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제주유나이티드가 안현범에 이어 황일수의 윙백 전환을 실험한다. 고육지책이지만 팀과 선수에게 모두 기회가 될 수 있는 실험이다.

제주는 주전 좌우 윙백 정운, 박진포가 모두 부상으로 이탈했다. 왼쪽은 김상원, 오른쪽은 안현범이 붙박이로 경기를 소화하고 있다. 그러나 시즌 초 출장 기회가 적었던 김상원은 아직 경기 내 기복이 있다. 안현범은 일주일에 두 경기씩 소화해야 하는 일정 속에서 완급 조절을 하지 못하고 체력 문제를 겪었다. 지난 11일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초반부터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가 경기 후 링거를 맞아야 했다. 조성환 감독은 “오버워크(overwork, 과로) 상태가 왔다”고 설명했다.

제주의 스리백에서 윙백은 중요한 포지션이다. 포백 계열 포메이션은 대부분 한쪽 측면에 풀백이 있고, 그 앞에 측면 미드필더나 윙어가 추가로 존재한다. 둘 중 한 명이 컨디션 난조를 보이더라도 나머지 선수가 측면에서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반면 스리백의 윙백은 부담이 크다. 조 감독은 윙백 앞에 윙어가 있는 3-4-3보다 윙백 혼자 측면을 도맡아야 하는 3-5-2, 3-4-2-1 등의 포메이션을 선호한다. 윙백이 상대 측면을 뒤로 밀어내지 못하면 경기 운영이 힘들다. 윙백이 피로하면 공격 속도가 떨어진다. 제주가 16일 강원FC를 상대로 홈에서 패배할 때도 측면 공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조 감독은 부상자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일 김해시청과 갖는 FA컵 원정 경기에서 포지션 변경 카드를 꺼낸다. “황일수의 윙백 기용”이다. 대신 안현범이 제주에 남아 휴식을 취한다. 황일수는 폭발적인 스피드로 K리그 1위를 다투는 윙어다. 지난해 군에서 제대했고, 이번 시즌 제주에서 중앙 공격수나 섀도 스트라이커를 맡았다. 윙백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안현범과 같은 시도다. 안현범도 2015년 프로 1년차 시절까지 측면 공격수였다. 2016년 안현범을 영입한 조 감독이 윙백으로 포지션을 바꿨고, 이 조치가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안현범의 스피드는 K리그에서 가장 공격적인 윙백을 탄생시켰다. 그해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했다.

공격수 자리에서 어려움을 겪던 황일수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다. 황일수의 두 가지 장기는 스피드와 킥이다. 그러나 중앙 공격수 자리에서는 측면만큼 많은 공간을 찾지 못했다. 특유의 공간 침투나 ‘치고 달리는’ 드리블을 하지 못해 경기에서 소외되는 시간이 길었다. 조 감독의 신뢰를 바탕으로 꾸준히 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 중이지만 스트라이커로서 보인 경기력은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이번 실험에 불안 요소는 있다. 학창시절 측면 수비 경험이 있는 안현범과 달리 황일수는 윙어로 굳어진지 더 오래된 선수다. 황일수는 앞서 ‘풋볼리스트’와 인터뷰하던 도중 윙백 가능성을 묻자 “이론적으로 가능한 것 같지만 아직 감독님이 내게 요구하신 적은 없다”고 밝혔다.

황일수의 컨디션이 최상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실험이라는 점도 아쉽다. 황일수는 지난 8일 FC서울 원정 경기를 소화한 뒤 컨디션 난조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훈련량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김해 원정에 합류했다.

조 감독은 K리그,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를 병행하는 와중에 김해시청의 앞선 경기를 직접 찾아 분석할 정도로 꼼꼼하게 경기를 준비했다. 윤성효 전 수원삼성, 부산아이파크 감독이 지휘하고 남승우와 지언학 등 ‘해외파’ 미드필더, 베테랑 공격수 정성훈 등 나름대로 화려한 라인업을 갖춘 팀이다. 이번 시즌 수준이 높아졌다는 평을 듣는 내셔널리그에서 2위를 달리고 있어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조 감독은 “김해시청을 우습게 보는 게 절대 아니라, 세 대회를 병행하는 처지라 1.5군을 꾸렸다”고 말했다. 비주전 선수를 일부 투입해 김해시청을 상대하겠다는 뜻이다. 한편 K리그와 ACL을 통해 2연패 중인 제주는 김해시청까지 잡지 못할 경우 팀 분위기가 저하될 수 있다. 일주일 뒤인 25일 열리는 ACL 장쑤쑤닝 원정 경기까지 사기를 끌어올리려면 김해시청을 잡아야 하는 처지다. 황일수의 포지션 변경은 장쑤전까지 체력을 안배하고, 장쑤전에 쓸 수 있는 카드를 한 장 더 마련한다는 의미도 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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