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한국이 훌륭한 경기를 했지만, 시리아 역시 그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 경기 내용 면에선 양 팀이 비긴 경기였다고 생각한다.” 아이만 하킴 시리아 대표팀 감독의 말처럼, 비겨도 할 말이 없는 경기였다. 어쩌면 질수도 있었다. 아이만 감독은 “결정력이 부족했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시리아는 전반 30분 알라 알시블리의 문전 발리 슈팅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갈랐고, 후반 26분에는 피라스 알카티브의 슈팅이 권순태의 머리 선방에 걸렸으며, 후반 추가 시간 1분에 알카티브의 슈팅이 크로스바를 때리는 등 마지막까지 한국의 리드를 빼앗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홈에서 거둔 첫 무실점 경기였지만, 경기 내용상으로 행운의 승리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우리가 중국 원정에서 운이 따르지 않았던 것처럼, 이렇게 행운이 따라 승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 공식 기록지에 나온 슈팅 숫자는 한국이 11회, 시리아가 7회였지만, 한국은 전반 4분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수 홍정호가 강하게 때려 넣은 선제 득점 상황에서만 반짝했다. 그 뒤로 기성용 개인의 스루 패스와 슈팅 시도 외에 조직적인 팀 플레이로 공격을 만들지 못했다. 오히려 후반전이 진행될수록 시리아가 더 좋은 장면을 만들었다. 

#슈틸리케는 왜 고명진을 오른쪽 측면에 배치했나

슈틸리케 감독은 시리아와 경기에 그동안 치른 경기와 다른 전략을 준비했다. 경기 한 시간 전 대한축구협회가 공식 발표한 선발 명단에 중앙 미드필더 고명진이 우측 미드필더 자리에 배치된 4-1-4-1 포메이션이 표기됐다. 기성용이 포백 앞을 홀로 지키고, 손흥민이 좌측, 구자철과 남태희가 중앙에 배치됐다. 황희찬이 원톱으로 나섰다.

수비라인에는 중국전에 선발로 나선 김진수, 홍정호, 장현수가 그대로 나왔지만 라이트백 포지션에 최철순이 선발 출전했다. 구성과 배치 모두 새로웠다. 실제 킥오프 상황에서는 고명진이 기성용과 더블 볼란치를 이루는 4-2-3-1 포메이션이었으나, 홍정호의 선제 득점 이후 예고된 포메이션대로 고명진이 우측면 미드필더 자리로 이동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 변화에 대해 “기자 여러분도 헷갈리셨겠지만, 시리아를 헷갈리게 하고자 한 것이다. 원래 고명진을 우측면에 배치할 계획이었으나 킥오프 상황에는 고명진을 더블 볼란치 자리에 둬서 4-2-3-1 포메이션으로 보이게 하려고 했다. 경기 시작 3~4분 후에 4-1-4-1로 바꾸자고 라커룸에서 말을 맞추고 들어갔는데, 하필 선제골 시점과 맞물려 득점 이후 바꾼 것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왼발잡이 고명진을 우측면에 배치한 이유는, 크로스 패스가 아닌 전진 스루 패스를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배급하기 위해서였다. 황희찬의 속도를 살리기 위해 고명진이 우측면에서 왼발로 공을 편하게 받고, 빠르게 침투 패스를 보낼 수 있는 전략을 준비한 것이다. 기성용은 배후에서 전방으로 깊숙이 침투 패스를 배달하고, 고명진은 측면에서 침투 패스를 보내는 시리아 수비를 공략하겠다는 작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작전은 실패했다. 기성용이 포백 앞에 홀로 배치되면서 상대 역습 공격이 전개되면 중원에 빈 공간이 많이 생겨 대비가 어려웠다. 애초에 오른발로 볼처리가 어렵다보니 터치 이후 볼 연결 과정이 늦었고, 라이트백 최철순과 호흡도 좋지 않았다.

좌측면의 손흥민과 전방의 황희찬 뿐 아니라 구자철과 남태희까지 전방 침투 플레이에 집중하면서 미드필드와 공격 라인 사이가 벌어졌고, 서로 짧은 패스로 주고받으며 전개하는 연계 플레이가 실종됐다. 한국 공격은 일단 잡으면 길게 차고, 공격진에서 잡으면 줄 곳을 찾지 못해 일단 쥐고 달리는 원초적인 방식에 그쳤다.

#적극 공세 펼친 시리아, 슈틸리케의 4-1-4-1이 보인 허점

시리아는 투톱 나크달리와 키르빈, 두 명의 측면 미드필더 알마와스와 유수프, 그리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라이트백 알라를 통해 짧은 패스로 주고 받으며 저돌적으로 전진했다. 생각한 것과 달리 시리아는 수비 라인을 뒤로 물리지 않았고, 육탄 수비로 볼을 취득하면 공격 상황에 많은 숫자가 달려들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전반 30분 경에 고명진을 기성용의 옆 자리로 옮겨야 했고, 후반 9분 만에 고명진을 빼고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한국영을 투입해 중원 밀도를 높이기 위한 보수 작업을 해야 했다. 슈틸리케 감독도 “시리아가 1선에 4명의 공격수를 배치하고 강하게 나왔고, 우리가 세컨드볼을 많이 놓쳤다”며 1차 전략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수비 상황 만이 아니었다. 고명진은 기대한 공격적 역할도 거의 하지 못했고, 공을 소유하고 연결하는 과정에도 애를 먹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2선 미드필더 대부분이 전방으로 쏠리면서 안정된 패스 연결을 위한 삼각형 형성이 어려웠고, 기성용과 거리도 멀어졌다. 기성용은 마무리 플레이에 관여하기엔 너무 먼 포백 앞 자리에 머물러 공격이 전체적으로 단순해졌다.

결국 한국영 투입 이후에야 기성용이 전진할 수 있었고, 중원 지역의 수비도 보다 안정감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시리아가 후반 11분 핵심 공격수인 알카티브를 투입하고, 후반 31분과 후반 41분에도 우디 압둘자팔과 마르덱 마르키안 등 공격 자원을 연이어 투입해 공격진의 체력과 기술을 보강해 더 매서운 역공을 펼치며 주도권을 가져간 점이다. 

한국은 공격 전개 과정에서 둔탁한 패스 연결로 쉽게 공을 잃었고, 수비 지역에서도 실수가 자주 발생했다. 시리아는 후반 23분과 후반 26분, 후반 46분에 슈팅을 기록했는데, 이 시간대에 슈팅이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역습 공격 기회를 만들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후반 28분에 황희찬을 빼고 이정협, 후반 41분에 구자철을 빼고 황의조를 투입했으나 두 공격수 모두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이 꺼낸 4-1-4-1 포메이션은 역대 어느 때보다 공간을 많이 비웠고, 선수들은 우왕좌왕했으며, 체력 소모도 어느 때보다 많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수비조직은 괜찮았다”고 평가했다. 수비가 흔들린 이유를 공격진의 미스에서 찾았다.

“사람이니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고, 안 좋은 날이 있을 수 있다. 오늘의 문제는 많은 선수들이 본인의 기량을 못 보여준 점도 있다. 한두 명의 선수가 안 좋은 날이라면 나머지 선수들로 극복이 가능한데, 오늘은 공격진에서 몇몇 선수들에 좋지 않았다. 예를 들면 공을 갖고 플레이할 때 쉽게 빼앗기고 잘렸다. 그러면서 수비들이 힘든 상황이 발생했다. 힘들게 공을 빼앗아 연결하면 쉽게 빼앗겨서 내려오니 숨을 고를 시간이 없었다. 수비는 수비수들만 하는 게 아니라 전체가 하는 것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시리아전 고전의 배경으로 전방 공격 상황에서 볼 소유 실패를 꼽았다. 선수의 개별적 컨디션 문제를 짚었으나, 그가 준비한 전략 전술이 가져온 혼선과 실패에 대해선 회견 막판에 가서 한 차례 인정했다. “뒷공간을 파고드는 침투를 많이 하고, 라인 사이로 공을 받으러 내려오는 움직임이 부족했다. 뒷공간 침투를 위해 롱볼을 많이 하니 상대가 걷어내기 편한 상황이 됐다. 분석해서 개선하겠다.”

#정신도 조직도 시리아에 밀렸다...승점 3점만 남긴 승리

내전으로 인해 홈경기를 치르지 못하는 시리아는 우즈베키스탄과 홈경기도 중립지역인 말레이시아에서 치르고 왔다. 날도 춥고, 먼 거리의 한국 원정을 온 시리아가 경기 막판 불꽃같은 공격 기회를 만들었다. 카타르, 우즈베키스탄과 홈경기의 역전승 과정에서는 상대 체력이 떨어진 후반전을 지배하며 승리를 거뒀는데, 시리아와 홈경기에서는 수세에 몰리다가 상대 결정력 부족과 골대의 행운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시리아는 수비 상황에서 포백과 네 명의 미드필더 모두 강한 집중력을 보였는데, 특히 한국의 최대 공격 병기인 손흥민의 돌파를 거듭 차단했다. 손흥민은 특유의 돌파에 이은 슈팅 기회를 만들지 못하며 타이밍을 거듭 놓쳤다. 시리아가 몸으로 공과 사람이 빠질 공간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실점이 유독 적은 시리아는 육탄 수비로 골문을 지켜왔다.

아이만 시리아 감독은 전략적 측면 보다 내전으로 고통 받은 국민들을 위해 뛰었다는 정신적 측면이 시리아가 보인 선전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시리아가 처한 상황은 이번 대회 참가중인 그 어느 팀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높은 사기 유지하고 있다. 시리아 국민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왔다는 영광을 되새기고 있었다. 시리아에 있는 모든 축구인들과 전략 전술을 준비했다.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왔다. 국민들에게 행복 주기 위해, 좋은 성과로 기쁨을 주기 위해 뭉쳤다. 이번 경기가 기쁜 성과로 이어지지 못해 아쉽다.” 

한국은 시리아에 승리했지만, 정신적으로나 전략적으로 모두 밀린 경기를 했다. 손흥민의 오른발로 연결한 몇몇 세트피스 공격 정도가 빛났을 뿐, 시리아를 제압할만한 축구를 하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훈련을 통해 문제를 개선하고,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나서겠다. 대표팀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며 향후 선수 선발 및 전술 전략 측면에서 해결책을 찾겠다고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그동안 전술을 바꾸지 않는다고 뭐라하더니, 이젠 전술을 바꾼다고 뭐라하고 한다”고 항변했지만, 그가 준비한 새로운 전력은 이날 승리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지 못한 실패작이 됐다. 이날 경기 승리에도 내용에 대한 불만족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대한 비관론이 여전하다. 시리아전 승리에도 슈틸리케 감독은 회의론을 뒤집지 못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그래픽=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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