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승부는 작은 차이에서 갈린다. 제주유나이티드는 강원FC보다 두 배 가까운 슛을 날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정력이 부족했고, 강원은 황진성의 왼발에서 시작된 수비수들의 득점 두 개로 경기를 끝냈다.

16일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제주 월드컵경기장에서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2017’ 6라운드에서 강원이 제주를 2-1로 꺾었다. 경기 시작 45초만에 발렌티노스가, 후반 23분 안지호가 황진성의 왼발 프리킥을 받아 연속골을 넣었다. 제주가 후반 추가시간에 따라갔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이 승부로 클래식 선두가 바뀌었다. 승리를 추가하지 못한 제주는 3승 2무 1패로 승점 11점에 머물렀다. 같은 시간 승리한 전북현대(승점14), 하루 먼저 승리한 포항스틸러스(승점13)에 밀려 3위가 됐다. 이제 클래식에 무패팀은 선두 전북뿐이다.

 

수싸움보다 중요한 건 황진성의 왼발

상대의 수를 읽어도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경기 전 라인업에서 상대의 의표를 찌른 쪽은 제주였다. 제주는 로테이션 시스템에 따라 마그노와 권용현을 투톱으로 세우고 그 뒤에 마르셀로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했다. 강원이 멘디의 제공권을 의식해 스리백을 세웠지만 멘디는 벤치에서 대기했다. 강원은 박진포의 부상 공백도 예상하지 못했다. 반면 조성환 제주 감독은 “강원의 앞선 전북전을 보고 스리백을 90% 정도는 예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효과적인 플레이를 많이 한 쪽은 강원이었다. 강원의 스리백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냈다. 특히 그동안 센터백에서 고생하던 발렌티노스를 스리백 앞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한 최윤겸 감독의 조치가 효과를 냈다. 힘보다 지능이 장점인 발렌티노스는 공격수와 직접 몸싸움해야 하는 센터백보다 지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더 좋은 활약을 했다.

발렌티노스는 경기 시작 1분 만에 선제골까지 넣었다. 엄청난 킥 감각을 보여준 황진성의 코너킥을 발렌티노스가 머리로 마무리했다. 발렌티노스의 미드필더 파트너로 나온 황진성은 깔끔한 패스뿐 아니라 세트피스 전담 키커로서 프리킥, 코너킥을 원하는 지점에 정확히 날려댔다. 제주는 김호준의 선방으로 한 차례 위기를 넘겼다. 지난해 제주 선수였던 이근호는 공간 침투와 측면 돌파 등 자신의 강점을 마음껏 발휘하며 제주 수비를 곤경에 빠뜨렸다.

반면 제주의 디테일은 리그 선두다운 경기력을 내기 힘든 상태였다. 조성환 감독은 13일 부산에서 열린 R리그 경기를 직접 관전하고 돌아온 뒤 당시 멤버였던 권용현을 1군 선발 라인업으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스피드가 장점인 권용현은 동료들과 매끄러운 호흡을 발휘하지 못했다. 투톱 중 왼쪽에 치우쳐 움직인 권용현에 후보 레프트백 김상원이 함께한 제주의 왼쪽 공격은 거의 소득이 없었다. 미드필더보다 공격수에 가까운 마르셀로, 아직 기대에 부응한 적 없는 마그노, 여기에 쾌조의 경기력을 발휘한 3-5-2가 아니라 3-4-1-2에 가까운 선수 배치 등 제주는 여러모로 최상의 상태와 거리가 멀었다.

경기를 장악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제주는 강원보다 많은 슛을 날렸다. 특히 세트피스에서 김원일의 머리에 맞는 킥이 많았지만 헤딩슛이 번번이 골대를 빗나갔다. 김상원의 크로스를 마르셀로가 재치 있게 흘린 공은 이범영이 막아냈다. 전반 막판 이창민의 기습적인 왼발 중거리슛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튕겨 나왔다. 합이 맞지 않아도 제주는 저력이 있었다.

 

지친 제주, 수적 우위도 소용 없었다

후반전 초반, 제주는 경기를 뒤집을 기회를 잡았다. 후반 7분 안현범의 고속 속공을 저지하다 박선주가 퇴장 당했다. 명백히 반칙을 범했다고 할 만한 동작은 없었지만 안현범이 밀려 넘어진 건 사실이었다. 제주는 후반 9분과 17분에 걸쳐 주전인 권순형과 멘디를 투입해 공격을 강화하려 했다.

그러나 강원은 여전히 버틸 힘이 있었다. 어차피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던 유망주 윙어 임찬울을 빼고 레프트백 정승용을 투입해 포진을 5-2-2에 가까운 형태로 유지했다. 역습의 위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강원의 수비망은 그대로였다.

제주가 답을 찾지 못한 반면 황진성의 왼발은 후반에도 여전히 날카로웠다. 후반 23분 황진성이 프리킥을 올렸고, 이번에 받은 선수는 수비수 안지호였다. 공이 조금 길게 흐를 때 안지호는 낙하지점을 포착했고, 따라가던 이찬동은 한 발 늦었다. 안지호의 헤딩슛이 다시 골망을 갈랐다. 인천유나이티드 시절 이후 7년 만에 클래식에서 골을 넣은 안지호는 강원 서포터 앞에서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며 마음껏 기쁨을 드러냈다.

제주는 수적 우위를 활용할 만한 속도를 갖지 못했다. 지난 11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에서 애들레이드유나이티드와 혈전을 치른 뒤 닷새가 지나 충분히 회복될 거라 생각했지만 체력적 문제는 제주 선수단 곳곳에 잠복해 있었다. 특히 11일 경기에서 모든 힘을 끌어낸 뒤 체력이 떨어져 링거까지 맞았던 안현범은 이날도 이를 악물고 여러 차례 좋은 질주를 했지만 평소만큼 좋은 돌파력을 보이지 못했다. 양쪽 윙백이 모두 힘을 내지 못한다는 건 공격적인 스리백을 운용하는 제주에 치명적이었다. 여기에 자잘한 패스미스, 느린 패스 속도가 수적 우위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사실 선제골도 김원일의 사소해보이는 실수에서 시작됐다. 강원에 세트피스 기회를 많이 내준 것 자체가 제주의 플레이가 계속 반 박자 느리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강원의 노련한 마무리, ‘지옥의 일정’ 가운데 찾은 빛

후반 44분, 제주에 뒤늦은 추격의 기회를 제공한 건 경기 내내 그렇게 빗나가던 중거리슛이었다. 롱볼 투입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마르셀로가 모처럼 노마크 기회를 잡았고, 낮고 빠른 슛이 골문 구석에 꽂혔다. 제주는 추가시간 안에 동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잡고 뒤늦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근호, 황진성, 교체 투입된 김승용 등 강원의 노련한 공격진은 추가시간 3분 중 대부분을 측면에서 흘려보냈다. 연거푸 스로인을 얻어내며 제주 관중들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반격의 기회를 계속 차단했다. 물러나서 지키는 것보다 노련하게 소유권을 유지하고 경기 흐름을 지연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걸 강원 선수들은 알고 있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두 팀 선수 상당수가 경기장에 드러누웠다. 제주는 ACL을 병행하며 피로가 쌓여 있었고, 강원은 한 명이 적은 가운데 평소 이상의 집중력을 발휘했다.

경기 후 “이기기 참 어렵다”고 말한 최 감독은 전방 압박이 생각보다 잘 이뤄졌다고 했다. 승리의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세트피스였다. “상대 세트피스를 분석했다. 신장이 큰 선수들이 안 들어오면서 우리에게 좋은 조건이 됐다. 집중도가 높았다. 시즌 초반에 어려운 상대팀과 만나서 선수들이 위축된 경기가 있었다. 이걸 극복해야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다. 오늘 승리로 자신감을 더했으면 좋겠다.” 강원은 FC서울, 포항스틸러스, 울산현대, 전북현대 등 전통의 명문을 상대로 4경기 무승 중이었다. 제주 원정 승리의 가치는 그만큼 컸다.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황진성은 "연습 때도 그렇고 감이 좋아서 기대는 하고 있었다. 선수들이 헤딩을 잘 해줬던 것도 컸다. 다 시원하게 들어갔다"고 말했다. 한때 공격형 미드필더와 최전방 '가짜 9번'으로 활약하던 황진성은 이번 시즌 강원의 중앙 미드필더를 맡아 후방에서 활약 중이다. 골이나 어시스트 기회가 더 드문 위치다. 킥으로 오랜만에 공격력을 보여줬다. 포항스틸러스 시절 제주 원정을 오면 골 등 좋은 기억이 많았고, 이날도 자신감이 있었다. 황진성이 오랜만에 보여준 킥의 클래스에서 클래식 선두가 바뀌었다.

사진=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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