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지금 K리그 클래식에서 가장 패스를 잘 하는 선수는 누구인가. 제주유나이티드의 리베로 조용형이 이 질문의 정답은 아니지만, 최종 후보로 포디움에 올라갈 자격은 있다. 조용형의 롱 패스는 포물선이 아니라 직선에 가까운 궤적을 그리며 질주하는 안현범의 발에 정확히 도달한다.

올해 K리그로 돌아온 34세 조용형이 얼마나 뛰어난 수비수였는지 새삼 실감하는 나날이다. 조용형은 신체 조건이 빈약하다는 한계론을 뚫고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 주전 멤버였고, 한때 화제를 모은 말라가 이적이 무산된 뒤 리그를 옮겨가며 꾸준한 경력을 이어 왔다. 2012년 이후 국가대표에 뽑히지 않으며 화제에서 벗어났던 조용형은 올해 대중들의 시야 안으로 복귀했다.

제주 수비진은 조용형의 유무에 따라 안정감이 달라진다. 제주 스리백에서 조용형이 후배들을 지휘할 때는 5경기 2실점을 기록했다. 조용형이 없을 때 기록은 4경기 7실점이다. 수비를 지휘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주고 있는 조용형을 서귀포에 있는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다음은 조용형과 인터뷰 전문. 

- 직설적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제주는 현재까지 K리그 클래식 1위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요. 자신의 합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나요?

작년에 3위를 하면서 ACL(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나가게 됐고, 어느 정도 선수를 보강한 상태에서 제가 돌아왔죠. 구단, 코칭스태프, 팬 모두 투자한 만큼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맏형으로서 책임감이 많이 들고, 경기를 뛰든 안 뛰는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아직까진 좋은 결과로 나오지 않나 생각합니다.

 

- 조용형이 돌아온다고 할 때, 확고한 주전이 아니라 벤치의 고참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어요. 지금처럼 본격적인 주전으로 뛰겠다는 생각으로 돌아왔나요?

당연히 선수로서 아직 힘이 있어요. 나이는 많지만 어린 선수들이 갖지 못한 경험이 있으니까요. 축구화 끈을 푸는 날까지 주전 경쟁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팀에 중심만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뛰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후배들에게 더 와 닿을 거라고 생각해요. 신경 많이 쓰이는 부분이죠.

 

- 어제(10일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전, 1-3 패배)처럼 중요한 홈 경기에서 빠지면 기분이 좋지 않겠네요?

글쎄요. 감독님이 추구하시는 방향이 있을 테고, 당연히 경기에 뛰고 싶긴 하지만 내색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팀 분위기를 깨는 건 여태까지 해보지 않았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적으로 감독님이 선택하시는 거니까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 제주에선 팀 분위기를 깨지 않으면서 출장 기회를 늘려달라고 귀엽게 말하는 선수도 있던데요. 안현범이라든지.

그 선수의 성격이죠.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많이 다른데, 우리 팀 멤버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경기를 못 뛰는 선수 중에서 다른 팀 가면 주전으로 뛸 선수 많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불만을 갖고 분위기 해치는 행동을 하면 팀에 마이너스잖아요. 훈련이나 연습경기를 통해 감독님께 보여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야 감독님이 기용하실 거고.

 

- 기량이 딱히 떨어졌다는 느낌이 없는데요. 원래 힘에 의존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노화가 두렵지 않은 건가요?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지금 하는 플레이가 젊었을 때와 비슷하다고 해요. ‘너는 오래 할 거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피지컬은 수비수치고 작은 편(182cm)이죠. 먼저 판단하고, 먼저 생각하는 게 제가 살아남는 방법이었어요. 상대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부시는 스타일도 팀에는 필요하겠지만요. 저희 팀은 (김)원일이, (오)반석이가 앞에서 싸워주고 제가 커버플레이하는 것이 잘 맞아서 K리그 최소 실점 중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 신체능력은 하락 중인가요?

당연히 나이를 먹었으니까 젊었을 때에 비해 어느 정도 떨어진 건 사실이죠. 그러나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봐요. 제주 와서 근력운동을 더 하게 됐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든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근육부상인데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죠. 감독님은 저에게 ‘많이 뛰지 말고 커버플레이 해라’ 하세요. 뭐 재미있죠.

 

- 다른 팀의 수비를 참고하나요?

그런 건 전혀 없고요. 처음 이 팀에 와서 전술훈련을 할 때 보니까 다들 너무 올라가더라고요. 작년에 카운터어택 맞아서 실점을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조금만 잡아주면 안정적으로 이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박)진포와 (안)현범이 중 한 명이 윙플레이 하면서 나가면 나머지 한 명은 뒤에 머물러서 수비 숫자를 서너 명으로 유지하자. 유기적으로 수비하자. 애들과 이런 이야기를 해요.

 

- 패스를 이렇게 잘 하는 선수였는지 걸 새삼 느끼고 있어요. 동료인 이찬동 선수가 “용형이 형 패스를 보면 진짜 대단하다”고 하던데요.

어느 정도 킥에는 자신이 있었고 패스도 자신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엔 전술적인 이유가 큰 것 같아요. 스리백의 리베로 역할은 신인 때 부천SK(제주의 전신)에서 봤던 포지션이에요. 가장 잘 할 수 있고, 가장 돋보였던 포지션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어요. 그런데 현대축구가 포백 위주로 가면서 저도 맞춰야 했고, 그럼 제약이 많이 따르죠. 포백에선 안전하게 빨리빨리 플레이해야 하는데. 스리백은 제가 볼을 빼앗기더라도 옆에서 커버해줄 수 있는 수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감이 있다고 생각해요.

- 스리백 시스템에서 좋은 패스를 할 여유가 더 많다는 거군요.

그렇죠. ‘후리’로 있는 상황이 많기 때문에 공을 가지고 나가서 줘도 돼요. 그런데 포백에서는 상대가 압박을 굉장히 빠르게 들어오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전술상 제가 돋보일 수 있는 건 스리백이 아닌가 생각하죠.

 

- 패스가 정확할 뿐 아니라 ‘구질’이 다양해요. 낮고 빠르게 슛처럼 날아가는 슛이 많고, 인프런트와 아웃프런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스핀을 넣더라고요. 킥 연습은 요즘 집중적으로 하는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했죠. 중학교 은사님이신 신호철(부평동중) 감독님이 항상 운동 마치고 왼발 오른발 킥 연습을 하라고 하셨어요. 그때 연습한 덕분에 양발 다 자신이 생긴 거 아닌가 하는데. 구질이라기보다 같은 방향 전환 킥이라도 붕 띄워 가는 것보다 빨랫줄처럼 가는 볼을 넣어주려고 노력을 해요. 그래야 수비수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빠른 전개를 위해 그런 킥들이 필요하죠. 지금은 굳이 따로 연습을 하진 않아요. 예전에 연습했던 것들이 도움이 되죠.

 

- 유독 잘 받아주는 선수는 누군가요?

아무래도 (안)현범이, (박)진포, (정)운이죠. 윙백으로서 굉장히 공격적이기 때문에 계속 안으로 잘라들어가거나 벌려뛰는 움직임을 해요. 주는 사람 입장에선 편하죠. 눈만 마주치면 뛰게 하면 되니까. 그게 우리 카운터어택의 근간이에요.

 

- 신인 시절인 2005년 부천SK 이야기를 더 해 볼까요. 데뷔하자마자 부천의 주전이 되면서 수비를 크게 개선시켰고, 많이 주목 받았죠. 어제 맞상대한 김재성이 데뷔 동기였고요.

김재성 선수, 박진옥 선수도 데뷔 동기죠. 우리 팀의 김한윤 코치님, 한동진 U-18 감독님, 이상호 U-18 코치님이 그때 동료였어요. 정해성 감독님이 대학생이던 저를 좋게 봐 주셔서 부천으로 부르셨죠. 어느 정도 성적이 괜찮았고 신인으로서 많은 걸 이뤘어요.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시즌이에요. SK는 그 전부터 스리백을 쓰고 있었고, 감독님이 초반부터 기회를 주셨죠. 그 뒤로는 대부분 포백에서 뛰었어요. 카타르에선 미드필더도 봤고, 작년에 중국에서 팀이 약하니까 스리백을 했어요. 특이한 건 조광래 감독님(현 대구FC 대표이사) 시절 대표팀에서 포어리베로를 봤던 거였죠. 성공적이진 않았어요. 제가 그 전술을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그게 생각처럼 쉬운 전술은 아니에요. 만화 같은 축구였죠.

 

- 데뷔 초기에 팀을 옮겼다가 돌아왔죠.

1년 뒤 제주로 연고이전이 됐어요. 그리고 2007년에 경남FC로 트레이드가 됐죠. 브라질 전지훈련까지 갔는데 박항서 감독님이 “짐 풀지 마라, 너 이적됐다”라고 하셔서 성남 가서 한 시즌 보내고 다시 제주도로 오게 됐죠.

 

- 만년 하위권이던 제주가 2010년 준우승 돌풍을 일으켰는데, 절반만 함께 했어요.

1위를 달리고 있던 2010년 8월에 카타르(알라얀)으로 가게 됐죠. 아쉬워요, 우승할 찬스였는데. 그때도 분위기 좋았어요. 지금보다 멤버가 좋진 않았는데, 시즌 치르다보면 매 경기 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시즌이 있어요. (김)은중이 형이 중심을 잡아줬고 (구)자철이 (박)현범이, 이런 선수들이 많은 활약을 해 줬어요.

 

- 지금도 1위를 달리고 있는데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2010년과 비교한다면?

일단 감독님이 다르시죠. 그렇지만 박경훈 감독님과 조성환 감독님이 추구하는 방향은 똑같은 것 같아요. 강한 압박을 통한 볼 점유를, 빠른 축구를 원하신다는 것. 다른 점이라면 지금은 거의 더블 스쿼드가 갖춰져 있는 상황이라는 것. 앞으로 경기가 많은데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좁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이라고 생각해요. 운만 조금 따라주고 계속 열정적으로 한다면 올해 말에는 좋은 성적을 갖고 겨울을 나지 않을까 생각을 갖고 있죠.

 

- 여러번 한 이야기지만 알라얀으로 이적할 때는 말라가 이적까지 약속된 줄 알았잖아요.

거기 있는 에이전트 통해서 그렇게 연락이 왔고, 그래서 말라가에서 온 팩스까지 보면서 계약을 했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흐지부지 지나가더라고요.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바로 유럽으로 갔어야 했는데. 아시아 선수가 중앙수비수로서 유럽 리그에 나간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것 같아요. 기술은 별 차이 안 날 수 있지만 피지컬 차이가 크니까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좋아하는 후배 홍정호가 유럽에 갔잖아요. 속으로 되게 자랑스러웠거든요. 솔직히 유럽에서 좀 더 뛰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작년에 중국으로 가게 되면서 팬들에게 비난을 받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안 좋았죠. 작년 중국 리그 경기에서 만나 인사를 나눴는데, 본인 선택이니까 중국으로 온 것도 응원해줘야겠지만 유럽에서 더 발자취 남길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아쉬워요.

 

- 지난 이야기를 대충 했는데, 그 중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2010년이었던 것 같아요. 월드컵도 다녀왔고, 팀 성적도 굉장히 좋았고, 월드컵 성적을 통해서 해외진출도 할 수 있었고.

 

- 지금은 축구선수로서 만족하면서 뛰고 있나요?

엄청 재밌죠. 이렇게 좋은 스쿼드와 뛰는 게 프로 생활 처음인 것 같아요. 카타르 있을 때도 괜찮았지만 지금 멤버가 더 좋아요. 일단 공격 선수들에게 배급하면 키핑이 되니까 수비 입장에선 쉴 시간이 있어서 편해요. 그런데 중국에서는 주면 빼앗기고, 90분 내내 수비만 했거든요. 올해는 우리가 경기를 패스 위주로 지배하면서 하니까 상당히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 그만큼 기대도 크겠네요.

제주라는 구단에서 이만큼 투자한게 제가 알기론 처음 같아요. 투자한 만큼 저희가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입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이 하나로 똘똘 뭉치는 걸 감독님이 굉장히 원하세요. 어제 경기는 비록 졌지만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목까지 쉬어가며 화이팅을 외쳐줬거든요. 감독님이 그거 들으시고 패배에도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아 보이시더라고요. 하나가 된 모습을 보며 더 강팀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해야 할 일은 일단 기회가 주어지면 계속 좋은 모습 보이고 승리하는 것. 안 뛰더라도 벤치에 있는 선수들 잘 융화시켜서 팀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 선수들도 팬들 댓글을 다 봐요. 제주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도 알고 있어요. 계속 승리해야 되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된다는 부담감도 책임감도 있죠.

글= 김정용 기자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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