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세리에A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하며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 축구의 리그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세리에A와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경기와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 주>

약팀에서 퇴장 선수까지 나오면 이길 가능성은 극도로 희박해진다. 엘라스베로나의 고질병이다.

베로나는 21일 크로토네와 가진 세리에A 21라운드에서 0-3으로 패배했다. 이 패배로 베로나는 19위에 머물렀고, 크로토네가 17위로 올라가며 강등권을 탈출했다. 두 팀의 승점 차는 2점에서 5점으로 벌어졌다. 같은 하위권팀 상대 경기였기에 베로나의 패배가 더 치명적이다.

베로나는 홈에서 공격적인 선수 조합을 들고 나왔다. 겨울 이적 시장에 수급한 브루노 페트코비치, 리데르 마토스가 모두 첫 경기를 치렀다. 공격자원의 숫자를 늘리고 포진을 4-2-3-1로 바꿨다. 베로나가 공격 위주로 경기를 했지만 크로토네가 프리킥과 역습 속공으로 먼저 앞서나갔다.

승부를 돌이킬 수 없게 된 건 후반 16분 브루노 수쿨리니의 퇴장 때문이었다. 수쿨리니는 슬라이딩 로우킥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다리를 높게 들고 상대 선수의 무릎을 가격했다. 경고 없이 바로 레드카드를 받았다.

베로나는 이 퇴장으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6점 경기’였기 때문에 패배 자체의 타격이 컸다. 다양한 공격 조합을 시험하며 기존 선수와 영입생의 조합을 만들어야 하는데 첫 경기부터 정상적인 실험을 할 수 없게 됐다. 이승우의 출장 기회도 없어졌다.

수쿨리니의 시즌 세 번째 퇴장이다. 이번 시즌 두 번 퇴장 당한 선수도 없는 가운데, 수쿨리니는 독보적인 징계 기록을 갖고 있다. 선발 출장한 15경기 중 세 번 퇴장당하며 5경기당 한 번 꼴의 기록을 세웠다. 이 징계 비율을 유지한 채 붙박이 주전으로 뛴다면 시즌 6회 퇴장을 당할 정도로 심각한 기록이다. 세리에A 역사상 최다 퇴장 기록은 지난 시즌 가브리엘 팔레타(AC밀란)가 기록한 5회였다.

수쿨리니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팀 전술의 문제다. 수쿨리니는 2010년 17세 나이로 데뷔해 벌써 아홉 번째 프로 시즌을 소화하는 선수다. 지난 시즌까지 100번 넘는 프로 경기에서 퇴장이 단 한 번에 불과했다. 경고를 많이 받을 때도 있었지만 4경기 1장 꼴이었다. 이번 시즌처럼 2경기 1장 수준으로 경고를 쌓아간 적은 없었다.

베로나 미드필드가 전체적으로 위치선정에 서툴다보니 더 거친 경기를 하는 경향이 보인다. 베로나는 후방에서 좋은 자리를 잡고 동료 미드필더들의 수비를 도와줄 만한 지능적인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지능적인 미드필더를 전방에 기용하지, 후방에 쓰지 않는 것이 페키아 감독의 성향이다.

파비오 페키아 감독은 지능적인 미드필더보다 전투적이고 공을 잘 따오는 미드필더 위주로 팀을 구성해 왔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는 한 명도 영입하지 않았고, 오히려 공격수와 윙어를 잔뜩 사들였다. 그리고 크로토네 전에서 4-2-3-1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베로나는 믿을만한 윙어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 시즌 중반부터 전문 윙어가 없는 4-4-2 포메이션을 써 왔다. 4-3-3이나 4-2-3-1 등 윙어가 있는 포메이션을 쓸 때보다 오히려 경기력이 나아졌다는 평가를 들었다. 그러나 페키아 감독은 자신의 플랜 A로 돌아가겠다는 결정 아래 미드필더보다 공격수, 윙어들을 먼저 보강했다.

4-2-3-1이 팀에 잘 정착한다면 이승우에겐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승우는 베로나 안에서 미드필더나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윙어로 분류돼 있다. 4-4-2에서는 이승우의 자리가 없었다. 반면 4-2-3-1에서는 2선의 세 자리 중 어디든 맡을 수 있다.

그러나 베로나 팀 전술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쿨리니, 마르셀 뷔헬 등 경기 운영을 할 줄 모르는 미드필더들만으로는 세리에A의 눈치 빠른 플레이메이커들과 경쟁할 수 없다. 크로토네에 많은 실점을 한 근본 원인도 미드필드에서 상대 패스를 가로채지 못했고, 수비에 성공한 뒤에도 자주 패스미스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상대팀이었던 크로토네 역시 노련한 수비형 미드필더는 없지만, 유벤투스에서 임대해 온 유망주 롤란도 만드라고라를 수비진 앞에 배치해 경기 운영을 맡겼다. 두 팀의 접근법은 대조적이었다. 그중 전술에서 지고 손해를 본 쪽은 베로나였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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