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스페인, 잉글랜드, 독일, 이탈리아 1부 리그를 '4대 빅리그'라고 부른다. 2018년부터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4팀이 직행하는 4개 리그 중 이탈리아 세리에A만 국내 중계가 없다.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주목도는 떨어진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칼리아리에서 2일(한국시간) 데뷔전을 치르며 북한 선수 최초로 유럽 5대 빅리그에 출장한 한광성은 4년 전 이승우와 격돌한 북한 공격수였다.

2014년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은 이승우가 처음 자기 능력을 생방송으로 보여준 대회였다.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서 출장 정지 징계 중이던 이승우와 백승호가 아시아 상대팀들을 차례로 굴복시키자 인기는 빠르게 치솟았다. 특히 일본 수비를 개인기량으로 농락하며 득점한 대목이 압권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북한과 만난 결승전에 큰 기대를 걸고 많은 언론이 보도할 수 있도록 현장 취재를 독려했다.

그러나 결과는 북한의 승리였다. 2014년 9월 20일(한국시간)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국립경기장에서 이승우 등 한국 선수들도 분전했으나 문제는 북한이 더 무시무시했다는 점이었다. 한국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북한이 후반전에 두 골을 몰아쳐 역전했다.

한광성은 이 대회에 참가한 북한의 ‘유럽파’ 6명 중 하나였다. 3명이 스페인 바르셀로나, 나머지 3명은 이탈리아 페루자에 있는 축구학교에서 기술을 연마했는데 한광성은 바르셀로나 유학파였다. 공격수는 스페인, 수비수는 이탈리아로 보내 각 나라의 장점을 흡수하도록 한 육성 프로젝트였다. “이승우는 훌륭한 선수지만 우리 공격수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했던 연광무 북한 감독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날만큼은 북한 공격수들의 활약이 이승우보다 뒤쳐지지 않았다.

한광성은 폭발적인 신체 능력과 깔끔한 기본기로 여러 번 한국 수비를 돌파해냈다. 한국이 앞서고 있던 후반전 초반에는 동점골을 넣었다. 먼 거리에서 날아온 롱 패스를 여유 있는 퍼스트 터치로 잡아놓은 뒤 오른발로 밀어넣는 멋진 슛이었다. 한광성은 대회 4골로 이승우(5골)에 이어 득점 2위에 올랐다.

이후 한광성은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듬해 칠레에서 열린 U-17 월드컵에서는 모든 경기에 출장했으나 무득점에 그쳤고, 북한의 성적은 16강이었다. 2016 AFC U-19 챔피언십에도 참가해 1골을 넣었지만 북한은 3전 전패로 탈락했다. 한국 역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던 대회다. 이때는 이승우가 참가하지 않았다.

국제대회 외에는 활약상을 확인하기 힘들었던 한광성이 지난 3월 입단테스트를 통해 칼리아리에 입단하며 한국 대중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북한 선수의 이탈리아 진출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한광성과 같은 또래인 최성혁이 피오렌티나에 입단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북한 선수의 해외 진출은 ‘해외 노동자를 통한 외화벌이’로 해석할 수 있다. 이탈리아 의회가 유엔의 대북제재를 위반하는 영입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한 뒤 최성혁은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방출됐다. 한광성도 대북제재 관련 논란에 휩싸였지만 일단 데뷔전을 치르며 유럽에 안착할 준비를 마쳤다.

프로 데뷔에 앞서 유소년 대회에서 한광성의 기량을 먼저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3월 14일 열린 국제 유소년 대회 ‘비아레조컵’에 칼리아리 U-19의 일원으로 참가, 파르마를 4-2로 꺾을 때 한 골을 득점했다. 문전에 높이 뜬 공을 완벽한 자세의 바이시클킥으로 골망에 꽂아 넣었다.

한광성은 상승세를 타고 1군에 진입했고, 벤치에 앉은 두 번째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2일 열린 팔레르모 원정 경기에서 부상 당한 마르코 사우 대신 후반 41분 투입됐다. 큰 활약은 없었지만 열심히 수비에 가담하다가 측면으로 빠지며 역습에 가세하는 등 성실한 플레이로 칼리아리가 승리를 지키는데 일조했다. 승리한 뒤 밝은 표정으로 동료들과 세리머니를 했고, 라커룸에서 반라 상태로 환호하며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빠지지 않았다.

한광성은 칼리아리 역사상 첫 아시아 출신 선수이자 북한 국적 선수 중 처음으로 5대 리그에서 출장한 선수다. 기존 유럽파 선배 중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건 박광룡이었다. 2011년 스위스 명문 바젤로 이적한 박광룡은 한국의 박주호와 팀 동료가 돼 화제를 모았다. 당시 박주호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지만, 서로 지킬 건 지키면서 문제 없이 잘 지낸다. 성격 좋은 동생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박광룡은 계속 스위스의 각급 리그에서 활약하다 지금은 로잔느스포르트의 주전 공격수다. 정대세와 같은 일본 출신 북한 대표와 달리 박광룡, 한광성은 평양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자란 선수들이다.

마시모 라스텔리 감독은 ‘라 레푸블리카’와 가진 인터뷰에서 “한광성은 아주 흥미로운 선수다. 훌륭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정말 빠르다. 사우가 지치고 우리 팀이 잘 전진하지 못할 때 그를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한광성은 자기 몫을 해냈다”고 호평했다.

“한광성에겐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다. 비아레조컵을 비롯해 굉장히 강렬한 첫인상을 줬다. 성취에 굶주려 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우리를 크게 만족시켜줄 거라고 기대한다.”

올해는 이승우도 프로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은 시기다. 이승우는 U-20 월드컵과 프로 데뷔를 통해 진짜 경쟁을 시작할 전망이다. 4년 전 방콕에서 열린 결승전 당시 “바르셀로나 1군 데뷔를 3~4년 안에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던 걸 감안하면 아직 자신이 생각한 시기보다 늦지 않았다. 당시 한국을 이겼던 한광성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이례적인 해외 진출을 해냈고, 뜻밖에 이승우보다 먼저 빅 리그 활약을 시작했다. 북한이 키운 ‘유학파’ 중 해외에 자리 잡은 첫 선수라는 점에서 한광성은 더 흥미롭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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