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병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 레전드다. 22년간 K리그를 누볐다. K리그 역사상 가장 오래 현역으로 생활하며 불혹을 넘어선 나이까지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며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됐다. K리그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레전드’라는 수식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김병지는 지난 해 축구화를 벗고 정든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현역 시절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노란 염색머리와 꽁지머리를 그대로 유지하며 여전히 그라운드 안팎을 누비고 있다. 은퇴 후 김병지의 삶은 더 바빠졌다. 현역 시절 오직 축구공만 바라보며 뛰었다면, 은퇴 후 김병지의 시야는 더욱 넓어졌다.

김병지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 축구팬들이 김병지를 접하는 것은 주말 저녁이다. 축구전문채널 SPOTV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해설을 하고 있다. 주중과 낮에는 더 바쁘다. 언론사에 칼럼을 쓰고, 사회공헌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동시에 자신의 축구교실도 운영하고 있다. 축구 외의 일은 더 바쁘다. 지난 달에는 자신이 자란 밀양시를 찾아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1월에는 인천시에서 다문화가정에 세탁기 20대를 지원했고, 지난 12월에는 필피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키아오 펀치 대결을 통한 기부 이벤트를 펼쳤다. 최근에는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해 진지함과 예능감을 동시에 뽐냈다. 

김병지를 만난 것은 지난 1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SC제일은행이 개최한 국제 아마추어 풋살대회 'SC트로피컵 로드 투 안필드(Road to Anfield) 2017' 한국 예선전이다. SC제일은행의 모그룹인 스탠다드차타드그룹이 개최하는 국제 아마추어 풋살대회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8개국에서 국가별 예선전이 열리며, 각 국의 우승팀은 오는 5월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구장으로 초대되어 ‘SC트로피컵 2017 대회’ 본선 대회에 출전할 권한을 획득한다. 

김병지는 특별 게스트 자격으로 행사에 초청됐다. 당초 약속된 것은 사인회와 축구 시범이 전부였다. 하지만 김병지는 잠시 얼굴을 비추고 행사장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만나 함박웃음을 짓는 팬들과 일일이 눈을 맞췄다. 풋살 대회가 펼쳐지는 동안에는 직접 마이크를 들고 장내 해설까지 도맡아 했다. 오랜 현역 시절을 한 덕분에 시쳇말로 ‘놀아도 먹고 살 만’하지만, 여전히 무대에 선 순간 100%를 쏟아내는 김병지의 속내가 궁금했다. 은퇴 후 김병지가 그리는 삶의 그림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은퇴 후 지속적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어떻게 지내나?
SPOTV에서 해설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일이다. 다양한 일들을 닥치는 대로 하고 있다. 좋은 일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오늘처럼 기업의 행사도 한다. 축구 중계 외 방송에서도 섭외가 오면 좋은 취지로 참가를 하고 있다.

-너무나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축구를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다. 축구 선수는 은퇴 후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스포츠마케팅을 배워 행정쪽으로 나갈 수도 있다. 나는 일단 세상을 다양하게 더 경험하는 중이다. 더 많이 이해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듣는 중이다. 

행사장에서 만난 김병지는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인회가 중 빗줄기가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팬들과 함께 비를 맞았다. 자신이 가져온 골키퍼 장갑에 ‘내 뒤에 공은 없다’는 문구를 적더니 “오늘 행사 끝나고 추첨을 통해서 드릴 테니, 꼭 끝까지 계세요!”라고 소리친다. 김병지가 만든 행운의 추첨 시간이 돌아오자, 열기는 뜨거워졌다. 골키퍼 장갑을 놓친 이들의 아쉬운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김병지는 “오늘 다 벗고 갑니다!”라고 선언했다. 신고 있던 축구화, 티셔츠 심지어 바지까지 모두 스스로 경품으로 내걸고, 맨발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SC트로피컵에 게스트로 참가한 것 역시 마찬가지인가?
기업의 행사다. 하지만 사람들이 풋살을 통해 축구를 즐기는 공간이다. 내가 현역 시절 즐기는 축구를 했는데, 사람들이 축구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너무 좋다. SC제일은행이 협력기업을 초청해 하는 행사로 단순하게 볼 수도 있지만, 이런 행사에서도 배울 점이 많이 있다. 기업간의 상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축구를 매개로 기업과 사람, 사람과 사람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공부가 되고 있다. 

-기업 행사에 초청되었지만, 오히려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인가?
어떤 일이던지, 가는 곳 마다 공부가 많이 된다. 특히 축구를 매개로 지식은 더욱 가치가 있고, 더욱 큰 즐거움을 준다. 나도 축구를 좋아하지만, 작은 축구공 하나가 사회의 많은 것들을 이어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배운다. 사람들이 함께 축구를 즐기고 축구인들도 함께 의미 있는 보탬이 될 수 있는 자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지만 김병지가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축구 해설이다. 현역 시절에는 누군가가 자신의 활약을 해설을 했지만, 이제는 다른 선수들의 활약을 말로 풀어야 한다. 워낙 달변가로 소문이 자자한 김병지 이지만, 축구 해설은 생소하다. 그래서 더 많은 열정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는 이유 역시 ‘세상 공부’다.

-여러 활동을 통해 학습을 하고 있지만,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는 탓에 축구 공부를 더 한다고 들었다.
현재 가장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해설인데, 축구 자체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되고 있다. 진짜로 공부를 많이 한다. 한 경기 해설을 위해 준비를 정말 많이 해야 한다. 경기는 90분이지만, 집에서 내내 공부를 하고, 방송 2시간 전에 무조건 준비를 완료한다.

-현역 생활을 많이 했으니, 해설 준비는 비교적 수월하지 않은가?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하는데, 기본적으로 해당 팀의 최근 경기 5경기 정도 살펴보고, 전술과 선수들의 특성, 부상 등을 학습한다. 팀과 감독의 철학은 물론이다. 경기에는 22명이 나서지만, 킥오프 한 시간 전 라인업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누가 나설지 아무도 모른다. 유소년 선수들까지 모두 정보를 알아야 한다. 체크할 것이 너무 많다. 몸으로 익히는 것 보다 많이 어렵다. 외울 것이 많더라.(웃음)

-해설을 하며 어려운 점은?
아무래도 현지 중계 화면을 보고 중계를 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해설을 하면, 경기의 전체적인 면을 보고 말을 할 수 있지만, 화면만 보고 팬들에게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은 것 같다. 화면은 경기 전체가 아닌 부분을 잡고 있으니, 나도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팀에 대한 공부를 더 많이 하는 이유다.

-팬들의 반응도 살펴보나? 선플과 악플이 공존하는데, 상처도 받나?
발음에 대한 부분이 많이 있다. 전문 지식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지만, 해설은 말 자체를 엮어내는 기술이 중요한 것 같다. 시청자가 더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게 전달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에 지적이 있으면 다음 경기에 같은 실수를 하지 않도록 더 노력하고 있다. 가끔 상처가 되는 댓글도 있다진실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악의적인 댓글이 나오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잘 하지 못하는 부분, 틀린 부분에 대한 것은 수긍하고 더 공부를 하도록 노력한다. 격려의 댓글은 항상 힘이 된다.

-은퇴 후 김병지의 장래 희망은 무엇인가?
앞서 이야기 했지만, 모든 가능성의 문은 열어 놨다. 일단 ‘축구를 위한 과정’을 거치며 경험과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선수 생활을 오래 하면서 너무나 큰 사랑과 도움을 받았기에 평생 보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큰 틀이다.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분들도 돕고, 아이들을 만나 축구를 가르치기도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내가 잠시라도 얼굴을 내밀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찾아 가겠다. 불러만 달라(웃음)

글. 사진=김동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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