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축잘알이 되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월드컵은 물론 유럽 주요 리그와 K리그, 나아가 AFC챔피언스리그를 누비는 선수와 감독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불시에 관중석에 자리한 인물에 포커스가 맞춰질 때가 있다. 이럴 땐 ‘아재력’이 힘을 발휘한다. 2002 한일월드컵을 라이브로 보지 못한 밀레니엄 세대에겐 더더욱 어려운 미션이다. 축잘알이 되기 위해선 아재력까지 극복해야 한다. ‘풋볼리스트’가 주요 경기에 출몰하는 관중석 유명인사를 파악하기 위한 ‘축잘알 설명서’를 준비했다. 

해외 중계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현지 카메라맨이 갑자기 관중석의 누군가를 주목할 때가 있다. 누구나 아는 유명인들, 최근 해당 팀에서 활약한 이들이라면 해설진이 즉각 누구인지를 이야기 해 주지만,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향해 카메라 앵글이 돌아가면 적막이 흐른다. 관중석의 위치상 VIP석에 앉은 것을 고려하면 중요한 인물임은 짐작이 가능하다. 

각 팀들은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유럽의 팀들은 대부분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한때는 시대를 풍미한 스타들이지만, 팀에 대한 강한 애정과 관심을 가진 이들이 아니라면 누구인지 알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인터넷 혹은 TV중계가 사실상 유일한 접점인, 지리적으로 먼 곳에 거주하는 팬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한국의 축구팬들이 가장 즐겨보는 유럽 명문 구단들의 ‘유명한 어르신들’을 소개한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 보비 찰턴,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그야말로 국민 구단이다. 박지성이 보낸 일곱 시즌 덕분에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이 아니더라도 맨유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이름을 누구나 줄줄 꿰던 시절이 있었다. 현재 활약하는 한국 선수는 없지만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올드트라포드에서 경기가 펼쳐질 때면 거의 매번 관중석에 나타나고, 중계 카메라가 놓치지 않는 2인방이 바로 보비 찰턴과 알렉스 퍼거슨이다. 찰턴은 1956년부터 1973년까지 맨유에서 공격수로 활약했다. 무려 758경기를 소화하며 249득점을 기록했다. 1968년 맨유의 첫 유럽 타이틀을 이끈 주인공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국가적 영웅’이다. 발롱도르도 수상한 경험이 있다. 맨유를 떠나 몇몇 팀에서 활약했지만 가장 굵은 족적을 남긴 맨유는 그를 이사 명단에 등재했고, 굵직한 원정 경기가 있을 때 마다 단장직을 위촉해 수행토록 하고 있다. 현재까지 79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경기장을 찾을 때 마다 아내와 동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찰턴의 곁에는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 대부분 함께한다.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국내 팬들이 잘 알고 있는 존재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맨유에서 1986년부터 2013년까지 지휘봉을 잡았다. 역시 맨유의 이사진에 등재되어 있다. 찰턴과 퍼거슨의 공통점은 올드트라포드에 그들의 이름을 딴 스탠드와 동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리버풀 – 케니 달글리시, 이안 러시

맨유 만큼이나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팀이 바로 리버풀이다. 유구한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안필드에 경기가 펼쳐질 때 마다 현지 중계 카메라가 단골로 잡는 얼굴은 케니 달글리시와 이안 러시다. 수 많은 레전드를 배출한 팀이지만, 이들 만큼 자주 경기장을 찾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달글리시는 1977년부터 1990년까지 리버풀에서 활약하며 502경기에 출전해 169득점을 기록했다. 지휘봉도 리버풀에서 잡았다. 고향은 스코틀랜드이지만, 리버풀 인근에서 삶을 산 달글리시는 라파 베니테스 감독이 지휘봉을 잡던 시절 유소년 팀을 총괄하고 앰버서더로 활약했다. 베네티스 감독이 사임한 후 후임 인선에도 관여했다. 2011년 1월에는 다시 리버풀의 지휘봉을 잡았고, 2012년 5월까지 팀을 이끌었다. 해임 사유는 성적 부진이었지만, 2012년 리그컵 우승이라는 역사를 썼다. 당시로서는 6년간 이어진 무관의 늪에서 리버풀을 구한 것이다. 이후 리버풀의 앰버서더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달글리시와 함께 안필드의 단골 손님으로 자주 나타나는 인물은 이안 러시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 활약한 후 유벤투스로 이적했지만 두 시즌 만에 임대로 돌아왔다. 이후 완전이적했다. 1986년부터 1996년까지 리버풀에서 다시 활약했다. 660경기에 출전해 346득점을 기록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로 잠시 일했다. 울리에 감독이 팀을 이끌 시절 공격 코치로 함께했다. 2003년의 일이다. 리버풀로 돌아온 것은 2010년이다. 당시 리버풀의 유소년 홍보대사직을 맡았고, 이후 글로벌 홍보대사를 하고 있다. 리버풀의 다양한 상업행사에 등장하고 있다. 한국도 수 차례 방문했다. 달글리시와 안필드의 공통점은 안필드 외에도 멜우드 훈련장, 유소년 훈련장에 자주 나타난다는 점이다. 

레알 마드리드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라리가 중계를 관심있게 지켜본 이들이라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관중석을 차지한 부트라게뇨의 얼굴을 한 번쯤을 봤을 것이다. 마드리드가 자랑하는 레전드 중 한 명이다.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레알의 유소년팀을 거쳤다. 1982년 B팀에서 활약했고, 1984년부터 1995년까지는 1군에서 활약했다. 레알에서 454경기에 출전해 165득점을 기록했다. 무려 17개의 트로피를 모았다. 1986년과 1987년에는 2년 연속 발롱도르 3위에 해당하는 브론즈 볼을 수상했다. 레알을 떠난 후에는 잠시 멕시코에서 활약했다. 한창 현역으로 활약할 당시 인기는 대단했다. 그의 이름을 딴 컴퓨터 게임이 출시될 정도였다. 2004년부터는 레알의 단장 겸 부회장을 맡았다. 현재는 홍보 단장을 맡고 있다. 본인이 직접 나서기도 하지만, 레알이 유구한 역사 속에서 배출한 수 많은 레전드들을 관리하고, 이들을 활용해 팬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힘을 쓰고 있다. 중계 화면에 얼굴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오래된 팬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최고의 홍보다. 레알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르셀로나 – 카를레스 렉사흐

카탈루냐에서 태어난 렉사흐는 다른 레전드들과 달리 중계 화면에 잡힐 때 마다 환한 웃음보다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선수를 분석하는데 집중하는 모습이다. 1959년부터 1965년까지 바르셀로나의 유소년시스템을 거쳤다. 1967년부터 1981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449경기에 나서서 122득점을 기록했다. 현역 시절 요한 크루이프와의 콤비 플레이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현역 은퇴 후의 삶도 바르셀로나와 함께했다. 카탈루냐 유소년 대표팀을 잠시 맡은 후 1984년부터 바르셀로나B팀의 코칭스태프로 합류했다. 이후 유소년팀 감독, 성인팀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선수 시절 콤비였던 크루이프가 감독이었고, 렉사흐가 오른팔이었다. 1992년 크루이프의 경질 후 잠시 대행을 맡기도 했다. 1998년에는 아시아 무대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 일본 J리그의 요코하마 마리노스를 이끌었다. 이후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다시 한 번 바르셀로나를 이끌었다. 렉사흐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팀을 이끌던 보비 롭슨 감독 아래에서 스카우트로 일을 했는데, 당시 리오넬 메시를 발굴해냈다. 현재 기술고문 역할을 하고 있다. 캄노우에서 항상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다. 

사진=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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