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풋볼리스트] 축구는 365일, 1주일 내내, 24시간 돌아간다. 축구공이 구르는데 요일이며 계절이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풋볼리스트는 주말에도 독자들에게 기획기사를 보내기로 했다. Saturday와 Sunday에도 축구로 거듭나시기를. 그게 바로 ‘풋볼리스트S’의 모토다. <편집자 주>
이동국은 만 19세에 대표팀 유니폼을 처음 입었고, 38세에 다시 붉은 옷을 입었다. 그는 슈퍼맨은 아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10차전에서 모두 선발로 나서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동국이 걸어온 길을 정리하고 그 의미를 살펴볼 이유는 분명하다.
이동국 이전에 고 김용식 선생(1910년 7월 25일 생)이 있었다.
이동국은 38세 4개월에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역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대표 선수가 됐다. 첫 번째는 고 김 선생이다. 그는 1950년 4월 16일 한 홍콩-중국 선발전에 출전(39세 265일, 대한축구협회 기록 기준)에 출전했다. 그는 당시 골을 터뜨리며 역대 최고령 골 기록도 가지고 있다.
고 김 선생 뒤로 정국진(37세 132일), 정남식(37세 87일), 우상권(34세 170일)이 최고령 득점 2, 3, 4위를 달린다. 만약 이동국이 이번 최종예선 9.10차전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역대 최고령 득점자 2위가 된다.
고 김 선생은 역대 최고령 올림픽 대표이기도 하다. 그는 ‘1948 런던 올림픽’에 주장으로 참가했다. 첫 경기에 출전했을 때 38세 8일이었다. 고 김 선생은 ‘1936 베를린 올림픽’에는 일본 대표로 뛰었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산발됐었다.
그는 역대 최고령 감독이기도 하다. 고 김 선생은 1969년 만 59세 나이로 ‘1970 멕시코 월드컵’ 예선전을 이끌었다.

고 김 선생은 지난 2004년 대한축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1954 아시안컵’ 우승멤버인 축구원로 박경호 선생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고 김 선생) 기록을 찾으려면 일본으로 가야 할 것이다. 김용식 대선배님처럼 훌륭한 분이 없었는데, 우리는 그런 잘난 사람들의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협회라도 나서서 그분이 지닌 생각이나 지식을 정리해야 했다.”
일본축구협회는 고 김 선생을 개인자격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려다 2016년 단체 자격(‘1936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으로 헌액했다. 일본에서는 일본 국제대회 첫 승(스웨덴 3-2 역전승)을 이끈 고 김 선생을 “축구의 신”이라 부른다.
글= 류청 기자
사진= 대한축구협회, 축구수집가 이재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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