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역사는 결과를 기억하지만, 결과가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이란 원정 패배 이후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과 홈경기에서 경질 위기에 놓였으나 2-1 역전승으로 자리를 지켰다. 올해 첫 A매치 일정에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중국 원정 패배로 불거진 ‘경질여론’에 시리아전 1-0 승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홈에서 거둔 네 번의 승리가, 러시아로 가는 길, 혹은 러시아에서 치를 월드컵 본선의 청신호가 되기는 부족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시리아전 후 회견에서 “행운이 따른 승리”였다고 인정했고, “훈련을 통해 개선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겠다. 대표팀의 문은 항상 열려있다”는 말로 변화를 약속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슈틸리케호의 6월 반등을 위해 5월 말 대표팀 조기 소집과, 6월 13일 카타르 원정 경기에 앞선 중동 원정 평가전 계획을 밝혔다. 

팬심은 이미 슈틸리케 감독에게 등을 돌린 모습이다. 시리아전에 승리를 이끈 선수들을 향한 박수는 여전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에 대한 신뢰는 회복되지 않았다. 댓글 여론은 경질을 말하고 있다. 

경기 후 기자회견은 마치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청문회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패배한 팀 시리아의 아이만 하킴 감독의 기자회견에도 적지 않은 질문이 이어졌다. 홈팀 한국을 괴롭힐 수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슈틸리케 감독의 기자회견 역시 평소보다 길게 진행됐다. 이겼지만 내용이 미비하지 않았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패한 시리아는 표정이 밝았고, 이긴 슈틸리케의 얼굴은 붉었다. 

#플랜A는 간파당했고, 승부수도 실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계속 감독이 전술을 바꾸지 않는다고 뭐라 하더니, 이제는 감독이 전술을 자주 바꾼다고 뭐라고 한다”고 항변했다. 경기 초반 4-1-4-1 포메이션과 4-2-3-1 포메이션을 수시로 바꾸는 과정에서의 혼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답한 뒤 첨언한 것이다. 

경직된 전술, 뻔한 교체 카드가 최종예선 기간 슈틸리케 감독의 문제로 거론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시리아와 경기에는 본래 중앙 미드필더 자원인, 왼발잡이 고명진을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깜짝 전술을 준비했다. 전술 변화는 그 자체가 평가의 대상이 아니다. 해당 전술 변화가 실제적으로 경기 대응 전략으로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가 중요하다. 슈틸리케 감독의 작전은 전반 30여분 만에 폐기처분됐다. 고명진은 후반 10분 만에 교체됐다. 

중앙 지역의 볼 점유율을 높여 상대 수비의 빈틈을 찾는 슈틸리케 감독의 축구 철학은 명백히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한 2차예선에서는 무실점 전승이라는 결과를 내며 잘 통했다. 비등한 전력, 혹은 전술적 짜임새가 좋은 팀을 만난 최종예선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활용한 후반전 플랜B, 월드클래스 선수로 평가 받는 미드필더 기성용과 공격수 손흥민의 개인 능력을 활용한 플레이로 간신히 본선 진출권 순위를 유지했다. 이란 원정과 중국 원정에서는 한국이 가진 몇 안 되는 무기도 틀어 막혔다. 

#진단도 처방도 적절하지 못했다

보다 효율적인 경기 방식을 찾겠다는 의도로 준비한 시리아전 계획이 먹히지 않은 이유는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들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상대가 생각 보다 강하게 나와서”다. 슈틸리케 감독은 구체적으로 “상대가 공격 4명을 1선에 배치해” 중원 수비에 부담이 생겼고, “세컨드볼을 많이 놓쳤고 공격 지역에서 볼을 많이 잃었다”고 진단했다. 그가 진단한 문제점은 모두, 그가 준비한 전략이 담고 있던 구조적 불안요소였다. 게다가 그 문제는 중국 원정 패배의 이유와도 같았다.

더불어 상대에 대한 분석이 미비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리아가 포백과 두 명의 미드필더로 문전 위험 지역 공간을 지우고, 좌우 측면 미드필더와 두 명의 공격수로 역공을 전개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 라운드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같은 전략으로 나섰다. 경기 막판 권순태의 이마 선방과 골대 강타에 득점 기회를 아쉽게 놓친 피라스 알카티브는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도 교체로 들어와 결승골로 이어진 페널티킥을 유도하며 맹활약했던 선수다. 

그런데 슈틸리케 감독과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만난 선수들 모두 시리아가 네 명을 공격 최전선에 배치하고, 전방 지역부터 터프한 경기를 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시리아가 오늘 낸 전략은 꽁꽁 숨겨둔 비밀 전략이 아니었다. 심지어 국내 보도된 프리뷰 기사에도 상세히 기술된 내용대로 나왔다. 슈틸리케 감독의 전략 구성 능력에 회의론을 가질 수 있는 배경이다.

#더 험난한 이후 일정, 슈틸리케를 믿을 수 있을까?

현재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는 3강 구도로 전개되는 모습이다. 이란이 승점 17점으로 앞서가고, 한국이 13점으로 2위다. 우즈베키스탄이 12점으로 바짝 따라 붙어 있다. 시리아는 8점으로 4위, 중국이 5점으로 5위, 카타르가 4점으로 최하위다. 이란의 조 1위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직행 티켓이 주어지는 2위 자리를 두고 우즈베키스탄과 경합하는 형국이다.

잔여 일정은 쉽지 않다. 한국은 두 번의 원정 경기와 한 번의 홈 경기를 남겨뒀다. 슈틸리케호는 원정 경기에서 무승과 무득점을 기록 중이다. 카타르 원정,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한 번의 홈경기 상대는 A조 최강으로 꼽히는 이란이다. 3경기 모두 지금까지 보인 경기력으로는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슈틸리케 감독은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기엔, 한국 축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다. 그가 지금까지 밀어붙여온 축구는 통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고, 새롭게 준비한 전략도 구멍이 많았다. 슈틸리케 감독을 믿고 기다리기엔,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한국 축구가 입을 타격이 너무 크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에 부임해, 10월부터 대표팀을 지휘했다. 한국 축구 역사상 최장기 집권 감독이다. 2015 호주아시안컵과 2015 동아시안컵으로 두 차례 국제 대회도 치렀다. 월드컵 최종예선이 시작한지도 반년의 시간이 넘게 흘렀는데, 부임 당시부터 지적받던 문제와 숙제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주장 기성용은 “감독이 주문을 선수들이 잘 따르지 못했다”며 선수단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했지만, 선수들이 감독의 주문을 확실하게 이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감독의 역할이다. 황희찬은 “50%도 못보여줬다”고 했다. 선수가 가진 기량의 100% 이상을 보여줄 수 있도록 전력을 수립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슈틸리케 감독도 선수들이 가진 기량을 제대로 쏟지 못했다고 아쉬웠다. 한 두 경기라면 모르지만, 그렇게 아쉽게 가진 것을 못 보여준 경기가 최종예선 기간 내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감독과 코칭스태프에 있다. 

감독의 전술이나 철학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 방법론이 통하지 않는다면, 감독을 바꿔야 한다. 선수 전원을 새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음 A매치 일정까지 3개월여의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 안에 슈틸리케 감독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 것이란 믿음을 갖기 어렵다. 3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3개월 동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지 않다. 슈틸리케 감독의 철학과 선수 선발 원칙이 크게 바뀔리는 만무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시리아전 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똑같이 훈련해왔다. 워밍업을 하고, 기술 훈련과 전술 훈련을 한다. 앞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훈련할 것”이라고 했다. 

“설기현과 차두리가 합류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자기 만의 팀을 갖고 있지 않다. 성균관대를 2년 지도한 설기현과 아직 대표팀 코치직을 수행할 수 없는 단계의 자격증만 보유해 전력분석관이라는 직함으로 일하는 차두리를 급히 대동해 팀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급조된 모양새의 코칭 스태프로 치열한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까?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슈틸리케 감독과 설기현 코치, 차두리 분석관의 강점은 선수 시절 높은 수준의 축구를 경험했다는 것 뿐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도자로 큰 무대에서 성과를 낸 적이 없고, 설기현과 차두리는 지도자 경험이 일천하다. 이란의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 중국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 카타르의 호르헤 포사티 감독 모두 지도력을 바탕으로 팀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그들은 경기 내용은 물론 인터뷰를 통해서도 명확한 디테일을 보여주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향후 대비책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다는 말에 “더 안정적으로 경기를 하기 위해 연계플레이와 모든 액션을 마무리로 연결하는 과정을 보완하겠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시리아전 후 기자회견에서 평소보다 세밀한 설명을 했지만, 경기가 잘 안된 이유에 대한 복기였을 뿐, 명확한 개선책을 내놓지는 못했다.

#카타르 원정까지 3개월, 한국 축구의 ‘골든타임’

남은 시간이 3개월이지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인 것도 아니다. 5월 29일 소집해 6월 8일 친선경기 후 6월 13일에 카타르 원정 경기를 한다. 2주 남짓의 시간이다. 카타르 원정까지 남은 3개월의 시간은 한국 축구의 ‘골든타임’이다. 이 시기에 슈틸리케 감독에게 또 한번 기회를 주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감독 교체를 단행할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에 결단을 내릴지 선택해야 한다. 

실상 최종예선 일정 중에 감독을 교체할 수 있는 기회는 딱 두 번 뿐이었다. 지난 해 11월 우즈베키스탄전 이후, 그리고 지금 시리아전 이후다. 다음 경기 일정까지 3개월여의 기간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감독을 찾고, 협상하고, 내정한 뒤 선수를 파악하고, 조기 소집으로 훈련 기간을 보장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3월 A매치 일정의 경우 K리그 개막 시점이며, 유럽 리그가 한창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최적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새 감독이 준비하기 위한 타이밍은 지금이 가장 좋다.

6월 13일 카타르 원정 경기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감독 교체를 단행하기가 쉽지 않다. 8월 31일 이란과 홈경기, 9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 원정 경기 사이 텀이 두 달에 불과하다. 새 감독 후보와 접촉하고, 계약하기도 빠듯하다. 단 두 경기만에 본선행 여부가 좌절될 수 있는 시점에 새 감독을 데려오는 일 자체도 쉽지 않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도전은 유럽의 이름 있는 지도자들에게 매력적인 카드지만, 2019 아시안컵 도전은 그렇지 않다.

유럽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월드컵이 1년 남은 시점에 본선에 나갈 수 있는 팀을 맡는 것은 유럽에서 잠시 일을 쉬고 있는 감독들에게는 매력적인 제안이다. 만약 지금 한국이 감독을 찾는다면 만나볼 수 있는 감독이 적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시점은 지금이 유일하다. 

만약 한국이 조 3위로 플레이오프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월드컵 예선 일정은 올해 11월까지 이어진다. A조 3위가 되면 B조 3위와 10월 5일과 10일 홈 앤드 어웨이로 플레이오프 경기를 하고, 여기서 이길 경우 11월 6일과 14일에 북중미 최종예선 4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해야 한다. 최종예선 A조 남은 3경기에 최대 7경기가 남아있는 시점이다. 새 감독에게도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미션이다.

#협회의 고민과 거듭된 악수

슈틸리케 감독에게 남은 3차례 최종예선 경기, 최대 7경기까지 늘어날 수 있는 향후 일정은 지금까지 치른 경기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어려울 것이다. 지금과 같은 경기력이라면 러시아에 가더라도 조별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필자는 늘 감독 교체에 대해선 신중론을 폈다. 지금은 큰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한국 축구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 옳은 선택일까? 아니면 감독 교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릴 수 있는 마지막 타이밍에 결단을 내리는 게 옳은 선택일까? 여론은 후자로 기울고 있고, 결정권은 협회가 갖고 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이후 한국 축구는 2014 브라질월드컵까지 8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세계적인 축구강국들도 쉽게 세우지 못한 기록이다.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을 거르는 일이 30년 만에 발생할 수 있다. 2022 카타르월드컵을 기다리는 과정에 한국축구는 그동한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협회는 매 대회마다 감독 교체를 겪으며 지속성 유지에 실패했다. 최대치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한국축구는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감독 선임 과정의 성급한 판단으로 홍명보라는 축구영웅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 경험이 협회를 더 주저하게 만들고 있을 수도 있다. 협회는 홍명보 감독 후임 후보 리스트에서 금액 조건이 가장 낮은 감독을 택했다. 협회는 거듭 악수를 두고 있고 있다. 슈틸리케를 믿고 가든, 새 감독을 찾든 그 보다 훨씬 비싼 대가를 치를 위기에 놓였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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