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프랑스의 우승으로 끝난 ‘2018 러시아월드컵’은 ‘전술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아도 우승에는 문제가 없다’는 걸 잘 보여준 대회다. 일반적인 상식과 맞지 않는 명제지만, 사실 월드컵이 원래 그랬다. 역대 월드컵을 봐도 대회 전 모든 준비를 마친 팀이 우승한 경우는 드물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월드컵 전 경기 선수들의 실제 위치를 기반으로 실제 포메이션(actual formation) 데이터를 15분 단위로 제공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4강 진출팀 중 세 팀이 대회를 치르며 포메이션과 선수 구성을 모두 바꿨다. 처음부터 완성된 전술을 들고 온 팀은 결승에 가지 못했다.

 

대회 중간에 전술 수정한 팀, 4강 중 3팀

우승팀 프랑스는 대회 첫 경기였던 호주전에서 화려한 공격진을 활용하기 위한 4-3-3 포메이션으로 경기했다. 킬리앙 음밥페, 앙투안 그리즈만과 함께 우스망 뎀벨레가 공격진을 이뤘다. 그러나 세 공격수의 활동 영역이 겹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스트라이커 올리비에 지루와 미드필더 블래즈 마튀디를 각각 최전방과 왼쪽에 배치하는 변형 4-2-3-1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이 선수 구성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준우승팀 크로아티아는 나이지리아를 상대한 첫 경기에서 공격진의 역할 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은 4-2-3-1 포메이션을 썼다. 후반 15분 섀도 스트라이커인 안드레이 크라마리치 대신 미드필더 마르셀로 브로조비치를 투입했고, 이반 페리시치와 안테 레비치의 좌우 위치를 바꿨다. 이 라인업이 크로아티아의 주전으로 굳어졌다. 이때까지는 모드리치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동해 4-2-3-1 포메이션을 유지했으나 추후 미드필더 배치를 역삼각형으로 바꿔 4-3-3으로 전환했다.

3위를 차지한 벨기에는 변화 과정이 프랑스와 닮았다. 벨기에는 화려한 공격진을 많이 활용하기 위해 공격력이 좋은 케빈 더브라위너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후방 배치해 3-4-2-1 포진을 썼다. 비교적 쉬운 조별리그와 16강 일본전까지 수비 불안에 시달렸다. 일본전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때 교체 투입됐던 마루앙 펠라이니, 나세르 샤들리가 벨기에의 변화를 이끌었다. 8강 브라질전에서 샤들리는 야닉 카라스코 대신 왼쪽 윙백을 맡아 더 공수에서 균형 잡힌 모습을 보였다. 펠라이니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투입됐다. 더브라위너가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동하며 드리스 메르텐스를 벤치로 밀어냈다. 벨기에는 이 라인업으로 브라질을 격파했다. 비록 유일한 윙백인 토마 뫼니에가 징계로 결장하면서 4강전에서는 임시방편 전술을 써야 했지만, 3위 결정전에서 다시 ‘플랜 A’를 가동하며 잉글랜드를 꺾었다.

4강팀 중 유일하게 대회 내내 전술을 유지한 팀은 잉글랜드다. 잉글랜드는 대회 첫 경기 튀니지전에서 쓴 포진, 선수 구성을 준결승까지 대부분 유지했다. 조별리그 3차전 벨기에전에서 2진급 멤버가 대거 등장하긴 했지만 오히려 패배해야 유리한 대진운을 잡을 수 있다는 사정 때문에 나온 행위였다. 튀니지전, 16강 콜롬비아전, 8강 스웨덴전, 준결승 크로아티아전의 라인업이 동일했다.

 

2002년 브라질 등 최근 우승팀 대부분이 본선에서 전술 변화

역대 사례를 봐도 우승팀은 대회 시작 당시 구사한 전술을 끝까지 유지한 경우가 없다. 흔히 ‘월드컵을 철저하게 준비한 나라’가 우승할 확률이 높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전술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별리그를 시작하는 나라들이 우승을 차지하곤 한다.

아무리 잘 준비해도 막상 본선이 시작되면 새로운 문제점이 나오기 마련이다. 예선과 평가전의 경험으로는 본선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전 과정에서 나오는 문제점을 빠르게 수정할 수 있는 임기응변, 한두 경기에서 최상의 전력을 발휘하지 못하더라도 탈락하지 않을 수 있는 저력, 다양한 특징을 가진 선수풀을 확보하는 것이 우승의 조건이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열린 월드컵 우승국 중 대회 도중 전술을 변경하지 않은 건 ‘2010 남아공월드컵’의 스페인뿐이다. ‘2002 한일월드컵’ 우승팀 브라질은 3-3-1-3에 가까운 매우 공격적인 전술을 들고 나왔다가, 대회 도중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을 추가하는 3-4-1-2로 전환했다. ‘2006 독일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도 조별리그와 16강을 통해 부분적인 실험을 한 뒤 4-3-2-1 포메이션을 8강부터 가동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우승 당시, 독일은 더 노골적으로 조별리그부터 실험을 계속했다.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포백 네 명을 모두 센터백 성향의 선수로 채우는 변칙 전략과 멀티 플레이어 필립 람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을 고집했다. 16강 알제리전 도중 람을 라이트백으로 이동시켜 효과를 본 독일은 8강전부터 람을 아예 풀백으로 고정시키고 좀 더 평범한 전술을 썼다. 이때 완성된 전술로 그 유명한 브라질전 7-1 대승을 비롯, 막판 세 경기에서 9득점 1실점하며 우승했다.

 

반대의 경우, ‘실험의 함정’에 빠진 독일

그렇다고 해서 대회 초반에 힘을 빼는 건 위험하다.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100% 전력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걸 너무 잘 알았기 때문에 함정에 빠진 팀이다. 요아힘 뢰브 감독은 “대회 전 문제가 많았지만, 일단 본선이 시작되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의 저력을 과신한 나머지 23명 엔트리를 구성할 때 강인한 수비형 미드필더를 빼먹는 등 오판을 저질렀다. 반드시 승리해야 했던 조별리그 3차전 한국전에서 이미 실패로 판명된 자미 케디라의 수비형 미드필더 기용 등 또 패착을 저질렀다. 조별리그에서 한 번도 탈락하지 않았던 독일인이라 지나치게 방심했고, 결국 ‘플랜 A’를 찾아내기도 전에 탈락하고 말았다.

조별리그부터 매 경기 최선을 다하되, 팀에 문제가 보인다면 과감하게 수정하는 것이 우승으로 가는 길이다. 디디에 데샹 프랑스 감독은 기량이 하락세인 지루를 주전으로 승격시켰다. 지루가 무득점으로 일관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중시하며 계속 지루에게 신뢰를 보냈다. 우승을 불러온 한 수였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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