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런던(영국)] 김동환 기자= 아스널의 명장, 프랑스 출신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21년째 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1996년 지휘봉을 잡아 현직 프리미어리그 감독 중 가장 오랜 기간 한 팀을 이끌고 있다. 현재진행형이지만, 이미 그는 아스널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감독으로,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르고 있다. 영국과 역사적으로 아픈 역사가 많은 프랑스 출신이지만, 영국인들은 벵거 감독을 향해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고 있다. 그가 소유한 경제학 석사 학위 탓이기도 하지만, 팬들과 선수들은 그에게 ‘교수(The Professor)’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축구에 대한 나름의 철학과 깊은 지식에 대한 존경심이다.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벵거 감독이지만, 1996년 영국 땅을 밟을 당시부터 그는 영국에 대한 존경심을 표해왔다. “처음 영국 땅을 밟는 순간 이곳에서 바로 축구가 시작되었노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했다” 축구의 기원, 종주국인 영국에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아스널 군단을 이끈다는 가슴벅참을 표현한 그의 말 한 마디는 영국인들의 가슴에 무한한 자부심을 안겼다. 훗날 영국 왕실은 여전히 아스널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명예훈장을 추서했고, 영국국립축구박물관 한 켠에 그의 말을 새겨 넣었다.

런던 외곽에 위치한 허름한 창고. ‘더 포지(The Forge)’는 영국 정부로부터 2등급 문화재로 지정된 유구한 장소다. 산업혁명시절 탬즈강을 따라 유럽대륙으로, 북해로 항해하는 철선을 만들던 공장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치열하게 삶을 살아온 노동자들의 땀과 숨결을 고스란히 담았다. 하루를 마친 노동자들은 공장 옆 골목을 돌아 나서면 나타나는 공원에서 축구를 즐기며 고단함을 달랬다. 종주국의 노동자들에게 축구는 삶의 위안이었고, 즐거움이었다. 카나리워프의 공장들은 이제 주택가로 대부분 변모했다. 하지만 ‘더 포지’는 살아 남았다. 산업의 변화로 이제 더 이상 땀을 흘리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목격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여전히 삶을 담고 있다. 2017년 1월의 ‘더 포지’는 축구를 담았다. 

글로벌 스포츠브랜드 ‘푸마’는 방대한 크기의 공장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벵거 감독의 추종자이자 아스널의 팬인 영국 유명 DJ 카나지를 초대해 음악으로 문을 열고 축구를 적재했다. 그리고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다. 아스널의 최전방과 최후방을 지키는 올리비에 지루, 페트르 체흐였다. 푸마가 새롭게 출시한 축구화 '에보파워 비고르1'을 전세계에 공개하는 현장이었다. 축구선수에게 ‘병기’나 다름없는 축구화는 경기력을 좌우해 승패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최신 ‘기술’을 넘어 이제는 ‘과학’의 영역을 넘볼 정도다. 새로 출시된 축구화는 지루나 체흐 같은 최정상급 선수들의 움직임을 연구해 탄생한 작품이다. 원추형 스터드는 민첩성과 안정된 지지력까지 갖췄다. 스트라이커에게는 강력하고 정확한 슈팅을, 골키퍼에게는 민첩하고 정확한 움직임을 제공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깟 공놀이’에 쓰이는 수 많은 재료 중 하나일수도 있겠지만, 런던에서 만난 체흐와 지루에게는 삶의 열정이 담긴 그들만의 성배나 다름없었다.

 

# 체흐에게 축구는 ‘무한한 도전의 무대’
체흐는 ‘런더너(Londoner : 런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지칭)’다. 2004년부터 런던에 터를 잡았다. 첼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지난 2015년 여름 아스널로 둥지를 옮겼다. 든든한 선방 능력에 벵거 감독이 간절히 원한 영입이었다. 체흐는 자신의 삶의 터전인 런던을 ‘축복의 땅’이라고 했다. “런던에서 살며 축구가 모두의 삶에 녹아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TV와 신문은 온통 축구 이야기다. 사람들의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 사람들의 삶에 녹아 고단한 일상에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축구다. 축구가 뿌리를 내리고 단단한 토양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최고의 장소다” 축복받은 런던에서 체흐는 사람들에게 희로애락을 선사하는 공여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체흐는 오히려 자신 역시 축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고 했다. “어린시절부터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축구다. 삶의 방식 자체가 축구였다. 정말 오랜 기간 땀을 흘리면서 최고의 선수가 되어, 최고의 무대에 오르고 싶었다. 여전히 변함없이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축구에 쏟는다. 꿈에서도 축구를 한다”

체흐에게 축구는 직업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축구선수라는 직업은 가장 작은 꿈이었다. 승리를 하는 꿈을 꾸었고, 가장 높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이미 체흐는 첼시에서 수 차례 가장 빛나는 트로피를 차지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결코 “모든 꿈을 이루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꿈을 꾸기 때문이다. “축구의 매력은 아무리 많은 승리를 거두어도, 내일이며 다른 경기가 나를 기다린다는 사실이다.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무한한 무대가 펼쳐지는 것이 바로 축구다. 모든 이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오른 체흐는 여전히 겸손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가진 비법 하나를 공개했다. “최고가 되기 위해 언제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삶을 살아왔다. 모든 부분에서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기술, 스피드, 리액션 등 모든 부분이다” 골키퍼라는 특수한 포지션을 맡고 있기에 체흐는 더욱 큰 사명감을 가지고 뛰고 있다. 체흐가 강조한 골키퍼의 덕목은 단순명료했다. “골키퍼는 공을 막아야 한다. 말로 하면 단순하지만, 공을 막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공격수들의 움직임은 빨라지고, 슈팅은 강해지고 있다. 대단한 축구화를 신고 대단한 공을 찬다. 공의 회전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나날이 날카로워지는 공세를 막아내는 골키퍼 역시 다양한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실전에 조금 더 가깝게 가기 위해 실제로 다양한 훈련법이 골키퍼들에게도 개발되고 있다. 한계를 극복했다고 느끼는 순간, 또 다른 한계가 펼쳐진다. 늘 도전하는 입장이다. 축구화를 벗는 순간까지 나의 무한한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체흐는 여전히 목마르다. 

# 지루에게 축구는 ‘축복’

이틀 전 펼쳐진 스완지시티와의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다시 한 번 득점포를 가동하며 4-0 대승을 견인, 아스널을 4위로 끌어올린 지루는 올 시즌 리그 7골 4도움을 기록 중이다. 알렉시스 산체스, 시오 월콧과 함께 올 시즌의 벵거 군단을 책임지고 있다. 2012년 아스널에 입단한 후 줄곧 두 자릿수 득점포를 가동하며 팀의 공격에 무게를 더했지만 올 시즌 초는 주춤했다. 잠시 벤치로 밀려나는 듯 했지만, 그라운드에 오를 떄 마다 한방을 터트리며 몫을 다하고 있다. 그 결과 벵거 감독과 아스널은 2018년 5월까지 재계약을 제시했고, 지루는 “아스널의 가족이라 너무 행복하다”며 “올 시즌에는 벵거 감독과 더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 올 시즌에는 꼭 이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물론 가야 할 길은 멀다. 여전히 1위 첼시와의 승점차는 8점이다. 하지만 지루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팀 동료들과 자신을 믿고, ‘아스널의 축구’를 보여준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긍정의 힘을 가진 지루의 키워드는 ‘축복’이었다. “3살부터 축구를 시작했다. 어머니와 함께 오른손에는 물병을 들고, 왼발로 공을 찼다. 지금도 여전히 오른손에는 물병을 들고, 왼발로 공을 차고 있다. 변한 것은 없다” 지루의 뒤뜰은 아스널의 홈, 에미레이츠구장으로 변했다. 하지만 지루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축구선수가 되기로 한 순간부터, 삶의 전부였다. 나의 정체성이며, 인생의 전부다. 3살부터 지금까지 축구를 멈추지 않았다” 뒤뜰 작은 골대에 공을 넣고 싶었던 지루의 마음은 우승 트로피를 향한 열정으로 변했다.

최근 지루는 크리스탈팰리스와의 경기에서 ‘전갈킥’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역시 왼발이었다. “헨리크 미키타리안의 전갈킥보다 나의 전갈킥이 더 멋지지 않았나?”라고 너스레를 떤 지루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고, 지켜보는 이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특별한 골이었다. 평생 기억될 최고의 골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고 했다. 하지만 지루는 찬사를 거부했다. “아무리 멋진 골을 넣어도 한 골에 불과하다. 멋지다고 10골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펼쳐질 경기에서 지속적으로 집중력을 유지하고 골망을 흔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처음 축구화를 신었던 순간의 마음처럼, 내일도 새로운 골을 넣기 위해 뛸 것이다” 올 시즌 조금 늦게 발동이 걸린 지루는 축구를 통해 배운 가장 큰 교훈을 ‘인내심’으로 꼽았다. “시련이 닥치더라도, 축구를 향해 가졌던 열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 매일 축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그라운드를 뛰는 이유다” 지루는 주말 다시 펼쳐질 열정의 무대를 향해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맸다.

사진=풋볼리스트

 

풋볼리스트 주요 기사

[단독] 김주영, 상하이상강서 허베이로 이적
EPL+라리가+K리그+글로벌 브랜드 마케팅, 오프라인 강의
[人사이드] ‘광주의 기적’ 남기일 리더십의 비밀
벤틀리공장서 '해고' 당한 7부리그 선수, 아스널 입단
'음악에 취한' 맨유, 음원 플랫폼 파트너십까지 '확대'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