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경기장은 그저 배경이 아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이자 역사다. ‘풋볼리스트’는 전세계 의미 있는 스타디움을 직접 답사한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학부)와 글로벌스포츠산업학과(대학원) 학생과 연구원들의 칼럼을 게재한다. <편집자주>

 

입대하기 1달 전이었던 2014년 1월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유럽 여행의 행선지 중 한 곳이 축구의 성지 런던이었다. 혼자 간 여행이 아니라 사촌들과 간 여행이어서 단 하루 런던에서 자유 일정을 가졌다. 나는 곧장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홈 구장인 에미리츠 스타디움으로 달려갔다. 당일은 경기가 없고, 전날 풀럼과 경기가 있던 에미리츠 스타디움의 이곳 저곳에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지난 밤 승리의 뜨거움이 느껴졌다. 투어를 예약한 시간보다 조금 1시간 넘게 일찍 도착해서 경기장 외곽을 한바퀴 돌아봤는데, 어린 시절 나의 판타지 스타들의 동상들이 서 있었다. 앙리, 베르캄프의 동상을 보면서 아스널 출신의 세계적인 스타들에 대한 동경이 가슴 속에서 타올랐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주변에 있던 영국인 부부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하기도 했다. 머천다이징 스토어가 경기장 외곽에 바로 붙어 있어 한참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스널의 자본만으로 만든 사유 경기장이지만 경기가 없는 날이어서 경기장 안에 들어가지는 못해도 경기장 밖에서 시간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펍은 EPL의 또 다른 경기장

꿈만 같았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투어를 마치고, 나는 토트넘의 홈 구장인 화이트 하트레인(현재 재건축 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토트넘의 경기는 스완지 원정 경기여서 경기장 주변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경기장과 조금 떨어져 있던 머천다이징 스토어에는 사람들이 붐벼 있었다.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경기장 근처에 있던 펍과 식당들이었다. 꽤 많은 펍과 식당이 화이트하트 레인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식당이 경기장 당일에는 ‘토트넘 멤버십 보유자만 입장 가능합니다’, 혹은 ‘시즌티켓 보유자에게 할인 제공’같은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원정 경기를 관람하러 갈 여건이 되지 않는 팬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삼삼오오 펍과 식당으로 모인다고 했다. 그렇게 모인 팬들은 경기 내내 다른 팬들과 함께 어울려서 경기를 함께 관람하고 경기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경기를 관람하면서 경기에 관련된 주제 외에도 평소 대화를 하면서 축구를 관람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이 정말 축구의 나라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토트넘 구단이 만든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경기장 근처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축구를 소비하고 있었다.

 

그 날은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첼시의 경기가 있었다. 즉흥적으로 자유 일정을 가진 것이라 경기 티켓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그저 경기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어서 무작정 스탬퍼드 브리지를 찾아갔다. 주변은 이미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과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티켓은 이미 매진 되어 암표상들이 돌아다녔고, 빅 매치를 맞아 천정부지로 솟은 암표값을 부담할 수는 없는 처지였다. 결국 나는 주변에서 가장 큰 스포츠 펍을 검색해서 찾아갔고,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토트넘 펍에 잠시 들렸을 때는 토트넘 팬들 뿐이어서 좀 위축되었는데, 큰 스포츠 펍이다 보니 여러 팀들의 팬들이 자리하고 있어 위화감은 좀 적었다. 물론 스탬포드 브릿지 근처여서 첼시 팬이 많았다. 표를 구하지 못해서 가까운 펍으로 온 첼시와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팬들, 그저 축구를 좋아해서 전 경기인 토트넘과 스완지 경기부터 계속 보고 있던 사람들, 축구가 아니라 다른 스포츠를 관람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나초 세트 1개와 맥주를 시켜 놓고 외국인들과 어우러져 경기를 보는데 정말 이것이 축구가 줄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에 앉아있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축구 아래서 교감을 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이 날 세 곳의 경기장을 들러 경기장에 앉아서 경기를 보지 않았지만, 축구와 관련한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에 합당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경기장 주변에서 구단과 주변 시설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문화가 그 자체로도 하나의 팬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스타디움 바깥 풍경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K리그

K리그는 아직 경기장에 찾아오는 관중이 많지 않다. 2016년 K리그 경기당 평균 관중이 7,800 여 명이었다. 하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알 듯이 이런 현실에서 누구를 탓할 수가 없다. 각 구단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채택해서 관객을 모으고 있다. 조금의 팬이라도 더 확보하고 한번 찾아온 팬을 다시 찾게끔 하기 위해서 구단들은 ‘팬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마케팅 측면으로 많은 노력한다. FC서울은 프로스포츠 협회에서 2017년 축구 구단 중 마케팅 최고 구단으로 뽑혔다. 팬파크와 팬카페를 개장해서 머천다이징 물품 판매를 300%까지 상승시켰고 스카이펍과 스카이라운지를 만들어 인기 있는 좌석으로 탈바꿈 시켰다. FC서울의 홈 구장인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난 8월 23일 FC서울과 전북 현대의 경기가 FC서울 홈 구장인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다. 오전에 엄청나게 비가 왔음에도 2만 4천 명 정도가 경기장을 찾았다고 한다. FC서울의 서울월드컵 경기장 북문에는 FC서울 푸드파크가 있다. 푸드트럭 운영하고 있는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푸드파크’에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푸드파크를 여러 대의 푸드트럭이 둘러싸고 있고, 그 가운데 앉아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경기장을 찾은 많은 관객들이 푸드파크를 이용한다. 푸드파크는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운영된다. 경기가 끝나면 많은 테이블들이 하나 둘씩 채워진다. 더운 여름 날씨의 열대야를 피해서 많은 사람들이 시원한 생맥주를 찾았다. 푸드파크를 찾은 사람들에게서 영국에서 본 축구 팬들의 모습을 비슷하게나마 볼 수 있었다. 경기 종료 후에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많았고, 경기 외에 근황이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단지 가족들과 모여서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축구 경기장에서 관람을 하고, 함께 온 사람들과 뒷풀이까지 경기장 근처에서 하는 모습은 새로운 팬문화가 형성되는 것 같았다. 2016년부터 운영한 FC서울 푸드파크는 FC서울의 홈경기를 찾는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FC서울 팬파크와 팬카페도 인상 깊었다. FC서울 팬파크는 FC서울의 팬이라면 꼭 한번 들러 보고 싶게끔 잘 디스플레이 되어 있었다. 팬파크의 입구 상단에는 대형 화면을 설치해서 FC서울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계속 방영하고 있다. 팬파크의 내부에는 다양한 머천다이징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고, 한 측면에는 FC서울의 역사를 정리해 놓고 전시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경기 전후로 많은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었다. K리그에서 가장 잘 설비되어 있는 머천다이징 스토어이다보니, 규모나 물질적인 측면보다도 FC서울 팬들이 방문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만족감과 감동은 팬이 아니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FC서울 팬카페는 FC서울 컨셉으로 디자인 되어 있는 카페다. FC서울의 팬은 물론 제한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카페 내부 인테리어는 FC서울의 색깔인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디자인 했다. 카페 안에서 모니터로 FC서울에 관련된 영상을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있었다. 카페 자체가 잘 꾸며져 있어 찾는 사람도 많지만, 경기 전에는 특히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를 않는다.

 

FC서울을 찾는 많은 팬들은 경기장 안에서도 많은 경험을 하지만 경기장 밖에서도 많은 경험을 한다. 비록 이것이 영국이나 유럽에 비견할 만큼 문화로 인식될 만큼 자리잡지는 못했지만, 그간 K리그 구단이 보여줬던 행보에 비하면 비약적이고 긍정적인 발전이다.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만족할 수 있는 컨텐츠가 생겨난 것이다. 구단들이 축구경기를 통해서 팬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축구만은 아니다. 런던에서 하루 동안 경기장을 다니면서 느낀 것은 서비스의 제공 주체가 누구냐를 떠나 팬들이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많아지고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문화가 된다는 점이다. 경기장 안에서도 물론이고 밖에서도 축구를 즐길 수 있다.

 

FC서울도 경기장 안에 ‘스카이펍’을 만들고 많은 이벤트를 진행하지만 많은 공을 들인 부분은 이 경기장 밖에서 팬들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이미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나 마트 등이 입점해 있어서 경기 외에도 즐길 거리가 많았지만, FC서울 구단이 노력한 결과로 팬들이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채널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경기장 밖에서도 구단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한다면 K리그에 새로운 문화가 생길 가능성도 존재할 것 같다. 

 

글= 정재윤(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사진= 정재윤,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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