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남해] 김정용 기자= 김병수(47) 서울이랜드FC 감독은 자세가 기우뚱하다. ‘비운의 천재’라는 별명을 안겨 준 선수 시절 부상 때문이다.

새 팀을 만난다는 건 아픈 발목의 통증이 살아나는 일이다. 영남대를 2008년부터 지휘하면서 대학축구의 강자로 만든 긴 감독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자기 스타일을 완성하고, 영남대에 뿌리박게 만들었다. 지난 9일 부임한 서울이랜드는 프로 첫 팀이다. 김병수식 축구가 생소한 선수들에게 자기 축구의 여러 원칙을 직접 시범 보여야만 했다. 김 감독은 다리를 절면서도 트래핑 요령, 패스 요령, 공을 받고 나서 취해야 하는 움직임을 시연했다. 천재 선수 시절 익히고 아마추어 스타 감독으로서 나름의 이론을 정립한 결과물이다.

김 감독의 도전이 성공하면 한국 축구도 ‘아래로부터 성공’한 지도자를 한 명 더 얻는 셈이다. 승강제가 잘 발달된 독일에선 4, 5부의 스타 감독이 분데스리가까지 올라가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에서 하부리그 노릇을 하는 K3리그, 내셔널리그, 대학축구 등은 K리그와 분리돼 있기 때문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어려웠다. 스타 감독을 선호하는 추세에서 아웃사이더의 자리는 더 줄어들었다.

대학 무대에서 독보적인 스타일로 인정받은 김병수식 공격 축구는 프로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16일 전지훈련지인 경남 남해의 힐튼남해리조트에서 만난 김 감독은 “가능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과시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걸 꺼렸지만, 실제로 자기 축구가 통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거짓말을 하진 못하는 모양이었다.

 

#발목이 아파도 시연하는 건

"현역 때 당한 부상 부위인데 연골이 파열되고 뼈 자체가 휘었어요. 작년 4월에 급한대로 수술을 했는데, 발목 구조 자체가 엉망진창이라 근본적으로는 손을 못 대는 것 같더라고. 그리 개선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좀 걱정스럽죠. 나이를 먹을수록 더 아플까봐. 요즘 훈련장에서 많이 움직이니까 불편해 보일 텐데 사실 많이 걷질 못해요. 시간이 좀 지나면 제가 직접 시범 보일 일도 줄어들고 어려운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설명을 할 때 일일이 말로 해줄 순 없잖아요. 우리 팀 스타일을 잡아야 되니까 제가 개입해야 할 게 좀 많더라고요. 축구라는게 디테일이 필요한데, 그걸 소홀히 하면 안 되거든요. 작은 디테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선수들이 그걸 이해해줄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경기의 속도가 나거든요."

 

#속도를 높이기 위해

"디테일을 잡아야 팀 전체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거죠. 모든 선수가 똑같은 동작으로 통일이 돼야 플레이가 멈추지 않고 이어지잖아요. 그래야 서로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게 복잡한 게 아니에요. 선수들이 복잡하게 받아들이면 문제가 생길 테니까 단손순하게 만들어야 돼요. 디테일이란 건 화려한 게 아니라 기본 동작을 더 빠르게 하는 거죠. 공을 잡아놓는 방향, 자세 등 훈련에서 강조하는 것들이 제 팀의 기본이 돼요.

디테일이 모이면 경기하는 속도가 빨라지죠. 팀이 앞으로 나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쉽게 말하자면 자동화라고 할까요? 속도뿐 아니라 템포도 빨라지죠. 그러면 상대 팀에게 프레스(압박)를 안 당하겠죠. 그것만으로도 모든 게 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게 가능해져요. 축구의 문제란 프레스를 당하는 순간 발생하기 때문에 그 전에 빠져나가야 해요.

공은 소유하는 게 아니에요. (질문: 공 점유율을 강조하시잖아요. 그런데 공은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으신 거예요?) 소유하는 게 아니고 공유하는 거죠. 소유는 나만을 위한 거고 공유는 팀 전체를 위한 거잖아요. 공유를 통해서 우정을 나누는 거고. 이게 내 기본적인 축구 철학과 밀접한 건데, 그래야만 선수들이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거예요. 인간은 누구나 잘하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까 부담을 덜어줘야 돼요. 그런데 개인이 아닌 팀으로 뛰면서 좋은 경기를 하면 영광은 누구에게 돌아가죠? 각 개인에게 돌아가잖아요.

결국 공을 공유하는데 충실하면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는 거죠. 그리고 우정을 나누게 되고. 영남대에선 선수들이 공을 통해 우정을 나누는 걸 많이 봤죠. 여기선 새로 시작하니까 힘든 작업이 될 테고, 반드시 제 방법이 옳은 건 아니죠. 어찌됐든 제 스타일이 있으니까.

전 여러 부분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게 유기적으로 엮어지는 걸 좋아해요. 선수 심리 지도와 전술 지도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축구란 게 공격과 수비인데, 공격에 치중할 것인지 수비에 치중할 것인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요. 너무 다양한 접근법을 가지면 오히려 피곤해져요.

현대 축구는 압박과 탈압박의 문제, 그리고 카운터(역습)의 문제죠. 카운터만 하면 공을 빨리 잃어버리니까 흔히 말하는 공 소유 게임이 안 되고, 너무 공을 가지고 있으려 하면 카운터가 안 돼요. 이게 딜레마예요. 수비적으로 해서 이기면 경기력 나쁘다고 하고, 공격적으로 해서 못 이기면 골 못 넣는다 하고. 그 사이에서 답을 찾아야 되는 게 축구인데. 너무 전술적으로 분명한 이야기를 해 드릴 순 없고, 전 나름의 답을 갖고 선수들과 이야기하고 있죠."

#프로에서도 통할 거라 본다

"인터뷰를 좀 가볍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질문을 깊게 하시면 저도 그런 대답만 하게 되는데. (질문: 일단 대학에서 어떤 축구를 해 오셨는지 K리그 팬들이 궁금해할 것 같아서요)

전 대학과 프로의 축구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프로든 아마추어든 상대팀이 있잖아요. 그 무대에서 최고의 상대들을 만나게 된다는 건 어디든 똑같죠. 제가 대학교에서 한 축구가 있으면 프로에서도 같은 걸 해야지, 전혀 다른 걸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통할지는 나중 문제인데 전 된다고 봐요. 대학 선수들과 할 때 조금 답답했던 부분이 있었다면 프로 선수들은 더 수준이 높잖아요.

팀을 만드는데 오래 걸린다고 보진 않아요. 몸으로 체감하는 건 오래 걸리겠지만 전술을 가르치는 것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아요. 어제 전술훈련을 딱 한 번 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해도가 높아졌어요. 긍정적이죠. (질문: 선수들은 상지대와의 첫 연습경기에서 감독 스타일이 나왔다고 하던데) 썩 만족스런 경기는 아니었지만 고무적이었다고 봐요.

프로가 아마추어보다 선수가 낫죠. 제 축구도 더 잘 될 걸로 기대해요. 아마추어는 잔실수가 많다고. 패스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단 말이지. 프로는 연결될 학률이 더 높지 않겠어요?

프로에선 뭘 가르칠 수 없다고 하는데 그건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대학생도 기술 자체가 늘진 않아요. 근데 경기하는 방식은 바꿔놓을 수 있는 거죠. 기술이란 화려한 플레이가 아니고 기본을 더 빠르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경기 속도를 올리는 건 가능하다고 봐요.

제가 원하는 스타일을 만드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의지만 있다면 내일이라도 되는 거지. 아, 내일이라는 건 그만큼 빨리 된다는 표현이에요. 시간이 지날수록 선수들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그 날이 빨리 오길 기다리고 있죠."

 

#축구에 통달하고 싶은 욕망

"제가 훈련에 좀 빠져드는 편이죠. 우리 선수들에게 절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겐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축구장 안에선 굉장히 강하고 열정적이지만 밖에선 부끄럼을 많이 타고 약한 사람이다. 중요한 건 운동장이죠. 축구란 저에게 특별하잖아요. 특별하니까 특별하게 접근해야죠. 제가 소리를 치는 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예요. 특히 요즘처럼 할 게 많은 시기엔 특히. 그래서 지금 목이 다 가버린 거예요.

전 감독을 시작하면서,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축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싶었어요. 이 축구라는 운동의 성질을. 이해하고 싶어서 이 길로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접근을 했고, 긴 시간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갖고 있던 많은 자료를 다 버리게 됐어요. 그건 불필요하더군요. 갈수록 자료가 작아지고 심플해질수록 더 많이 알게 되는 거죠. 그럼 내다버린 자료는 (머리 두드리며) 여기에 담아 두는 거고요.

축구를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이 왜 생겼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부터 ‘난 감독이 돼야 해'라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현역 땐 안 그랫죠. 일본에서 뛸 때(1993~1997)만 해도 팀 전술에 관심도 없었어요. (질문: 아, 선수 시절 이야기군요?) 선수 때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축구를 잘 했다는 것 외엔.

축구를 이해하는 길엔 끝이 없죠. 매번 달라져요. 누굴 가르치는게 곧 내가 배우는 거란 말이 있잖아요. 똑같은 말로 가르쳐도 그게 한 번 더 내 안에 들어오니까. 매년 그걸 반복했어요. 선수를 가르치면 반드시 저도 업그레이드가 돼요. 현재에 만족하는 순간 모든 건 멈춰 버려요.

특별히 영향 받은 감독이나 스승은 없어요. 주로 공격적인 팀이 영감을 많이 주죠. 그렇지만 수비에 대해 궁금할 땐 수비가 좋다는 팀 영상을 찾아서 수비만 계속 봐요. 전 축구를 그렇게 보지, 관심이 없는 경기는 안 봐요. 공부를 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거지. 그냥 틀어 놓은 경원래 이렇게 고민하는 성격은 아니에요. 어렸을 때 어렵게 자라긴 했지만 딱히 고민을 해본 적은 없었어요. 축구만 열심히 했죠."

 

#이명주, 신진호 없어도 내 스타일은 가능

"상대팀이 우리 팀보다 볼을 많이 갖고 있는 꼴을 못 봐요. 수비하다 카운터로 두 골 넣고 이겼다, 이런 건 이겼어도 별로 안 좋아하고. 영남대 시절엔 스리백을 쓴 경기에서도 공격 축구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어요. (성남FC를 상대한 FA컵에선 수비에 치중한 날도 있었는데요) 그렇죠. 공교롭게 성남과 세 번이나 붙었고, 마지막 세 번째 경기에선 스리백이었지만 그리 수비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앞선 수비적인 경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다가 전술 옵션이 하나 더 생긴 거죠. 성남 덕분이에요.

이 팀에 더 빨리 와서 적극적으로 영입에 개입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건 조금 안타깝고. 없으면 없는대로 하는 스타일이지만 앞으로도 보강을 할 여지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 있어요. 외국인 선수를 몇 명 쓸지, 예산을 어떻게 할지 두고 봐야죠. 아직 선수 파악이 다 안 됐거든요.

목표를 정해두진 않아요. 대학에서 우승을 많이 했는데, 그중 반드시 우승을 해야겠다는 목표를 가진 적은 없어요. 승률을 높이려고 노력하다보니 우승이 따라온 거지. 내가 원하는 건 이길 가능성을 상대보다 높은 상태로 만드는 거예요. 제 희망사항이고, 반드시 그렇게 할 거예요.

선수들이 특별히 가져야 하는 능력 같은 건 없어요. 우리가 똑같은 정신을 갖고 있으면 어차피 하나가 되는데 뭐. 그 똑같은 정신을 만드는 게 힘든 거고. 가급적이면 볼을 잃어버리지 않는 선수가 있었으면 좋겠지. 그런 선수가 있으면 분명 필요하죠. 연결고리가 잘 될 수 있고 기술적인 선수가 있으면 좋겠지. 그런 선수가 수비에 약점을 보일 수도 있겠죠. 조금 부족한 건 서로 채워줘야겠죠.

영남대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한 선수들이 이명주, 신진호, 손준호 같은 선수들이었죠. (질문: 다들 비슷한 면이 있는데요) 제가 가르친 애들이니까요. 경기 속도를 더 빠르게 해줄 수 있었죠. 신진호는 처음 만났을 때 질질 끄는 애였어요. 지금은 볼 터치를 할 때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죠. 노련해졌어요. 그걸 대학 때 깨친 거예요. 거꾸로 명주는 중앙 수비 보던 선수라서 기량이 좀 부족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진호와 좋은 파트너가 됐죠. 대학 땐 진호의 그늘에 가려 있었고 프로도 앞순위로 뽑힌 게 아니었어요. 그때도 저는 그 친구들 수준을 알았죠. 우리 팀 미드필드에도 명주, 진호 같은 선수가 있으면 축구가 더 잘 이뤄지겠죠. 그렇지만 그런 선수가 없어도 훈련을 통해 경기 운영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하면 되겠지 뭐."

 

김병수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말인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앞으로도 많을 거라는 거지”라고 이야기했다. 자기 스타일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유독 바쁜 겨울이 될지도 모른다. 김 감독은 “내 스타일을 입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봐요”라고 말했다가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에 접근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김병수 스타일’이 프로에서 재현될 수 있다면 리그에 활력을 줄 수 있다. K리그에 필요한 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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