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이스탄불의 기적’의 주역 블라디미르 슈미체르가 한국을 찾는다. 리버풀이 극적으로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을 차지한 2005년, 추격골을 넣고 승부차기를 성공시켰던 선수의 방한이다.

 

‘풋볼리스트’와 서면 인터뷰를 가진 슈미체르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냈는지 그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슈미체르는 그 경기가 기적이 존재한다는 증거리고 말했다. 아울러 중거리슛 달인으로서 한국의 축구 유망주들에게 보내는 조언, 현재 리버풀에 대한 애정, 20여 년 전 한국을 찾았던 기억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슈미체르는 내달 3일 SC제일은행의 고객 행사에 함께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다. 오후 12시 서울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한 SC제일은행 본점에서 고객들을 상대로 사인회와 기념 촬영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내가 바로 ‘리버풀 레전드’ 슈미체르

- 당신이 은퇴한지도 8년이 지났다. 한국의 어린 축구 팬들에게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슈미체르, 44세다. 어린 시절 축구를 시작해 체코의 슬라비아프라하, 프랑스의 RC랑스 등을 거쳤다. 리버풀에 1999년 입단했다. 6년간 활약한 후 보르도로 옮겨 2년간 뛴 뒤 프라하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체코 국가대표로 81경기를 소화하며 27득점을 했다. 내겐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 은퇴 후 리버풀의 레전드 자격으로 세계 곳곳을 방문하고 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일에 임하고 있나?

리버풀을 대표해 세계를 누비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고 즐겁다. 리버풀 역사의 일원으로서, 구단을 대표해 전세계 팬들을 만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선수 시절 이미 우승을 경험ㅐ 봤지만 은퇴 후에도 구단을 대표할 수 있게 됐다. 누군가가 여전히 나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주인공이 말해주는 ‘이스탄불의 기적’ 뒷이야기

슈미체르는 리버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순간을 담당한 선수다. 2005년 5월 26일(한국시간) 열린 UCL 결승전, 일명 ‘이스탄불의 기적’이다. 리버풀은 AC밀란의 막강한 공격에 얻어맞으며 전반전에만 3골을 실점했다. 그러나 후반 9분부터 단 7분 사이에 3골을 몰아치며 동점을 만들었고,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한때 스타였던 슈미체르는 2005년 당시 리버풀과의 계약 만료를 앞둔 후보 선수였다. 경기가 시작될 때 슈미체르의 위치는 벤치였지만, 교체 투입된 뒤 골을 넣고 리버풀의 마지막 승부차기 킥을 성공시키며 대역전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이스탄불의 기적’은 리버풀의 대역전인 동시에 슈미체르의 대역전이기도 했다.

 

- 당신의 경력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역시 ‘이스탄불의 기적’이다. 그때 당신은 리버풀에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경기에서 해리 큐얼의 부상으로 당신이 일찍 투입됐다. 교체 투입될 때 기분이 어땠나?

교체로 투입될 당시 엄청나게 흥분됐다. UCL 결승전이었기도 하고, 내겐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경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경기에서 투입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물론 투입 당시 0-1로 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결과를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 라파 베니테스 감독은 당신을 투입하며 어떤 주문을 했나?

투입 당시에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이미 경기 전에 모든 계획을 세웠고, 경기 중 바꾸지 않았다. 경기 전 계획한 대로 플레이를 펼치라고 했다. 나는 오른쪽으로 나서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모두 보여줘야 했다. 투입 순간에는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전방으로 공을 가져가라는 말을 들었다.

- 하프타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지금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 베니테스 감독이 감동적인 연설을 했다는 기사도 있고, 스티븐 제라드가 멋진 말을 했다고 짐작하는 사람도 있다. 진실은 뭔가?

전반이 끝나고 선수들 모두 라커룸으로 돌아왔고 0-3의 상황이었다. 5분간 아무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감독님이 들어와 선수들 앞에서 차분하게 “0-3 상황이지만 우리에게 45분이 남아있다.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바꿔야 한다”고 했다. 전술의 변화를 줬고, 최대한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주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선수들에게 뭔가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라운드로 올라서기 직전 “다시 한 번 도전하자, 4,5000명 팬들이 경기장에서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 한 골씩 넣자. 그렇다면 우리는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며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이게 당시 상황이다.

 

- 당신이 넣은 멋진 골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두 골 뒤쳐져 있는 상태였다. 왼쪽에서 공이 올라와 디디 하만에게 연결됐다. 나는 오른쪽에서 상대의 압박을 받지 않고 홀로 있었다. 디디가 나를 보고 공을 넘겨줬다. 당시 머릿속에는 득점으로 연결될 수 있는 슈팅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모든 수비들이 나를 막기 위해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름대로 좋은 슛을 했다. 공이 골망을 흔드는 순간 정말 믿지 못했다. 정말이지 믿지 못했다(웃음). 이제 승리할 수 있을 거라고 느꼈다. 정말 대단한 순간이었다. 나에게는 리버풀에서의 마지막 경기였고, 그 무대가 UCL 결승전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

 

- 승부차기에서 당신은 리버풀의 마지막 키커로서 침착하게 킥을 성공시켰다. 바로 앞의 욘아르네 리세가 놓쳤기 때문에 부담이 될 만한 상황이었다. 그때 심정은 어땠고, 어떤 생각을 하며 킥을 했나?

뭘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서 정리를 하고 나섰다. 내가 해야 하는 건 슛이었다. 물론 압박감은 있었다. 축구를 하면 페널티킥을 찰 상황이 있고, 부담을 가지게 된다. 그 순간은 특히 그랬다. UCL 결승전 순간이라면 그 부담은 더욱 크다. 내가 페널티킥을 넣으면 UCL 우승이 현실로 이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부담이었고, 최대한 잘 차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 ‘이스탄불의 기적’은 축구 선수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영감을 주는 사건이었다. 이 경기의 교훈이 뭐라고 생각하나?

진정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교훈이다. 기적이 현실로 이뤄졌다. 당시 언론은 밀란이 리버풀보다 더 강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전반 45분간 3-0으로 밀란이 앞섰다. 하지만 리버풀은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끝까지 뛰었고,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게 바로 교훈이다.

#강해지고 있는 리버풀, 우승에 도전하라

- 2001년 ‘미니 트레블’(2000/2001시즌 리그컵, FA컵, UEFA컵 3관왕)의 일원이었다. 특히 리그컵에서 많은 골을 넣으며 우승에 기여했는데. 세 대회에서 우승한 비결은 뭐였나?

당시 리버풀은 아주 훌륭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선수들의 호흡이 상당히 좋았다. 서로를 믿었고, 항상 믿음을 바탕으로 그라운드에 나섰다. 각국 대표 선수도 상당히 많았다. 모두가 매 경기 100%를 쏟았고, 다음 경기에 대한 준비도 철저했다. 첫 번째 우승 도전은 버밍엄과의 리그컵 결승이었는데, 이 승리가 팀 전체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상승시켜줬다. 선수들은 또 다른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됐다. 당시 일정은 일주일마다 새로운 우승컵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였고, 그렇게 됐다. 경기를 거듭하며 더욱 강하게 거듭났다. 환상적인 시즌이었다.

 

- 리버풀에서 뛴 6시즌 내내 부상을 당하면서도 매번 회복해 골을 넣고 기량을 유지했다. 늘 부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

리버풀에서 활약하며 부상도 있었다. 특히 막판 세 시즌 동안에는 부상이 더욱 많았다. 선수의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부상이었다. 2~3주 짜리 부상도 있지만, 가끔은 더욱 긴 시간을 보내야 할 때도 있었다. 매번 더욱 강하게 돌아올 수 있다고 믿었고, 복귀가 가능하다는 믿음도 가졌다. 어려운 시기에 스스로 가졌던 동기는 간단하다. 축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부상으로 물러나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상황이 슬펐고, 빨리 나가서 뛰고 싶었다. 그라운드가 그리웠다. 다시 뛰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 리버풀에서 넣은 19골 대부분이 중거리 슛이었다. 어린 선수들에게 중거리 슛에 대한 팁을 준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일단 시도를 하는 것이다. 슈팅이 벗어날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어린 시절에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훈련을 통해 도전을 해야 한다. 경기에서는 패스만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상황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가끔 좋은 해법은 가능한 슈팅을 할 수 있는 위치를 잘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다. 내가 리버풀에서 뛸 당시에는 중거리 슛이 정말 뛰어난 파트리크 베르게르도 있었다. 슈팅 능력이 팀 전체에게 좋은 영향을 줬다. 걱정하지 말고 도전해보라.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 당신이 뛰던 시절 이후 지금까지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도전하고 있다. 우승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나?

지난 2~3년 동안 매 시즌 리버풀이 어쩌면 우승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경기를 보기도 했고, 뮌헨에서 열린 프리시즌 대회 아우디컵을 현장에서 봤다. 직접 지켜본 바, 리버풀은 더욱 강하게 변하고 있다. 올시즌은 조금 슬로우 스타트이긴 하지만 시즌은 길다. 공격적으로 상당히 강해졌다. 수비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기회는 있을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 맨체스터시티가 상당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시즌은 길다. 여전히 최선을 다 해야 한다.

 

#20년 만의 한국 방문이 기대된다

슈미체르는 체코 대표팀에서도 전설이다. 슈미체르가 뛰던 시절 한국과 체코가 두 차례 평가전을 가졌지만 두 경기 모두 슈미체르의 이름은 명단에 없었다. 슈미체르는 부상 때문에 명단에 들지 못했을 뿐, 한국에 온 적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줬다. 한국이 2골을 내줬다가 황선홍과 최용수의 연속골로 2-2 무승부를 만들었던 경기다.

 

- 당신과 비슷한 시기에 박지성과 이영표, 최근 기성용과 손흥민 등 한국 선수들이 잉글랜드에서 꾸준히 활약하고 있지만 리버풀과는 아직 인연이 없다. 눈여겨보는 한국 선수가 있는지?

2005년 리버풀을 떠났기 때문에 박지성, 이영표 등과 맞붙을 기회가 없었다. 아쉬운 점이다. 손흥민은 지난 시즌 토트넘에서 21골을 넣었는데, 정말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성과를 낸 선수다.

 

- 곧 한국을 방문하는데 전에도 와 본 적이 있는가? 한국에서 가장 기대되는 게 있다면?

한국에 방문한 경험이 있다. 1998년인가 체코 대표팀 멤버로 서울을 방문해 2-2 무승부를 냈다. 그런데 난 서울까지는 갔는데 애석하게도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다. 직전에 일본에서 기린컵 2경기를 했는데 거기서 부상을 당했다. (웃음) 이번에 방문하게 되면 20년 만인데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어떻게 서울이 변해있을지도 기대된다. 리버풀과 함께 다양한 도시를 방문하는데, 서울에서 팬들과 가질 시간을 가장 고대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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