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축구 종가 잉글랜드의 FA컵은 승부가 날 때까지 계속 재경기를 벌이곤 했다. 재경기를 벌일 시간이 없는 국제 대회에서는 한때 동전 던지기로 승자를 정했다. 월드컵에 승부차기가 도입된 건 1978년의 일이다. 이후 2014년 대회까지 승부차기가 벌어진 경기는 단 26차례였다.

‘2018 러시아월드컵’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승부차기의 비중이 높다. 아직 4강전, 3위 결정전, 결승전이 열리지 않은 가운데 이미 4차례 승부차기가 진행됐다.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이다. 한 번만 더 승부차기가 열리면 최다 기록이 된다.

중요한 드라마도 승부차기를 통해 벌어졌다. 잉글랜드는 월드컵 본선에서 한 번도 승부차기로 승리한 적 없는 팀이라는 점이 가장 큰 약점이었다. 이번 대회 16강에서 콜롬비아를 승부차기로 꺾으며 통산 승부차기 전적을 1승 3패로 만들었다.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감독은 승부차기 징크스를 떨쳐내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하고 본선에 왔다. 역대 승부차기 사례 분석과 각 선수들의 심리 검사를 통해 1번부터 모든 키커의 순번을 미리 정해뒀다. 승부차기에 맞지 않는 성격인 선수를 뒤쪽으로 미뤄뒀다. 잉글랜드가 탈락하지 않은 건 철저한 준비에 따른 결과였다.

잉글랜드 언론은 승부차기 승리가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16강 직후 호들갑을 떨었다. 이번 대회에서 수비력은 준수한 반면 공격력이 부족한 잉글랜드는 앞으로도 승부차기 승부를 벌일 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크로아티아는 16강에서 덴마크, 8강에서 러시아를 모두 승부차기 끝에 꺾었다. 한 대회에서 두 번 승부차기를 벌인 팀은 ‘1990 이탈리아월드컵’의 아르헨티나에 이어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역사상 두 번째다.

다니엘 수바시치 크로아티아 골키퍼는 이번 대회 ‘신 스틸러’로 떠올랐다. 수바시치가 월드컵을 대표하는 스타가 될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강팀 AS모나코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중이긴 하지만 다른 빅 클럽을 거친 적 없는 대기만성형, 실속형 골키퍼였다. 수바시치는 승부차기에서 신들린 ‘춤’으로 키커를 방해하는 기술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두 차례 승부차기에서 총 4회 선방을 해냈다. 1990년 아르헨티나의 세르히오 고이코체아와 같은 기록이다.

전력이 완성된 팀은 4강 진출팀 중 하나도 없다. 프랑스는 너무 많은 천재들을 하나로 묶느라 대회를 치르며 서서히 퍼즐을 맞춰가는 중이다. 벨기에는 고질적인 수비 불안을 안고 있다. 잉글랜드는 공격시 창의성 부족이 우려되고 크로아티아는 최전방 공격수의 득점력이 아쉽다. 어느 팀도 90분 안에 승리해 우승할 거라고 장담하기 힘들다.

주목받는 경기일수록 승부차기에 강렬한 감정이 휘몰아치기 마련이다. 역대 월드컵 승부차기는 ‘1994 미국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승부, ‘2006 독일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승부 등 두 차례였다. 둘 다 경기력 측면에서 명승부는 아닌 대신 월드컵 역사에 오래 기억될 ‘사건’으로 남았다. 이번 대회의 가장 극적인 드라마 역시 승부차기와 함께 전개되고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관련기사

저작권자 © 풋볼리스트(FOOTBALLIS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