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2018 러시아월드컵’은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격돌 가능성에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이 모였던 대회다. 그러나 두 선수 모두 16강에서 쉽게 탈락했다. 이들이 월드컵에서 족적을 남길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시대의 지배자로 불린 선수 중 월드컵 시상대에 오르지 못한 선수는 드물다. 월드컵 우승은 곧 지배자의 증표이자, 그가 명성에 걸맞는 실력을 지녔다는 증거였다. 펠레와 디에고 마라도나가 세계 최고인 건 월드컵 우승을 자기 손으로 이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전후 세계 최고 선수로 불린 지네딘 지단과 호나우두는 각각 프랑스,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클럽 경력만 놓고 볼 때 호날두와 메시는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위대한 선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다. 이들은 흔히 1970년대의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이후 축구사 최대의 라이벌로 불린다. 클럽에서 보인 활약상을 보면 두 라이벌이 비슷하다. 크루이프는 아약스를 이끌고 1970/1971시즌부터 3시즌 연속 유로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베켄바워는 뒤를 이어 바이에른뮌헨을 1973/1974시즌부터 3시즌 연속 정상에 올려 놓았다. 이 6년 중 크루이프가 발롱도르 3회, 베켄바워가 발롱도르 2회를 수상했다.

2010년대 최고 라이벌이 된 호날두와 메시는 2008년부터 10년 동안 발롱도르를 양분해 왔다. 두 선수가 각각 발롱도를 5회씩 수상하며 다른 선수의 범접을 허락하지 않았다. 발롱도르 역사상 가장 거대한 라이벌 구도다. UEFA 챔피언스리그(UCL)는 호날두가 5회, 메시가 4회 우승하며 역시 양분에 가까운 구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크루이프와 베켄바워는 세계 최고 대회인 월드컵 결승에서 맞붙었다는 점이 호날두, 메시와 결정적으로 다르다. ‘1974 서독월드컵’에서 세계 축구의 혁명을 일으켰다는 크루이프와 네덜란드가 준우승했다. 결승에서 크루이프를 굴복시킨 건 팔 부상으로 삼각건을 두른 채 수비를 지휘했던 베켄바워와 서독이었다. 두 선수가 축구 역사상 최대 라이벌이었다는 건 결승전 한 경기로 기억되지, 두 선수의 수상 실적이라는 숫자로 기억되지 않는다.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포르투갈과 아르헨티나의 전력이 하락세였기 때문에 두 선수의 결승전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대신 8강전 가능성이 일찌감치 열렸다. 두 팀 모두 16강만 통과하면 8강에서 맞붙을 수 있었다. 포르투갈 대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대 프랑스의 16강전은 연달아 열렸다. 각 나라뿐 아니라 전세계 축구팬들이 결과에 주목했다.

그러나 호날두도 메시도 조국을 8강에 올려놓지 못했다. 포르투갈은 우루과이에 1-2로 패배했고, 호날두는 이 경기에 딱히 기여한 것이 없었다. 아르헨티나가 프랑스에 3-4로 패배할 때 메시는 2도움을 기록했으나 역시 패배를 막지 못했다. 각각 네 경기를 치른 두 선수의 기록은 호날두 4골, 메시 1골 2도움이었다.

두 선수 모두 ‘2006 독일월드컵’부터 네 번 연속 월드컵에 참가했다. 호날두의 성적은 각각 4강, 16강, 조별리그, 16강이다. 메시의 성적은 8강, 8강, 준우승, 16강이다. 통산 득점은 호날두가 7골, 메시가 6골로 비슷하다.

월드컵에서 남긴 족적만 따지자면 메시는 2014년 대회 골든볼(MVP)과 준우승이 있다. 팀 전력과 전술이 그리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결승 진출은 이끈 건 메시의 공이 컸다. 우승은 놓쳤지만 골든볼을 수상하며 오랜 국가대표 경력 가운데 가장 빛나는 한 줄을 남겼다.

대륙컵 성적을 모두 감안한다면 ‘유로 2016’ 우승 경험이 있는 호날두가 더 많은 업적을 남겼다. 메시는 연령별 대회 우승을 맛봤을 뿐 남미 대회인 코파아메리카에 4회 참가해 3회 준우승이라는 기막힌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때 연이은 결승전 패배의 충격으로 대표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하기까지 했다.

호날두는 33세, 메시는 31세다. 호날두의 자기 관리 능력을 감안하더라도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현재와 같은 기량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함은 물론 대회 참가 자체도 불투명하다. 두 선수가 절정의 기량으로 맞붙을 수 있는 마지막 대회였기에 러시아월드컵에 대한 아쉬움은 더 크다.

슈퍼스타가 일찍 퇴장한 뒤, 러시아월드컵은 ‘전세계 스타들의 축제’라는 이미지가 빠르게 희미해졌다. 두 선수에 이어 차기 ‘축구황제’를 노리는 네이마르 역시 브라질과 함께 8강에서 탈락했다. 수많은 스타를 보유한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스페인은 16강에서 각각 좌절을 맛봤다.

우승팀 프랑스, 3위팀 벨기에가 황금세대라 할 만한 여러 스타들을 보유하긴 했지만 러시아월드컵을 대표할 만한 스타 한 명을 꼽긴 힘들다. MVP 1위부터 3위에 오른 루카 모드리치(크로아티아), 에덴 아자르(벨기에), 앙투안 그리즈만(프랑스) 중 환상적인 기량을 보여준 선수는 없었다. 득점왕 해리 케인(잉글랜드)조차 6골중 3골이 페널티킥인데다 토너먼트에서 보여준 필드골이 하나도 없어 ‘역대 가장 인상이 희미한 득점왕’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결국 호날두와 메시는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주인공이 될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인다. 세계 축구계는 두 선수의 전성기 끝자락과 맞물려 등장할 새 스타를 기다리고 있다. 러시아월드컵은 새로운 축구황제의 대관식이 되지 못했다. 그 장은 ‘2022 카타르월드컵’으로 넘어갔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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