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아이티/ FIFA 월드컵 공식 엑스 캡쳐
5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아이티/ FIFA 월드컵 공식 엑스 캡쳐

 

[풋볼리스트] 한준 기자= 아이티 축구대표팀이 니카라과를 2-0으로 꺾고 1974년 이후 50년 만에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놀라운 점은 이 역사적 성과를 이끈 세바스티앙 미뉴 감독이 취임 후 18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아이티 땅을 밟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감독은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아이티는 월드컵에 간다”는 제목으로 이 극적인 상황을 상세히 소개했다.

■ “너무 위험해서 갈 수 없다”  감독이 현지를 방문하지 못하는 국가대표팀

52세 프랑스 출신 지도자인 미뉴 감독은 아이티의 치안 상황 악화로 인해 부임 이후 단 한 번도 현지에 입국하지 못했다.

그는 BBC를 통해 “아이티에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일하는 나라에 직접 거주하는 스타일이지만, 아이티는 예외다. 국제선 항공편도 더 이상 착륙하지 않는다.”

2010년 지진 이후 아이티는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혼란을 겪고 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대부분을 무장 갱단이 장악했으며, 130만 명이 집을 잃었고 기아 수준의 식량난이 지속 중이다.

영국·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은 납치, 무장 범죄, 테러 위험을 이유로 여행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이티 대표팀은 500마일 떨어진 퀴라소에서 모든 홈경기를 치른다. 미뉴 감독의 팀 운영도 대부분 원격으로 이루어졌다. 그는 아이티축구협회 관계자들과 전화로 선수들을 확인했고, 대표팀 훈련과 명단 구성을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2026 FIFA 월드컵 본선 확정 국가 현황/ FIFA 월드컵 공식 엑스 캡쳐
2026 FIFA 월드컵 본선 확정 국가 현황/ FIFA 월드컵 공식 엑스 캡쳐

 

■ ‘전원 해외파’로 변모한 대표팀… 영국·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이 핵심

BBC는 “아이티 대표팀이 국가 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원 해외파 구성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주요 선수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울버햄프턴의 미드필더 장-릭네 벨가르드, 프랑스 출생이지만 부모가 모두 아이티 출신인 공격수 윌슨 이지도르(선덜랜드)가 있다.

아이티는 과거와 달리 해외에서 성장한 1.5세대·2세대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유럽 수준의 경기력을 확보하고 있다.

■ 50년 만의 본선행…“국가의 혼란 속에서도 축구는 희망이 됐다”

니카라과전 승리로 아이티는 오는 2026년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열리는 월드컵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이는 1974 독일 월드컵 이후 두 번째다.

1974년 당시 아이티는 이탈리아, 폴란드, 아르헨티나에 차례로 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BBC는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감독은 나라에 발도 들이지 못했지만, 해외파 세대가 월드컵 무대를 향한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월드컵 북중미 지역 예선에서는 아이티와 함께 파나마(엘살바도르에 3-0 승), 사상 첫 월드컵 진출국 퀴라소(자메이카와 무승부), 등이 본선행을 확정했다.

BBC는 기사 말미에서 “아이티의 정치적·사회적 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대표팀의 월드컵 진출은 국민들에게 매우 드문 희망의 순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전했다.

현지 방문조차 불가능한 감독, 나라 밖에서만 뛰는 선수들, 그리고 폭력과 기근으로 흔들리는 국가.
그 속에서도 아이티는 50년 만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오른다. 절망 속에서도 축구는 한 번 더, 강력한 생명력을 드러냈다.

사진=FIFA 월드컵 공식 엑스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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