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류청 기자= 슈틸리케호는 누가 무너뜨렸던 게 아니다. 스스로 무너졌었다. 

 

28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리아와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7차전을 치르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분위기가 좋지 않다. 지난 6경기에서 3승 1무 2패를 거두며 조 2위는 지켰지만, 시리아에 패하면 4위까지 떨어질 수 있다. 지난 23일에는 중국 원정 경기에서 사상 처음으로 지기도 했다.

 

27일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한 공식기자회견 분위기는 무거웠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 거취가 질문에 나올 정도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거취 이야기는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감독으로서 당연히 성적에 영향을 받고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라고 했다. 주장 기성용은 “선수들이라고 왜 간절하지 않겠나”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악은 아니다.” 기성용은 한국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경기력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지난 중국 원정에서 져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못한 것은 아니다. 작은 실수와 작은 부주의가 만나 패배가 됐다. 기성용은 “실점 장면을 보면 상대가 기 막히게 한 게 아니라 틈을 주고 안일하게 한 게 실점으로 이어졌다”라고 했다.

 

슈틸리케호는 최종예선 들어 계속해서 조그만 실수에 무너졌다. 최종예선 1차전 중국전에서도 손쉽게 앞서가다 수비에서 실수가 나오며 몰렸다. 3-2로 승리하긴 했지만 이후 대표팀은 실점에 시달렸다. 공격은 공격대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 말처럼 빌드업은 나쁘지 않지만 문전 앞에서 결정력이 떨어졌다.

실력이 떨어지면 하루 아침에 바꿀 수 없지만, 대표팀이 보인 약점은 바로 조정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 정신적으로 압박감을 극복하고, 90분 동안 실수하지 않을 정도로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기성용은 “그런 것들은 충분히 하루 아침에라도 고칠 수 있다. 간절함이나 집중력이 보완된다면 고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표현했다.

 

흐름은 무섭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처음으로 치른 메이저대회 ‘2015 호주 아시안컵’ 분위기는 달랐다. 당시에도 슈틸리케호는 유려하지 않았다. 다만 강했다. 선수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실점하지 않고 버텼고 골을 만들었다. 호주와 연장 끝에 패했을 때도 비난보다 칭찬이 많았던 이유다. 한국은 이겨야 한다는 의지로 뭉쳐있었다.

 

아시안컵에서 탄력 받은 대표팀은 월드컵 2차예선을 무실점 전승으로 끝낼 수 있었다. 2차예선이 끝나고 최종예선으로 가면서 이 단단함이 무너졌다. 상대가 강해진 이유도 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내부에 있다. 감독은 상대 강한 압박을 뚫을 상세한 전략을 내놓지 못했고, 선수들은 바람에 흔들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27일 기자회견에서도 구체적인 전략은 언급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조금 모호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자신이 위기에 처했고, 변명할 수 없다는 것을 수긍했다는 점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지금까지 재임 기간 동안 맞춤 전술이 아니라 ‘우리 것’을 내세웠던 이에게 갑자기 디테일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사실 선수 구성으로 보면 한국이 홈에서 시리아 경기를 걱정한다는 자체가 아이러니다. 우리는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과 기성용을 보유했고,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구자철과 지동원도 팀에 있다. 이 상황은 슈틸리케호가 지닌 문제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기나긴 내전과 고통을 딛고 홈 경기도 치르지 못하는 시리아를 홈으로 불러들이고도 편하게 승리를 기다리지 못한다.

 

경기력이 아니라 집중력, 정신력에서 승패가 갈린다. 한국이 90분 동안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시리아에 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다만 선수와 감독이 지금까지 자신들이 만든 부담감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게 문제다. 기성용은 이 위기를 선수 개개인이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어렵지만 이를 극복하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여기 온 선수는 한국에서 축구를 가장 잘 하는 선수들이다. 그 선수라면 부담 속에서도 플레이 보여줘야 한다. 그게 되지 않았을 때는 어려움이 올 수밖에 없다. 이 위기를 통해서 얼마나 스스로 얼마나 큰 선수인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 나머지는 선수들이 책임질 몫이다. 정신력이 전부였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실력과 경력 그리고 기술을 지녔다. 하지만 이를 완벽하게 해주는 건 정신력이다. 맘 속에 품었던 간절함을 보이는 길은 승점 3점을 얻는 것뿐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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