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우치(폴란드)] 김정용 기자= U20 대표팀 선수들이 정정용 감독에게 받은 ‘전술 노트’ 덕분에 빠르게 조직력을 끌어올렸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고재현, 김세윤이 이 노트의 정체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한국은 16일(한국시간) 폴란드 우치의 스타디온 비드제바에서 우크라이나와 ‘2019 폴란드 U20 월드컵’ 결승전을 갖는다. 남자 축구 역사상 첫 축구 세계대회(FIFA 주관대회에 한정) 결승 진출이다.

전술 노트는 지난해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AFC U19 챔피언십, 한국 준우승) 당시 정 감독이 선수들에게 배포했던 자료다. 꽤 두꺼웠고, 제본을 해서 배포한 진짜 책이었다. 맨 뒤에는 선수들이 메모할 수 있는 빈 종이도 몇 장 포함돼 있었다.

전술노트를 처음 활용한 건 스리백을 시도할 때였다. 정 감독이 쓰는 주요 포메이션과 각 포메이션별 목표, 선수들의 역할이 담겨 있었다. 코너킥과 프리킥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다양한 세트피스 플레이도 포함됐다. 고재현 등 선수들은 공부하는 기분으로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해 가며 노트를 읽었다. 정 감독은 “공부 안 해 오면 죽는다”라고 이야기했고, 선수들은 오히려 자료를 더 달라며 학구열을 보였다. 아시아 예선이 끝날 때 노트가 수거됐다. 김세윤은 “노트에 선수들이 메모해놓으신 것도 감독님이 참고하시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전술 노트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다양한 포메이션을 활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한국은 3-5-1-1, 4-2-3-1, 3-4-3 세 가지 포메이션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각 경기마다 포메이션을 바꾸는 건 물론 경기 중에도 두세 번씩 포메이션 변환을 하며 최대한 이득을 취했다.

예를 들어 김세윤은 원래 윙어를 소화하는 공격적인 미드필더지만 4강 에콰도르전에서 수비에 먼저 신경써야 하는 중앙 미드필더로 나와 흠 없는 플레이를 했다. 김세윤은 자신의 전술적 임무에 대해 “센터백과 풀백 사이에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고, 오세훈이 헤딩할 때 세컨드볼을 최대한 잡아야 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 포메이션마다 선수들이 어떤 위치를 잡아야 하는지, 풀백의 이동에 따라 미드필더가 유기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전술 사항이 적혀 있었다. 선수들은 포메이션이 헷갈릴 때 전술 노트를 보고 공부했다.

선수 교체 없이 포메이션을 자주 바꾸는 건 토트넘홋스퍼, 리버풀 등 세계 최고 수준 구단에서나 보는 모습이다. 고재현은 “경기 중에는 시끄럽다. 감독의 지시사항이 전달되기 어렵다. 선수들이 미리 숙지한 내용대로 전술을 바꾸기 때문에 우리 팀은 변화가 쉽다”며 “거의 마법의 노트”라고 말했다. 뒤늦게 합류한 이강인의 경우에는 “한 번씩 우리 팀에 소속돼 훈련할 때마다 조금씩 전술을 공유했고, 또 강인이는 워낙 머리가 좋아서 금방 익혔다”고 말했다.

전술 노트의 두 번째 의의는 다양한 세트피스 전략이다. 이 노트에 있던 세트피스 전략을 이번 대회에서 거의 다 활용했다. 수많은 옵션을 다 고려하면 너무 헷갈릴 정도였기 때문에 각 경기마다 3개 정도를 뽑아서 활용했다. 고재현은 “3개 정도만”이라고 했지만,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약속된 세트피스가 경기당 3개씩 계속 나온다는 건 아주 많은 편에 속한다. 역대 한국 대표팀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 원동력이 전술 노트였다.

한국만큼 전술이 다양한 팀은 이번 대회에서 찾기 힘들다. 지난 모든 팀들이 예상한 포메이션으로 한국을 상대했고, 결승 상대 우크라이나 역시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의 포메이션은 예상하기 어렵고, 경기 중 어떻게 바뀔지도 알기 어렵다. 노트가 부린 마법이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