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제주유나이티드는 열심히 공격을 퍼부었지만, 전광판에서 숫자가 올라가는 쪽은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였다.

11일 제주 월드컵경기장에서 ‘2017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H조 4차전을 가진 제주가 애들레이드에 1-3으로 패배했다. 경기 전 조 2위였던 제주는 애들레이드와 1승 1무 2패로 승점 동률이 됐고, 상대전적에서 밀려 3위로 내려갔다.

두 팀 모두 최상의 전력을 가동할 이유가 충분한 경기였다. 제주는 K리그 클래식과 ACL을 병행하고 있지만 다음 경기가 16일 홈에서 열리기 때문에 회복할 시간이 충분했다. 조성환 감독은 애들레이드전에 주전을 모두 가동하기로 했다. 센터백 조용형 대신 알렉스가 들어오고, 멘디의 공격 파트너로 마그노가 들어오는 등 주전급 선수 사이에서 로에티션 시스템이 가동됐다. 미드필더 권순형의 부상 공백을 문상윤이 메우고 골키퍼 김호준 대신 로테이션 멤버 이창근이 투입된 점 정도가 변화였다.

호주A리그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애들레이드도 무관으로 끝나는 자국리그보다 ACL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예르모 아모르 감독은 장거리 원정에도 불구하고 컨디션이 괜찮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때 세비야에서 뛴 주전 공격수 바바 디아와라, 제주 출신 김재성 등 주전급 멤버가 모두 나섰다. 그러나 객관적 전력에서 제주가 앞서는 건 사실인 것처럼 보였다.

 

빠른 동점골로 따라간 뒤 맹공 퍼부은 제주

선제골을 애들레이드가 넣을 때만 해도 우발적인 사건으로 보였다. 전반 7분 제주의 수비 실수를 틈타 세르히오 치리오가 중거리슛을 날렸고, 이 공이 골대에 맞고 튕겨나온 걸 김재성이 중거리슛으로 연결해 득점했다. 이창근이 두 번째 슛에 반응할 약간의 여유가 있었지만 하필 시야가 가려 공의 궤적을 보지 못했고, 공이 골라인을 통과할 때야 시야를 회복했지만 이미 방어하긴 늦은 상태였다.

제주는 단 1분 만에 반격했다. 이번엔 제주의 속공이 애들레이드 수비를 흔들었다. 이창민이 수비를 앞에 놓고 올린 크로스를 마그노가 헤딩골로 마무리했다. 두 팀 득점 모두 경기가 안정되기 전 들뜬 상황에서 나왔고, 점수가 원점으로 돌아간 뒤 다시 공방전이 시작됐다.

이때부터 경기를 주도한 팀은 제주였다. 제주 특유의 빠른 공격이 몰아쳤다. 특히 미드필더 이창민이 오른쪽으로 빠지며 오른쪽 측면에 배치된 안현범과 현란한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전개했다. 안현범은 애들레이드 수비와 일대일 상황을 맞을 때마다 과감한 돌파로 관중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가장 좋은 기회는 전반 39분 코너킥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센터백 알렉스에게 찾아왔다. 알렉스가 문전 노마크 상태에서 흘러온 공으로 힐킥을 시도했으나 골문을 빗나갔다. 열심히 공격하던 제주는 전반 막판 애들레이드의 위협적인 공격을 이창근의 선방으로 간신히 막아냈다. 이 장면이 후반전의 예고편이었다.

 

행운과 침착함이 섞인 애들레이드 득점, 점점 급해진 제주

후반전이 시작되고 단 4분만에 애들레이드가 또 앞서가기 시작하며 경기는 또 기울었다. 벤 가루초가 올린 세트피스를 딜런 맥고완이 헤딩골로 마무리했다. 골키퍼가 책임져야 하는 골대 바로 앞 상황이었지만 이창근이 동료 선수와 뒤엉키며 제대로 점프하지 못한 것이 제주의 화근이었다. 이때부터 이창근이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제주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마그노를 진성욱으로 바꾸며 공격력 강화를 기대해봤지만 후반 9분만에 진성욱이 빈 골문에 날린 슛이 빗나갔다. 제주는 잠시 후 문상윤을 공격수 마르셀로로 바꾸며 공격을 더 강화하려 했지만, 오히려 전반전에 잘 돌아가던 패스 플레이보다 나은 공격 루트를 찾지 못했다.

후반 20분 애들레이드가 빠르고 조직적인 공격으로 제주를 또 좌절시켰다. 제주가 흔들렸고, 마지막 순간 오른쪽에서 한 템포 늦게 가담한 김재성이 전진패스를 받아 문전으로 낮은 크로스를 날렸다. 라일리 맥그리의 마무리 슛을 이창근이 한 번 선방했지만 멀리 쳐내진 못했고, 맥그리가 다시 밀어 넣어 점수 차를 벌렸다. 득점 직전 맥그리의 손에 공이 맞았지만 주심은 이창근의 항의에 반응하지 않았다. 제주로선 불운이었다.

이후 제주가 열심히 몰아쳤지만 애들레이드 수비는 열리지 않았다. 멘디를 향한 롱 패스는 애들레이드 수비수들의 지능적인 반칙성 플레이에 밀리거나 킥 자체가 부정확해 전혀 효과가 없었다. 전반전부터 약간 흥분 상태에서 뛴 안현범은 후반에 더 맹목적인 돌파를 시도하며 유효슛까지 연결했지만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을 뿐이었다.

후반 추가시간, 이창민의 멋진 프리킥을 유진 갈레코비치 골키퍼가 선방했다. 이어진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끈질기게 공을 끊었고, 마침내 혼전 상황에 이어 이찬동이 노마크 기회를 잡았지만 슛은 크로스바 위로 날아가 버렸다. 경기 내내 더 많은 득점 기회를 잡고도 한 번밖에 살리지 못한 제주는 마지막 기회까지 놓쳤다.

 

승자는 고개를 숙이고, 패자는 이를 악물었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선 승자와 패자 모두 착잡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승자는 김재성이었다. 김재성은 2005년 제주의 전신인 부천SK에서 데뷔해 이듬해 연고이전 원년부터 뛴 멤버다. 작년 하반기에도 제주에서 뛰었다. 올해 2월 애들레이드로 이적한 김재성은 ACL에서 친정 제주를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유독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재성은 선제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뒤 “조성환 감독에게 인사드리려 했는데 죄송해서 얼굴을 못 보겠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머리를 벅벅 긁은 김재성은 “애들레이드 선수로서 최선을 다 하는 건 당연한거지만 그래도 착잡한 건 있다. 제주는 내 첫 프로팀이자 가장 최근 뛴 프로팀이다. 동료들도 다 안다. 아까 용형이와 잠깐 인사했다. 그래도 홈팬들에게 내가 아직 잘 하고 있다는 걸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만큼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료들이 “킴”이라고 경쾌하게 부르며 박력 있게 안아줄 때도 김재성은 계속 복잡한 표정이었다.

이창근도 착잡한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두 번째 골때 제가 실수해서 어려운 경기 한 것 같아 선수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한 이창근은 “준비 잘 해서 오늘같은 경기는 안 하도록, 공격축구에 보탬 되는 선수가 되겠다. 오늘 많이 배웠다. 절대 이런 실수 없도록 하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ACL 위주로 출장하고 있는 이창근에겐 남은 조별리그 두 경기가 실수를 만회할 기회다.

쉽게 갈 수 있는 경기를 어렵게 간 제주는 조별리그 순위표에서도 쉽게 갈 수 있는 걸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 남은 장쑤쑤닝 원정과 감바오사카전 홈경기에서 최대한 승점을 따 조 2위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조성환 제주 감독은 “의욕이 지나친 선수, 자신감이 결여된 선수 등이 있었다. 긍정적인 건 이기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며 “오늘 경기가 많이 아쉽다. 실망하지 말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제주는 현재까지 ACL 원정에서 1승 1무, 홈에서 2패를 거뒀다. 쉽게 갈 수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어렵게 간다. 남은 두 경기에서는 경기력에 걸맞는 결과가 필요해졌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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