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우즈베키스탄 원정은 이란과의 홈 경기 못지않게 껄끄럽다. 그러나 한국의 경기력은 훨씬 나아졌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플레이가 자연스러웠다는 점이 달랐다.

한국은 6일(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위치한 분요드코르 스타디움에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최종 10차전을 치러 우즈베키스탄과 0-0 무승부를 거뒀다. 조별리그 최종 순위 2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한국은 1일 이란전과 포메이션, 선발 라인업 모두 큰 폭으로 수정했다. 선발 포메이션은 4-4-2에서 3-4-3으로 변했다. 양쪽 윙백과 중앙 미드필더까지 4명이 모두 교체됐고, 공격진엔 이근호가 추가돼 기존 멤버 손흥민, 황희찬과 호흡을 맞췄다. 이란전 경기력이 예상보다 나빴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과격한 전술 변화가 역효과를 낼 거란 우려도 있었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고 나니 한국의 플레이는 이란전보다 더 매끄러웠다. 무엇보다 선수들이 잘 이해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점에서 경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김영권과 김민재는 각각 스리백의 좌우 수비수를 맡기에 적합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고, 그 사이에 배치된 장현수는 셋 중 가장 스위퍼에 가까운 선수다.

좌우 윙백 김민우와 고요한은 각각 수원삼성과 FC서울에서 K리그 최고 윙백으로 활약해 본 선수다. 포백의 풀백보다 스리백의 윙백이 더 익숙하다. 수비수보다 미드필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스리백에 더 적합한 플레이스타일의 소유자들이었다. 앞선 이란전에서 좌우 풀백 김진수와 최철순이 고전했던 것과 달리 김민우, 고요한은 능동적인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중앙 미드필더 조합의 완성도가 이란전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이란전 포진 4-4-2에서 구자철, 장현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처럼 뛰어야 했다. 둘 다 중앙 미드필더를 소화해 본 적은 있지만 중앙 미드필더가 3명인 전술에서 합을 맞추는 데만 익숙했지, 넓은 수비 범위를 소화할 만한 에너지는 갖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우즈벡전 중원 조합은 정우영과 권창훈이었다. 비록 충칭리판에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는 정우영에게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장현수보다는 자연스런 미드필더였다. 권창훈은 지난해 수원에서 3-4-3의 중앙 미드필더를 소화한 경험이 있다. 경기력은 원래 권창훈의 기량에 못 미쳤지만, 수비할 때 위치 선정과 대형을 맞추는 플레이는 이란전 미드필더들보다 훨씬 기민하고 자연스럽게 수행했다. 이란전은 팀 조직 차원부터 붕괴된 경기였지만 우즈벡전에서 한국은 기본적인 포진을 갖추고 경기했다. 그 차이는 중앙 미드필더들에게서 비롯됐다.

한국이 후반전에 더욱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구자철이 어울리는 위치에서 활약한 덕분이 컸다. 구자철은 수비형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측면 미드필더, 심지어 ‘가짜 9번’까지 온갖 위치에서 경험을 쌓은 선수다. 그러나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포지션은 늘 미드필더 3명 중 가장 공격적이지도, 가장 수비적이지도 않은 가운데 위치였다. 제주유나이티드에서 각광받았을 때의 위치다. 구자철이 오래 활약하고 있는 독일 축구의 용어로는 ‘6번’(수비형 미드필더)과 ‘10번’(공격형 미드필더) 사이에서 뛰는 ‘8번’에 해당한다.

구자철은 ‘8번’으로서 가장 자연스런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상대 미드필더들의 압박이 적당히 들어오면 뛰어난 발재간으로 직접 빠져나갔고, 측면과 전방으로 좋은 패스를 배급했다. 기성용이 없는 가운데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선수는 구자철이었다. 이란전에서 너무 무거운 짐을 감당하느라 자기 장점을 발휘하지 못한 반면 우즈벡전에선 더 지능적인 플레이로 한국의 후반전 상승세에 일조했다.

한국의 경기력을 더 상승시킨 두 번째 교체 카드 염기훈도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축구를 자연스럽게 수행했다. 염기훈은 수원의 왼쪽 미드필더 자리에서 K리그 최고 수준 볼 키핑, 적절한 패스와 측면 돌파 후 크로스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측면 공격수보다 측면 미드필더에 가까운 위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선수다. 염기훈의 투입과 함께 한국의 포메이션은 4-4-2로 전환됐고, 왼쪽의 염기훈이 공격의 물꼬를 트면 오른쪽의 손흥민이 전방으로 침투하는 식으로 전개됐다. 염기훈이 수원에서 하던 역할을 자연스럽게 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의 공격 속도는 더 빨라졌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선수의 포지션을 바꾸는 건 위험부담이 큰 행위다. 프로 팀에서는 오랜 훈련을 통해 새 포지션에 적응시킬 수 있지만 대표팀에선 그럴 시간이 없다. 이번 2연전에 참가한 장현수의 경우,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이긴 하지만 이란전과 같은 역할은 장현수가 잘 소화했던 미드필더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선수의 포지션뿐 아니라 기존에 잘 했던 플레이가 뭔지 확인하고 그걸 재현할 수 있게만 해 준다면 대표팀 전술은 이미 절반 이상 완성된 셈이다.

한국은 월드컵을 채 1년도 남기지 않고 또 대표팀 감독을 바꿨다. 차근차근 팀을 만들어 갈 시간이 부족하다. 친선 경기나 전지 훈련 기회가 충분하다면 대표팀에서도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선수들을 뜯어고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러기 힘들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맞추는 것이 대표팀의 일반적인 운영이고, 한국도 그런 운영이 필요해졌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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