했다. 후반 7분에는 루크먼의 문전 왼편 슈팅이 골포스트를 때리고 나갔다.

#측면 장악한 잉글랜드, 후반전에도 떨어지지 않은 체력과 집중력

두드리면 결국 열린다. 조직력과 기술, 피지컬이 동반된 잉글랜드의 좋은 공격은 결국 후반 11분 선제골로 귀결됐다. 도월이 우측면에서 힐패스로 내준 볼을 케니가 돌파한 뒤 문전으로 마무리 패스를 보냈고, 도월이 어느새 달려들어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골문 구석을 찔렀다. 선제골 실점 직후 한국은 하승운과 한찬희를 빼고 이승우와 이진현을 투입해 주전 공격진을 투입했다.

한국은 교체 카드로 공격 의지를 보였으나, 잉글랜드는 공격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후반 20분경 볼 경합 상황에서 이유현이 워커피터스의 정강이를 밟았으나 VAR 판독 결과 경고 혹은 퇴장 판정을 받지 않았다. 한국은 후반 26분 준비한 세트피스 공격으로 기회를 만들었다. 이진현이 우측면으로 찔러준 볼을 이승모가 문전으로 보내 이상민이 마무리했으나 골문 앞에서 잉글랜드 수비수가 가까스로 걷어냈다. 

잉글랜드는 곧바로 루크먼의 솔로플레이로 한국 골문을 습격했으나 또 한번 골포스트를 때렸다. 잉글랜드는 후반 종반에도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좋은 장면을 만들며 우세한 모습을 보였다. 한국은 후반 34분 마지막 교체 카드로 임민혁을 빼고 백승호를 투입했다. 이상민을 공격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려 포백으로 전환했다. 

잉글랜드는 후반전에 선수 교체 없이 경기 집중력을 유지했다. 공격뿐 아니라 수비적으로도 강한 규율을 보였다. 후반 40분에 루크먼을 빼고 셰이 오조를 투입해 공격진의 체력을 보강했다. 확실한 승리를 위한 추가골 의지를 보였다. 후반 41분 오조가 좌측면을 허물고 시도한 크로스가 수비를 맞고 굴절되며 한국 골문으로 향했다. 송범근이 선방해 위기를 넘겼다. 

후반 막판 백승호가 공 관리 및 운반에 성공하면서 한국에 슈팅 기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추가 시간 5분 동안 한국의 공격과 잉글랜드의 수비가 부딪혔다. 경기는 결국 잉글랜드의 0-1 패배였으나 실력 차이와 숙제를 확인한 한 판이었다. 

사진=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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