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안양] 김정용 기자= K리그에 모하메드 살라, 다니 아우베스, 알베르토 질라르디노의 ‘썰’을 풀 수 있는 선수가 있다. K리그2 시민구단 FC안양에 있다. 올해 영입된 가나 출신 공격수 아코스티다.

아코스티는 가나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축구를 배웠다. 레지아나, 피오렌티나, 유베스타비아, 키에보, 카르피, 모데나, 크로토네를 거쳤다. 특히 명문 피오렌티나에서는 3시즌 머물면서 1군 경기에도 가끔 투입됐다. 마지막 이탈리아 소속팀이었던 크로토네에서 2016/2017시즌 후반기 반 시즌 동안 활약하며 선발출장 3회 등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크로아티아 명문 리예카를 거쳐 안양으로 향했다.

가나에서 축구를 배워본 적도 없었는데 이탈리아로 스카우트된 사연, 질라르디노의 피오렌티나 후배였던 사연, 세리에A에서 상대해 본 스타들, 최근 이탈리아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로 고생 중인 지인들 등 아코스티가 들려준 이야기는 폭이 넓었다. 안양 관계자는 아코스티를 ‘진솔한 성격’이라고 소개했는데, 실제로 피오렌티나에서 세상을 떠난 다비데 아스토리 이야기가 나오자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 아코스티의 ‘제2의 고향’ 이탈리아가 겪는 코로나19 대위기

그렇다. 이탈리아는 엄청난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런 종류의 재앙에 대한 준비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사람들이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현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감염된 뒤였다. 지금은 대혼란이다. 다들 겁먹었다. 밖에 나갈 수도 없다. 아시다시피 이탈리아는 내 두 번째 고향이라 빨리 정상화되길 바란다.

내가 오래 살았던 에밀리오로마냐는 가장 유행이 심한 지역 중 하나다. 친구들이 좀 살아서 걔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내 에이전트도 거기 산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집에 있어야 한다. 가족 중 단 한 명만 일주일에 1회 외출을 허락받아 음식과 생필품을 구매할 수 있다. 통행증이 필요하다. 한 위치에서 20분 이상 머무를 수 없으며 이동 범위도 집에서 200미터 이내다. 미친 상황이다. 진짜 미친 상황.

 

▲ 축구를 배워본 적도 없는데 스카우트 된 이야기

사실 가나에서 축구 경기를 한 적이 없다. 축구를 했던 건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찬 것이 전부인데, 부모님은 그걸 싫어하셨다. 우리 아버지가 축구선수였는데 아무런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자랐는데, 한 1천 명쯤 살았나? 거기서 축구는 직업이 아니었다. 축구는 학교 안 가는 나쁜 애들의 일이었다. 그래서 축구를 하지 않았다.

어느 주말,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 고모를 만나러 갔다. 집 바로 아래 길바닥에서 축구하는 애들이 있더라. 그냥 걔네들 보고 있는데 한 명이 엄마가 부른다고 집에 갔다. 11 대 11 해야 하는데 사람이 비니까 나보고 끼라고 하더라. 그래서 대타로 들어갔는데, 운 좋게도 그 경기를 스카우트 한 명이 길가에서 보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그 한 경기만 보고 나를 이탈리아로 데려가겠다고 했다. 축구화도 없는 길바닥 축구였는데. 그러니 축구를 시작한 건 이탈리아에서 16세 때였다. 처음 배울 땐 엄청 힘들었다. 내 아들이 6, 7살부터 배우는 축구의 기초를 난 16세에 처음 배웠다.

 

▲ 무투, 질라르디노 후배였던 피오렌티나 썰

첫 소속팀 레지아나(당시 3부)는 등록 허가가 나자마자 나를 바로 1군에 올렸다. 그리고 한 시즌 만에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17세였다. 훈련은 대부분 1군과 했지만 출전기회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경기는 2군에서 뛰었다. 1군에는 질라르디노, 아드리안 무투, 스테판 요베티치, 아뎀 랴이치, 후안 콰드라도가 있었으니까.

후반기에는 1군에서 좀 뛰었는데 9경기였나(실제로는 2009년 피오렌티나에 합류한 뒤 2011/2012시즌 5경기를 소화했다) 그랬다. 그리고 세리에B로 임대됐다. 그 다음에는 세리에A의 키에보베로나로 임대됐고. 그때 내가 뛰기에는 피오렌티나가 너무 빅 클럽이니 더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더 작은 팀들을 돌아다녔다. 피오렌티나에서는 벤치에 앉거나, 기껏해야 5분에서 10분을 뛰는 게 고작이었다. 모데나, 라티나, 그리고 세리에A의 크로토네까지 갔다. 그때 결정했다. 이탈리아가 아닌 환경으로 바꾸기로. 그래서 지난번 구단인 크로아티아의 리예카로 갔다.

피오렌티나는 세리에B 팀들과 많이 다르다. 라커룸에서 아무도 농담을 안 한다. 무투, 질라르디노, 콰드라도, 보르하 발레로 다들 아주 심각한 선수들이었다. 일단 훈련에 오면 그건 장난이 아니고 일이라는 태도였다.

훈련이 끝나고 밖에 나갈 때면 요베티치, 랴이치, 마르코 마르키오니, 루벤 올리베라, 아마우리와 함께 음료를 마시러 다녔다.

아스토리(피오렌티나 소속으로 2018년 요절)는 내가 떠나기 직전 한 달만 함께 지냈다. 누구나, 언제나 아스토리에 대해서는 좋은 이야기만 했다. 리더였고 진짜 좋은 남자였다.

 

▲ 보라색은 내 운명?

피오렌티나 기자가 전화해서 물어보더라. “너 보라색이라서 그 팀 고른 거야?” 사실 안양행을 결정할 때는 몰랐다. 이적한 뒤 훈련하러 가는데 보라색이 있더라. 그때 ‘이건 운명이구나’ 생각했다. 비올라(보라색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피오렌티나의 별명이기도 하다)에서 경력을 시작해 지금도 비올라를 입으니까. 보라색은 아름다운 색이다.

 

▲ 가장 많은 기회를 잡았던 크로토네 시절

크로토네에서 6개월만 있었지만 많이 뛰었다. 첫 선발 경기 상대가 AS로마였던 것 같은데 크로토네에 도착한지 겨우 2주 정도 됐을 때였다. 훈련도 괜찮았고 감독이 날 좋아할 거라고 느꼈다. 첫 경기에서 벤치에 앉았는데, 왼쪽 윙어(아드리안 스토이안)가 갑자기 열이 났다. 워밍업 마치고 라커룸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감독이 “너 뛰어야겠다. 다른 선수가 못 뛰게 됐어”라고 하더라. 그래서 “안 될 게 있겠어요?”라면서 들어갔다. 기분 좋은 일이었다. 크로토네에서 처음부터 선발로 뛰었으니까. 내 경기력은 꽤 좋았다. 그 경기 우리 팀 최우수선수였다. 그때 아마 로마에 모하메드 살라, 에딘 제코, 라자 나잉골란, 코스타스 마놀라스 같은 선수가 있었을 거다. 졌지만, 정말 좋은 팀을 상대로 괜찮은 경기를 했다. 이 경기를 계기로 이적하자마자 세리에A로 이적하자마자 6경기인가 연속으로 뛸 수 있었다.

▲ 살라를 막아보려 고생한 이야기

세리에A에서 상대한 선수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건 살라인 것 같다. 정말 빠르고, 상대하기 힘들다. 살라는 왼쪽, 난 오른쪽 윙어였다. 그래서 살라를 쫓기 위해 수비에 가담해야 했다. 정말 어려웠다. 빨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플레이를 예측할 수가 없다. 왼쪽으로 갈 때도 있고, 오른쪽으로 갈 때도 있다. 나는 윙어라서 매 순간 공격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살라를 상대할 때면 우리 수비수를 꼭 도와줘야 했다. 만약 살라가 레프트백과 일대일을 하게 내버려두면 죽여 버리기 때문이다. 상대 윙어가 평범하다면 수비는 수비수에게 맡겨두고 난 공격하러 가면 되는데 살라를 상대할 때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2 대 1로 수비해도 어렵긴 마찬가지고.

 

▲ 아우베스에게 평가당한 사연

다니 아우베스(2017년 당시 유벤투스)를 상대했던 건 유벤투스의 챔피언 여부가 결정되는 막판 경기였다. 토리노에서 열렸다. 아우베스가 오른쪽 수비수, 내가 왼쪽 윙어였다. 나는 아우베스가 하는 말이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동료의 플레이를 보듯이, 내 플레이를 보고 “오 이번 거 괜찮았어”라든가, 내가 아우베스를 상대로 드리블을 치면 “잘했다”라고 했다. 보통은 이러지 않는다. 꼭 이겨야 하는 중요한 경기였는데도 내 실수를 지적하고, 내가 잘 하는 플레이를 칭찬했단 말이다. 이런 게 챔피언의 면모인가 싶다. 걷어차는 걸 생각했는데 드리블로 날 가둬버렸다.

 

▲ 가나 선배 문타리 이야기

아시다시피 설리 문타리도 가나 사람이다. 세리에A의 가나 선수들과 교류가 가끔 있었는데 특히 문타리의 동생(설리 무니루)과 친했다. 함께 어울리긴 했다. 집이 아주 가까웠다. 걸어서 1분 정도? 그래서 그 집에 가서 문타리 동생과 게임을 자주 했다. 문타리는 아주 조용한 선수다. 경기장에서는 약간 정신 나간 상태잖나? 근데 집에서 만나면 말 한 마디 끌어내는 게 어렵다. 아주 과묵하다. 가나 선배 중에는 마이클 에시엔도 알고, 케빈프린스 보아텡도 짧긴 했지만 알았고, 아사모아 잔도 알고 지낸다. 왜냐면 가나로 돌아가면 축구선수끼리 커피도 한 잔 하고 그러니까. 대부분 친구의 친구라 아주 친하진 않지만 가나에서는 다 만나게 된다.

 

▲ 그동안 겪어 온 훈련과 안양 훈련의 차이점은

여기 훈련은 좀 다르다. 훈련량이 아주 많다. 아아주. 유럽에서도 강도는 높지만 방식이 좀 다르다. 여기는 신체훈련의 비중이 높다. 운동기구를 많이 쓰고, 달리기를 많이 한다. 내가 겪은 기존 팀들은 공을 갖고 하는 훈련이 더 많았다. 거기서 근력운동은 의무가 아니었다. 하고 싶으면 하라는 거였다. 1대1, 2대1, 2대2 등 공을 갖고 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는 하루 두 탕 훈련도 자주 한다. 유럽에서는 하루 두 탕을 뛴 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월요일 오전에 실내운동, 오후에 공 가지고 하는 운동 조금 하면 두 탕으로 쳤다. 여기서는 어림없지.

 

▲ 울산 수비수 데이비슨이 한국행을 '강추'했다

제이슨! 리예카에서 한 시즌 동안 함께 있었고 룸메이트였던 적도 있다. 한국으로 오기 전에 데이비슨에게 얼마나 전화를 많이 했는지 모른다. 벌써 여기서 1년 있었으니까. 한국 축구, 음식, 학교, 가족들이 지내긴 어떤지 등등 모든 걸 물어봤다. 입국하기 전날 ‘나 들어간다’ 어쩌구 하는 문자를 보냈다. 시간 나면 한 번 보자고 했다.

데이비슨은 한국에 대해 좋은 말밖에 안 했다. 특히 사람들이 얼마나 존중해 주는지. 그는 안양 구단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런데 데이비슨 친구 중 안양에서 뛴 선수가 한 명 있다고 하더라(통역 : 안양 임대 경험이 있는 이동경일 것이다). “친구에게 물어보고 다시 말해줄게”라더니 안양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해 줬다. 데이비슨도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줬다.

 

▲ 샘 오취리 씨가 절 안다고요?

이태원에서 머리를 자르는데 이발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럼 당신이 안양에 온 가나 선수야?”라더라. 맞다고 대답했더니, 그 이발사가 “샘이 ‘가나 사람이 한 명 더 왔다’고 말했거든”이라고 해 주더라. 아직 만난 적 없고 아는 사이는 아니다. 그러나 이발사를 통해서 우리 경기에 초대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 난 지금이 전성기

29세다. 한국 나이로는 30살이라며? 이 나이가 최고라고 느낀다. 유럽에서 정말 오래 뛰었다. 아시아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빨리 알아보고 싶다. 신체적으로는 아주 좋다. 아시아에 온 지금, 유럽으로 처음 갔던 16세 소년으로 돌아간 것만 갔다. 그때 나는 입을 다물고 주위에서 돌아가는 것들을 배워야 했다. 말을 알아듣기 힘들어서 동료들과 의사소통하는 것이 조금 어렵다는 것도 비슷하다. 이 친구(통역)에게 라인으로 전화를 걸어서 원하는 걸 이야기해야 한다.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가고 있다.

내가 유럽에서 왔다고 해서 더 나은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2군에서 올라온 유망주의 조언도 들을 것이고, 주장 카를로스(최호정)의 말도 들을 것이다. 들을 준비가 돼 있다. 내 경험으로 동료들을 도와줄 준비도.

 

▲ 한국과 이탈리아의 인종주의 이야기

한국에서는 인종차별을 당한 적이 아직 없다. 이탈리아에서는 한두 번 당했다. 상대팀 팬들이 날 향해 야유를 하니까. 그런데 난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고 내가 해야 하는 일도 아니까. 나는 3남매 중 둘째인데 우리 집을 먹여 살린다. 그런 것에 정신이 팔릴 겨를이 없다.

발로텔리는 작년 베로나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 원래 베로나 사람들이 인종주의가 심하기로 유명하다. 사실 내 첫 인종차별 경험도 베로나에서였다. 17세였는데, 내가 경기장에 몸 풀러 들어가자마자 관중들이 다 “우, 우, 우” 하더라. 그러고도 시간이 지났는데 발로텔리는 작년에 또 당했다. 여전히 그러고 있다니 미친 짓이다.

 

▲ 배틀그라운드가 한국 게임이라고?

그 게임이 한국에서 개발됐는지 전혀 몰랐다. 펍쥐(PUBG) 말이다.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 모두 그 게임에 미쳐있다. 한국에 온 뒤 이 친구(통역)가 폰으로 뭘 보고 있는데 내가 아는 게임인거다. “너도 이 게임 알아?”라고 물어봤더니 “알지 우리나라 건데”라더라. 내가 TV를 많이 안 보는 건 주로 게임을 하기 때문이다. 모바일로 주로 한다. 근데 지금은 많이 못 한다. 아내가 왔거든. 아내가 못 하게 한다.(통역의 전언에 따르면 숨는 걸 싫어하는 ‘여포’ 스타일의 게이머라고 한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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