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네덜란드는 2014년 이후 제대로 된 세대교체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과도기를 돌파할 만한 감독의 리더십도 없었다. 실패한 감독을 두 명 째 내쫓았을 뿐이다.

네덜란드축구협회(KNVB)가 27일(한국시간) 다니 블린트 대표팀 감독을 경질한다고 밝혔다. 일단 프레드 그림 U-21 대표팀 감독이 29일 홈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갖는 친선경기를 지휘하게 된다.

20개월 동안 18경기를 지휘한 블린트 감독의 치세는 짧지 않았다. 마지막 경기는 지난 26일 소피아에서 불가리아를 상대한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 예선전이다. 0-2로 패배한 네덜란드는 A조 4위로 밀리며 본선 진출이 난항에 빠졌다.

아직 남은 일정이 많긴 하지만 각조 1위만 본선에 직행하고 2위 중 일부가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있는 예선 규정상 네덜란드는 최소 두 계단을 올라야 한다. 현재 실력으로는 어려운 과제다. 네덜란드는 ‘유로 2016’ 예선에서 이미 떨어진 바 있다. 네덜란드가 유로 대회와 월드컵에서 연속으로 예선탈락 한다면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이어졌던 암흑기에 이어 약 30년 만의 일이 된다.

세대교체 과도기에 놓여 있던 네덜란드는 ‘2014 브라질월드컵’까지 기존 멤버들의 힘으로 버텼다. 로빈 판페르시, 아르연 로번, 베슬러이 스네이더르, 나이젤 더용 등이 중심을 잡았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기량의 젊은 수비수들은 약점을 감춰주기 위해 네덜란드 전통의 포백 대신 스리백을 운용했다. 사실상 파이브백에 가까운 수비 위주 포진 위에서 베테랑 공격진들이 빠른 역습으로 골을 넣으며 4강까지 갔다. 루이스 판할 감독에게도 마지막 전성기였다.

이후 네덜란드는 세대교체에 실패했다. 2014년에 기대를 모은 수비수 중 브루노 마르틴스 인디는 포르투를 거쳐 스토크시티로, 블린트는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스테판 더프라이는 라치오로 이적했다. 이들 중 가장 잘 성장한 더프라이는 오른쪽 다리 부상으로 이번 대표팀에서 조기 이탈했다. 기대를 모았던 야스퍼 실러선 골키퍼는 바르셀로나에서 후보 신세에 머무르고 있으며, 브라질월드컵 당시 후보였던 저로언 조트 골키퍼가 대신 골문을 책임지고 있다.

판페르시와 클라스 얀훈텔라르가 떠난 공격진의 약화는 더욱 심각하다. 포르투갈 구단 스포르팅CP에서 좋은 활약 중인 바스 도스트가 불가리아전 최전방을 맡았고, 스파르타크모스크바 소속 쿠니시 프로머스가 윙어로 출장했다. 로번 외엔 개인 능력을 믿을 만한 선수가 없는 상태다.

브라질월드컵 당시 세대교체의 상징이었던 멤피스 데파이의 정체가 치명적이었다. 2015년 맨체스터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조롱거리로 전락했던 더파이는 1년 반이 지난 올해 1월 올랭피크리옹으로 이적해 조금씩 부활 기미를 보이고 있다. 불가리아전에선 벤치를 지켰다.

네덜란드 유망주들은 자국 리그에서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다가 빅리그 진출 후 한 단계 어려운 경쟁에서 실패하며 정체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네덜란드 대표팀에서도 비슷한 케이스가 여럿 눈에 띈다. 후반에 교체 투입된 뤼크 더용이 대표적이다. 더용은 트벤테에서 2011/2012시즌 25골을 몰아친 뒤 보루시아묀헨글라드바흐로 이적하며 빅리그 도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즌 6골에 그쳤고, 다음 시즌 뉴캐슬유나이티드에서는 한 골도 넣지 못했다. 결국 2년 만에 PSV에인트호번으로 이적하며 네덜란드 무대로 돌아간 더용은 2015/2016시즌 26골을 넣으며 부활했다. 공격수 도스트는 볼프스부르크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던 시즌도 있었으나 결국 적응에 실패해 4시즌 만에 포르투갈 리그로 옮겨간 뒤 다시 득점포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미드필더로는 스트로트만, 헤오르히니오 베이날둠 등이 빅리그에서 무난한 활약을 하고 있지만 공격이 가장 큰 문제다. 자국 리그에서도 가장 많은 골을 넣은 네덜란드 공격수가 득점 6위인 리키 판폴프스빈켈일 정도로 공격수 기근이 심각하다.

선수 부족에 시달린 블린트 감독은 무리수를 뒀다. 아약스의 18세 유망주 수비수 마티스 더리흐트를 선발로 투입했다. 연령별 대표를 거쳐 온 특급 유망주지만 소속팀 아약스에서 이번 시즌에야 1군으로 올라왔고, 1군 선발 경력이 단 9경기에 불과한 신인이다. 리흐트는 불가리아전에서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교체됐다.

이젠 불러올 베테랑도 없다. 판페르시, 훈텔라르 모두 하향세다. 스네이더르가 불가리아전 후반에 교체 투입됐지만 팀을 구해내지 못했다. 이 점을 알고 있는 네덜란드는 브라질월드컵 이후 전통적인 4-3-3 포메이션으로 돌아가며 정상적인 축구를 회복하려 했다. 그러나 약간 부족한 선수들의 기량을 전술과 지도력으로 보완하기엔 적절한 감독이 선임되지 않았다.

차기 감독으로 로날드 쾨만 에버턴 감독이 거론되고 있지만, 에버턴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지금 ‘독이 든 성배’를 굳이 잡는 건 큰 모험이다. 지난해 인테르밀란에서 경질된 프랑크 더부어 감독, 거스 히딩크와 딕 아드보카트 전 감독도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판할 전 감독은 감독을 보좌하는 직책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대교체보다 당장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것이 급선무다. 네덜란드가 선임할 감독의 성향을 보면 남은 예선 행보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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