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안드레아 피를로는 ‘그라운드 위의 감독’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피를로처럼 미드필드 후방에서 경기를 지휘하는 선수를 이탈리아어로 레지스타(regista, 연출가라는 뜻)라고 부른다. 한국으로 번역하면 영화 감독에 가장 가까운 단어다. 이탈리아어에서 영화 감독과 축구 감독은 다른 단어지만, 한국어로는 같다. 피를로는 두 발로 “큐”와 “컷”을 외치며 승리를 이끌었다.

피를로가 레지스타의 대명사가 된 건 사실 생존을 위해서였다. 어렸을 때 피를로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2000년 유럽 U-21 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차지한 피를로는 마누엘 후이코스타, 후안 베론, 지네딘 지단 등 이탈리아세리에A를 풍미하던 공격형 미드필더들의 뒤를 이을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기술을 제외한 다른 능력이 애매했던 피를로는 프로 초창기에 자리를 잡지 못했다.

고향팀 브레시아로 임대되며 피를로에게 새 가능성이 열렸다. 브레시아는 대선배 로베르토 바조가 공격의 중심으로 뛰고 있었다. 피를로는 바조와 주전 경쟁을 벌이는 게 아니라 후방으로 이동해 공존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미드필드 후방으로 자리가 바뀐 뒤 피를로의 진정한 재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는 지나치게 복잡한 패스를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후방에 배치되자 정교한 롱 패스와 동료들의 동선을 읽는 시야를 활용해 오히려 공격 기여도가 높아졌다.

2002년 AC밀란에서 본격적인 레지스타로 변신한 것도 생존을 위해서였다. 당시 밀란 구단주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는 감독이 원하는 선수보다 자기가 원하는 선수를 사 주는 경향이 강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인 피를로, 클라렌스 시도르프, 후이코스타, 히바우두가 한 팀에 영입됐다. 피를로는 버거운 상대들과 주전 경쟁을 하느니 레지스타로 변신하는 쪽을 택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을 먼저 찾아가 “포백 바로 앞에서 뛸 수 있다”고 말했다.

안첼로티 감독은 체구가 작고 수비력이 부족한 선수도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선수 시절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살이 쪘지만, 선수 시절 안첼로티는 호리호리한 미드필더였다.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안첼로티는 AS로마, 밀란에서 뛰며 중앙 미드필더로 배치된 경험이 있었다. 그럼에도 안첼로티 감독은 피를로가 레지스타를 잘 소화할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2002/2003시즌 초반 피를로의 뛰어난 활약을 본 뒤에야 확신을 갖고 이 전술을 밀어붙였다.

보통 레지스타로 분류되는 선수들은 수비진 앞에서 공수의 균형을 잡는 역할 정도를 한다. 수비할 때는 공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지역을 선점하고 상대 선수가 들어오지 못하게 지킨다. 공격으로 전환할 때는 측면과 중앙 중 공격이 용이해 보이는 쪽으로 공을 보내고, 안전한 볼 키핑을 통해 후방에서 안정감을 부여한다. 여기에 화려한 롱 패스와 중거리슛이 추가될 때도 있다. 사비 알론소, 토니 크로스가 대표적이다.

피를로가 특이한 건 조율이 아니라 아예 어시스트를 노리는 패스를 매 경기 구사했다는 점이다. 피를로의 롱 패스는 알론소, 크로스처럼 오차 없이 정확한 건 아니었다. 대신 더 과감했다. 문전으로 침투하는 동료에게 직접 전달하는 장거리 어시스트만큼은 가장 날카로웠다. 피를로는 공격을 지원하는 게 아니라, 멀리서도 직접 공격에 참여하는 선수였다. 피를로보다 더 앞선 위치에 있는 젠나로 가투소가 비교적 떨어지는 공격력에도 불구하고 주전으로 뛸 수 있었던 건 피를로와 서로 단점을 보완해줬기 때문이었다.

밀란의 주인공은 피를로가 아니었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결승에 세 번 올라 두 번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트라이트는 파올로 말디니, 카카 등 동료 선수들의 차지였다. 피를로가 결승전에서 어시스트를 두 개나 기록했다는 점도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2000년대 밀란 전성기를 상징하는 선수는 피를로다. 피를로가 가장 꾸준히 활약했고, 밀란 축구의 독특함을 가장 잘 드러내는 선수였다.

피를로가 우승팀의 주인공이 된 건 ‘2006 독일월드컵’이 먼저였다. 월드컵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인정받아 발롱도르를 수상한 건 파비오 칸나바로였지만 대회 중에는 피를로가 더 주목 받았다. 피를로는 총 4경기 중 무려 3경기에서 MVP로 선정됐다. 골도 하나 넣었지만, 어시스트의 달인답게 준결승 독일전에서 파비오 그로소에게 내준 절묘한 패스가 더 자주 회자된다.

2011년 피를로의 선수 인생에 전환점이 왔다. 당시 32세로 신체 능력이 감퇴하기 시작하던 피를로는 밀란에서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 유벤투스에 입단했다. 이후 맹활약으로 ‘퇴물’이라는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다. 피를로는 유벤투스에서 네 시즌 뛰며 모두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4/2015시즌에는 UCL 준우승을 이끌었다. 피를로는 36세까지 유럽 정상에서 활약할 수 있는 지능과 기술을 갖고 있었다.

유벤투스 시절은 연이은 결승전 패배로 기억되기도 한다. ‘유로 2012’에 이탈리아 대표로 나선 피를로는 놀라운 선전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서 스페인에 0-4로 패배했다.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을 만났을 때는 차비 에르난데스를 능가하는 경기 지배력으로 무승부를 이끌어 냈지만, 결승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우승에 실패했지만, 유로 2012에서 피를로는 파넨카 킥으로 명장면을 남겼다. 잉글랜드와 가진 8강전 승부차기에서 조 하트 골키퍼를 완전히 속이고 골대 중앙으로 공을 툭 밀어 찼다. 프란체스코 토티, 피를로 등 이탈리아 테크니션들이 선호하는 기술이다. 늘 수 싸움에서 반 수 앞서는 피를로의 특징이 잘 드러난 킥이었다.

피를로는 2015년 바르셀로나를 상대한 UCL 결승전에서 또 패배했다. 이 패배를 끝으로 유럽 축구계를 떠난 피를로는 미국의 뉴욕시티에서 1년 반 동안 활약한 뒤 6일(한국시간) 은퇴를 선언했다. 밀란, 바이에른뮌헨을 비롯한 여러 구단과 칸나바로, 잔루이지 부폰, 개리 리네커, 스테판 요베티치 등 선수들이 피를로의 은퇴에 부쳐 존경을 담은 메시지를 전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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