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홍명보(48) 감독이 항저우뤼청(그린타운)과 결별한다. 장기 목표를 갖고 홍 감독을 택했다던 항저우는 중국갑급리그(2부)로 강등된 2017시즌 경영진 교체 이후 자세가 달라졌다. 홍 감독은 신임 경영진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현지 소식통에 따르면 홍 감독은 이달 공식 경기 3연승을 거둔 이후 2연패를 당하자 선수단 운영과 관련해 누적되어온 경영진과 횡포에 항의했다. 20세 이하 선수를 의무적으로 기용해야하는 내부 규정에 대한 담판을 짓고자 했다. 끝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양측은 계약 해지 협상에 돌입했다.  

중국 언론은 앞서 항저우 측이 홍 감독의 계약 해지를 진행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논조의 기사를 보도했다. 항저우는 최근 2연패로 리그 10위로 떨어졌으나, 4승 2무 4패로 승점 14점을 획득한 상황이다. 아직 전반기 일정을 다 치르지 않은 가운데 3위 선전FC와 승점 차이도 3점에 불과하다. 반등의 여지가 있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최근 2연패는 모두 원정 경기였다. 원정 당시 비행기 연착 등으로 선수단의 피로가 가중된 상황이었다. 항저우는 지난해 9월 25일 장쑤쑤닝에 3-0 완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항저우는 홈경기에서 8개월째 9연속 무패(5승 4무)를 이어가고 있다. 올 시즌 공식전 홈경기 성적은 4승 2무로 호조다.

사진 우측이 올시즌 부임한 쉬레이 부사장 (사진=항저우일보)

#20세 이하 선수 4명 선발로 써라...항저우 내부 규정

중국 언론과 팬들이 의아해 하고 있는 부분은 최근 2연패 과정의 선발 명단이다. 주전 선수들이 벤치에 있고, 어린 선수들이 출전했다. 항저우는 올 시즌 1군 선수단에 20세 이하 선수를 10명 포함시켰고, 선발 명단에도 꾸준히 4명의 20세 이하 선수를 포함시켜왔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20세 이하 선수가 뛰는 포지션에 지난시즌 주전으로 활약했던 천보량, 천종류, 장이펑 등 주력 선수들이 있다는 점이다. 천종류는 지난 1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차이나컵을 위해 대표팀에 선발한 선수다. 천보량은 대만 대표 선수로 지난 시즌 슈퍼리그에서도 맹활약한 윙어다. 

특히 장이펑은 올시즌 FA컵을 포함한 3연승 행진 과정에 4골을 몰아쳤다. 이 세 선수가 모두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최근 2연패 경기에서 벤치를 지켰다. 이 선수들보다 경험과 기량이 부족한 20세 이하 선수들이 경기에 나섰다.

안젤무 하몽과 데니우손 가비오네타, 매튜 스피라노비치 등 세 명의 외국인 선수가 모두 부상자 명단에 오른 가운데 자국 핵심 선수들까지 기용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항저우일보'의 칭다오전 이후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팬들이 경기가 끝나고 왜 천보량이나 천종류, 장이펑 등의 선수들이 선발로 뛰지 못하는지 따졌다. 그 이유는 항저우 구단 정책 때문이다. 구단 회장은 U-20 선수 일부를 경기마다 반드시 선발 출전시키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항저우일보 5월 21일자)

중국 축구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항저우는 매 경기 최소 4명의 20세 이하 선수를 반드시 선발 출전시켜야 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다. 홍명보 감독의 판단과 의사에 관계없이 지켜야 한다. 홍 감독은 선발 명단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프로 1군팀 성적 보다 전국체육대회 준비...주전 선수들 불만

중국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항저우의 전력이 저장이텅과 더비전에서 지거나, 칭다오황하이에 완패할 정도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중국 관계자들은 항저우가 오는 8월 열릴 전국체육대회 참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서 1군 팀이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국의 전국체육대회는 각 성이 자존심을 걸고 치르는 중국 안의 올림픽이다. 4년에 한번 열리며, 20세 이하 선수들이 대상이다. 저장성에서는 항저우 20세 이하 팀이 지난 3월 지역 예선을 돌파해 본선에 올랐다.

항저우는 이 대회에 참가할 20세 이하 선수들을 중심으로 1군 선수단을 꾸렸다. 이 선수들을 발전시켜달라는 미션을 홍 감독에게 부여했다. 하지만 이 방침은 팀에 남은 기존 주력 선수들의 불만을 야기했다. 더욱이 경기 성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성적을 내기 어려운 여건 속에 홍 감독은 젊은 선수들과 난관을 극복하고, 선수들을 성장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훈련과 경기 준비에 매진해왔다. 경기를 치르면서 희망도 봤다. 결국 한계도 드러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20세 이하 선수 중에서도 출전 선수에 대한 간섭까지 발생했다. 결국 2연패라는 결과가 나왔다. 홍 감독의 인내심도 한계치에 이르렀다. 경영진과 담판을 짓고자 했으나 방침은 달라지지 않았다.

#2부 강등 이후 경영진 교체, 지원 받지 못한 홍명보

중국 축구 관계자에 따르면 홍 감독의 입지가 흔들린 결정적 계기는 구단 경영진의 교체다. 2016시즌 홍 감독 영입을 주도했던 퉁후이민 사장과 우샤오쿤 부사장(단장)이 강등이라는 결과에 책임을 지고 다른 보직으로 이동했다. 20세 이하 팀의 운영을 맡던 황중과 쉬레이가 각각 신임 사장과 부사장으로 부임했다. 

중국프로축구에서 부사장은 한국의 단장과 같은 역할이다. 단장은 경기 중 벤치에도 앉는다. 쉬레이 부사장은 30대의 젊은 나이로 항저우 선수 출신이다. 홍 감독이 떠난 이후 선수단 운영 전권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홍 감독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던 퉁후이민 전임 사장과 우샤오쿤 전임 부사장과 달리 황중 사장과 쉬레이 부사장은 선수 기용에 간섭했다. 20세 이하 선수 의무 출전 규정을 만든 것 뿐 아니라, 계약 문제로 난항을 겪는 선수들의 기용 여부 등 선발 명단 구성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항저우는 자오위하오, 펑강 등 지난 시즌 중국 대표급 활약을 펼친 선수들을 이적시키며 300억여 원의 이적료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이 자금이 승격 및 구단 발전을 위한 운영비로 재투자되지 않았다. 핵심 선수가 떠난 공백을 20세 이하 선수로 대체해 지난시즌보다 전력이 크게 떨어졌다. 

#홍명보 내친 항저우, 구단 내 세력 다툼

잔류한 기존 주력 자원도 20세 이하 선수를 위한 자체 규정 때문에 100% 활용할 수 없는 와중에 초반 성적은 오히려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다. 좋은 성적을 냈다. 중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지난시즌 항저우 23세 이하 선수들의 가치를 높인 것에 이어 홍 감독이 선수 육성 측면에서 또 한 번 성과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경기력이 모두 승리로 이어지기는 어려웠다.

관계자는 항저우가 성적을 내기 어려운 규정을 적용하고도 홍 감독에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은 것은 구단 내 세력 다툼이 야기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황중 사장과 쉬레이 부사장이 팀 운영 주도권을 갖고 감독의 권한까지 차지하고자 한 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선택이다.

항저우는 2016시즌 강등이 결정된 이후 중국 언론과 팬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항저우가 유스 중심 정책을 시도하지만 선수단에 대한 투자가 미흡하고, 운영 방향에서 비전을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송웨이핑 항저우 회장에 대한 비판도 컸는데, 특히 최근 정치적 치적이 될 수 있는 전국체육대회를 위해 1군 팀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여론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홍 감독은 표류하는 항저우에서 씁쓸하게 물러나게 됐다.

사진=풋볼리스트, 항저우일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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