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울리 슈틸리케 남자 대표팀 감독은 다시 기회를 잡았다. 이 결정 자체도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더 큰 논란을 불러온 건 전술적 문제가 없다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진단이었다.

이용수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이 3일 브리핑에서 지나치게 단순한 문제 인식을 밝힌 뒤 많은 비판이 이어졌다. 감독을 감싸기 위해 말을 아꼈다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다만 이 위원장이 “나름대로 상대팀에 맞고 우리 선수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여러 전술이 준비돼 왔다고 생각한다”며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적 역량을 옹호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은 여러 언론, 전문가, 일반 축구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원에서 비판 받아 왔다. 이 위원장이 ‘전술은 괜찮았으나 매 경기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말한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제 인식이다.

한 기술위원은 “개인적으로는 응집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며 위원 중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적 역량을 문제 삼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현 대표팀에 대한 전술적 신뢰를 공표한 이상 문제제기는 ‘소수의견’일 뿐이다.

 

선수 선발, 배치, 교체 운영 전반의 문제들

현재 대표팀에 전술적 문제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건 지난달 28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7라운드 시리아전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났다. 세트 피스 상황에서 한 골을 넣어 승리하긴 했지만 한국 공격은 답답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고명진의 오른쪽 측면 배치는 명백한 실패였다. 한국 미드필더 중 유일한 왼발잡이 고명진을 오른쪽에 배치해 안으로 파고들며 플레이하도록 유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고명진은 상대 풀백을 자연스럽게 돌파하며 안으로 이동할 정도로 돌파력이 좋지 못했고, 고명진의 왼발 패스를 받기 좋은 위치에 동료가 배치돼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성용은 너무 뒤에, 남태희와 황희찬은 너무 앞에서 고명진과 동떨어져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적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 중 하나는 단편적인 전술관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이후 대부분 경기에서 포백과 원톱을 고집했다. 이 정도는 감독의 철학과 스타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더 세부적으로도 경직된 원칙이 효율적인 팀 구성을 저해하고 있다. 중앙 미드필더는 꼭 체격이 좋은 선수를 쓰는 것이 대표적이다. 클럽과 달리 대표팀에선 선수 영입이 불가능하다. 체격 조건이 감독 나름의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전체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면 잘 활용할 방법을 고안해야 한다. 그러나 K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중앙 미드필더인 이재성은 대표팀에서 측면 자원으로만 쓰이고 있다. 대표팀에 선발돼 테스트를 받았던 체구 작은 미드필더 대부분이 정착에 실패했다. 한 축구인은 “이 포지션의 선수는 이래야 한다는 원칙이 너무 확고하신 것 같다”는 아쉬움을 밝혔다.

최근에는 비효율적인 교체도 문제로 불거졌다. 3월 23일 중국전 막판에 투입된 허용준, 시리아전 막판에 투입된 황의조가 대표적이다. 허용준은 대표팀에 갓 불려간 신예 선수로, 이번 소집을 통해 한층 성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황의조는 컨디션이 좋을 때 대표팀 원톱 자리에서 주전 경쟁도 했던 선수다. 그러나 둘 다 너무 부담스런 시간에 투입돼 팀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약속된 플레이를 많이 만들지 않는 편이었다. 대표 선수들이 그동안 공통적으로 증언해 온 슈틸리케 감독의 스타일은 “선수들과 대화를 많이 한다. 전술에도 선수들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점이다.

팀에 문제가 없고 공격전술이 상대팀에 통할 때는 슈틸리케 감독의 운영 방식이 ‘민주적인 리더십’처럼 보였다.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편하게 해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상대의 수비진을 깰 수 있는 전술적, 개인적 역량이 부족한 지금은 단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의 팀은 전술과 규율이 모두 부족한 축구로 전락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최근 설기현 코치와 차두리 분석관이 합류한 뒤 두 인물이 전술 훈련을 상당 부분 담당하기 시작했다. 특히 설 코치를 중심으로 약속된 공격 플레이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소집 기간이 짧아 전술을 완전히 숙지하기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이번 대표팀 일정은 2연전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시간이 있는 편이었다. 훈련 성과는 경기력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6월 13일 열리는 카타르전을 앞두고 대표팀을 비교적 일찍 소집할 전망이지만, 전술적인 접근법 자체가 비효율적이라면 기간을 늘린다고 별다른 효과를 보긴 힘들다.

리더십과 감독의 심리상태도 전술 문제와 밀접

전술적 실패가 반복되면 곧 리더십이 떨어진다. 시리아전 이후 한 대표 선수는 허용준, 황의조를 비롯한 전술 변화가 어떤 의도인지 파악할 수 없다며 “감독님이 생각이 있으실 거라고 믿지만 의아해 보이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감독의 전술이 성공하면 선수들은 자연스레 감독을 인정하고 따르게 된다. 전술 문제는 권위와 카리스마도 떨어뜨린다.

비효율적인 전술과 느슨한 규율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규율이 느슨해 일부 공격자원이 비효율적인 돌파를 고집하거나 미드필더가 공을 오래 끌게 되면, 전술적으로도 큰 문제가 생긴다. 체력적으로는 최선을 다해 뛰고 있지만 감독이 경기 방침을 제시하지 않으면 결정을 내리는 순간마다 제멋대로 플레이할 수 있다. 한 대표 선수는 “지금도 최선 다하고 있지만 카리스마 있는 감독님 계실 때와는 경기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술적 문제는 전술판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문제가 전술과 관련을 맺는다. 슈틸리케 감독의 현재 심리 상태도 전술적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방어적인 발언을 하며 심리적으로 고립됐다는 걸 노출했다. 시리아를 상대로 부진한 경기를 한 뒤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계속 감독이 전술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젠 감독이 전술을 바꾼다고 뭐라고 한다”며 여론에 대한 불만을 직접 드러내기도 했다. 이 발언 이후 라커룸의 선수들에게 돌아간 슈틸리케 감독은 ‘방금 기자회견에서 최대한 방어하고 왔다’는 걸 선수들에게 직접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감독의 권위를 스스로 실추시키는 발언이다.

한 축구인은 “내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슈틸리케 감독은 외로워 보인다. 모든 감독은 외로운 존재인데, 지금 슈틸리케 감독은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의사결정을 할 때도 믿고 토론할 사람이 없어 보인다. 감독이 저렇게 외로우면 현명한 판단을 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심리적으로 쫓기는 사람은 판단력도 흐려진다는 것이다.

한 기술위원은 “기술위에서 슈틸리케 감독의 의사결정 권한을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에게 전권을 주지 않는 것도 어렵다. 결국 기술위원들이 K리그를 돌아다니며 선수를 추천 선수를 찾는 방안 정도가 나왔다. 선택은 감독의 몫으로 남겨두고, 선택지를 늘려주기 위한 방안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을 남겨놓을 거라면 의사결정을 더 정교화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전술적 문제가 없다는 이 위원장의 진단부터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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