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문슬기 기자= 지소연(25, 첼시레이디스)은 ‘런더너(Londoner)’ 3년차다. 3년이란 시간 동안 리그와 FA컵에서 각각 1회씩 우승을 경험했고,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본선도 두 차례나 밟았다. 개인적으로는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와 잉글랜드축구협회에서 각각 선정하는 올해의 여자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소연이 축구로 보인 성취와 내용은 잘 알려져 있지만, 축구 이외의 생활은 공개되지 않은 게 많다. 지소연은 일본 고베에 이어 영국 런던에서도 이방인으로 살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뛸 때는 유명 축구선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모든 게 낯설 수밖에 없다. '풋볼리스트'는 올해 일정을 모두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소연에게 일상과 축구를 모두 물었다. 

무대 뒤 이야기를 들으니 지소연이 이룬 성과가 더 값지게 보였다. 런던에 도착한 첫 날 펑펑 울었던 지소연은 모든 걸 딛고 축구선수로 우뚝 섰다. 알아듣기 어려운 영국 영어(소위 본토 발음) 부분에서는 은근한 동지 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지소연은 얼마 전 출연했던 '복면가왕' 이야기까지 털어놨다. 

'풋볼리스트'는 지소연 인터뷰를 지소연 목소리만 남겨 편집했다. 독자들이 인간 지소연을 조금 더 진솔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런더너 3년차, 현실은 집순이

벌써 3년이란 시간이 흘렀더라고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어요. 2014년 1월, 처음 런던에 왔을 땐 정말 무서웠어요. 날씨는 우중충했고, 친구는 없고, 말은 안 통하고. 익숙했던 모든 것에서 떨어지니 외로운 느낌까지 들더라고요. 런던에 온 첫날은 많이 울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더라고요. 3개월, 6개월, 1년. 차츰 런던에, 첼시에 적응하니까 이젠 여기가 또 다른 고향이 됐어요. 개인적으로 인복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국에서 주변 분들을 잘 만났어요. 엄마같이 챙겨주시는 매니저 언니도 있고, 이곳에서 알게 된 한인 식구들도 생겼죠. 덕분에 지금은 외롭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3년 동안 살면서 런던이 멋있는 도시라고 느끼고 있어요. 바쁜 듯 한적한 느낌이랄까?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런더너’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런던을 몰라요. 제가 ‘집순이’거든요. 3년간 생활 패턴이 거의 비슷했어요. 훈련 마치면 매니저 언니네 집으로 가서 밥 먹고, 언니의 아가랑 놀고, 영어 과외하고, TV 좀 보다가 저녁 되면 자는 식이죠. 그렇다고 매니저 언니 가족이랑 함께 사는 건 아니에요. 현재 구단에서 마련해 준 집에서 영국 친구 2명과 포르투갈 친구 1명과 같이 살아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훈련 마치면 늦은 저녁까지 낮잠을 자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집에서는 대화를 많이 못하고, 훈련장 오갈 때나 훈련 중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개인적인 시간엔 각자 생활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제가 워낙 집에만 있는 걸 좋아하니까 매니저 언니가 “소연아, 우리 오늘은 나가지 않을래?”라고 묻는데, 쉽게 움직이진 않죠. 영국 와서 유럽 여행 한 건 스페인과 파리가 전부였어요. 각각 엄마와 (김)미경 언니랑 했어요. 아, 미경 언니는 2010년부터 저를 아껴주시는 1호 팬이에요. 이제는 팬이 아니라 가족 같은 존재죠. 이렇게 말하고 보니 3년 동안 한 게 정말 없네요.    

#사오정 지소연, 영국식 발음 어려워요

아무래도 3년이나 있었으니까 꽤 늘긴 했죠. 일본어처럼 유창한 정도는 아니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문제없어요. 하지만 못 알아듣는 경우도 진짜 많아요. 영국식 발음은 너무 낯설더라고요. 미국식 영어가 익숙해서 영국식 영어는 같은 영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게 느껴져요.

오히려 엠마 하예스 감독님 말씀은 이해하기 쉬워요. 다른 국적을 가진 선수들을 고려해서 또박또박 말씀해주세요. 가끔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못 알아듣는 경우엔 몇몇 단어로, 대충 느낌으로 이해한 척하죠. 영국인 친구들도 외국인인 저를 고려해 빨리 말했다가도 눈치껏 다시 차분히 설명하곤 해요. 영어 공부는 지금도 계속 하고 있어요.

#여자 축구 발전? 괜히 영국이 아니더라

요즘 이적과 관련한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시기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나올 만하죠. 다른 국가를 아예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에요. 여자 축구 강국이라는 미국도 고려해 봤고요.

그런데 아직은 유럽 무대에 욕심이 있어요. UCL도 더 경험하고 싶고, 발롱도르도 노려보고 싶고요. 무엇보다 영국 여자 축구 발전 모습을 보면서 더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제가 아이낙고베를 떠나 첼시레이디스로 온 직후 걱정이 많았거든요. 일본 여자 축구는 이미 잘 정착돼 있는 환경이었는데, 영국 여자 축구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황량한 개척지 같은 느낌이었달까. 내가 여기 온 게 잘 한 선택인지 걱정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아요. 영국 축구가 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지 몸소 느끼고 있거든요.

확실히 남자 축구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의 기반이 워낙 튼튼하게 잘 돼 있으니까 여자 축구도 보고 배울 게 많은 거죠. 이곳 리그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투자하더라고요. 뚜렷한 리그 발전 목표로 선수들의 소속감을 끌어올리고 성취감과 자부심까지 심어줘요. 매년 영국 여자 축구가 발전하고 있는 걸 실제 체감하고 있으니까 신기하면서 괜히 부럽기도 하고.

당장 선수층만 해도 변화가 컸어요. 2014년엔 첼시레이디스 소속 선수가 저를 포함해 18명 안팎이었거든요. 3년이 지난 지금은 22명까지 늘었고 현재는 독일과 프랑스 선수 영입까지 확정된 상태예요. 내년엔 더 좋은 선수단을 기대할 수 있는 거죠. 여기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혹시 현지 기사를 통해 얼굴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첼시 남자팀 선수들이 계약하면 구단 관계자로 함께 사진 찍는 마이클 에메날로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분이 첼시 테크니컬 디렉터이자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의 비서 같은 사람인데요, 올해 유독 여자 팀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그런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첼시레이디스가 UCL 본선에서 볼프스부르크에 패하자 잔뜩 화가 난 거예요. 지난 10월에 치른 32강 1차전에서 우리 팀이 볼프스부르크에 0-3으로 완패하자, 이분이 “첼시는 볼프스부르크 같은 팀에 이렇게 무기력하게 져서는 안 된다. 얼마를 들이더라도 좋은 선수들을 영입해 내년엔 최고의 팀이 될 수 있도록 해라”라고 지시했더라고요. 첼시라는 팀에 대한 그 분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말하는 대로 실천할 수 있는 자금력에 놀랐죠.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그때 볼프스부르크에 완패한 덕에 오히려 팀 사정은 더 좋아졌어요.

#특기는 축구, 취미는 배구 관전과 음악

제 삶에서 축구를 빼놓을 순 없지만, 운동하지 않을 때는 다른 분야의 취미를 가지려고 해요. 어렸을 때부터 배구를 좋아했거든요. 부모님이랑 배구장도 다니고 그랬는데, 2006년 12월에 열린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배구 선수들과 인연이 닿을 일이 있었어요. 여자 축구 선수들과 여자 배구 선수들 숙소동이 붙어있었어요. 제가 배구를 좋아해서 선수들을 잘 알고 있었는데, 눈앞에 황연주(30, 현대건설) 언니가 보이는 거예요. 바로 달려가서 팬이라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 했어요. 이후 꾸준히 관심을 가지니까 한송이(32, GS칼텍스) 언니, (표)승주(24, GS칼텍스) 등 다른 배구 선수들과도 많이 친해졌어요. 한국에 들어오면 배구는 한창 시즌 중이니까 꼭 경기장을 찾아요. 이번에 한국 들어와서도 다녀왔고요.

영국에선 배구를 볼 수 없으니 다른 취미를 가지려고 하는데요. 제가 노래 듣거나 부르는 걸 좋아하거든요. 노래 실력은 꽝이지만 즐기는 건 자신 있어요. 사실 제가 기타를 배워보고 싶어서 3년 전에 구입을 했거든요. 그런데 그대로 녹슬어 가는 중이예요. 원래 축구 시작하기 전에 피아노를 배워서 악기에 대한 미련 같은 게 남더라고요. 그래서 기타를 쳐볼까 싶었는데, 뭐든 시작이 중요하잖아요.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아직까지 쳐보질 못했네요. 그냥 악기 욕심은 접고 노래나 불러야 할까 봐요.  

#신비주의 아기천사, 아직도 누군지 몰라요

얼마 전에 MBC 프로그램인 복면가왕에 출연했거든요. 오와, 이거 출연한다고 하고 얼마나 후회했는지 몰라요. 출연 제의는 11월 영국에 있을 때 들었어요. 소속 에이전트를 통해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 처음엔 안 나가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잖아요. 제가 전문적으로 노래를 불러본 애도 아니고, 평소 친구들이랑 노래방 가서 까불며 노는 게 전부인 평범한 사람인데 복면가왕 출연을 생각이나 해봤겠어요. 그런데 문득 이런 인기 프로그램에 나가면 나를 알릴 수 있는 기회도 되고, 특히 여자 축구를 알릴 수 있겠구나 싶어 깊고 짧은 고민 끝에 출연하기로 결심했죠. 촬영을 12월 13일에 했는데, 출연 승낙하고 촬영하는 날까지 한 달이 정말 지옥 같았어요. 나름 연습 좀 해보겠다고 한국 들어와서 엄마랑, 친구랑 코인 노래방도 다녀보고 했는데 그런다고 실력이 갑자기 느는 것도 아니고.

그나저나 복면가왕 정말 철두철미하더라고요. 첫 곡은 파트너와 함께 부르게 돼 있어서 촬영 전에 합주하는 시간이 있거든요. 그때 어떤 연습실에 가서 제 파트너였던 ‘신비주의 아기천사’와 노래를 맞춰 볼 기회가 있었는데, 연습이니까 편하게 서로 얼굴 보면서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때마저도 가면을 착용하고 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도 제 파트너가 누군지 몰라요. 네티즌 반응을 보니 울랄라세션의 김명훈 씨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제가 이분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거든요. 아기천사는 노래를 많이 잘 하시는 분이라서 합주할 때 저한테 많이 맞춰주셨어요. 여유가 있으시더라고요. 저는 하루종일 떨었던 기억밖에 없어서... 그래도 나름 얻은 게 있어요. 이번 출연을 통해 제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면을 벗는데 확실히 방청객 분들이 아직 많이 못 알아보시더라고요. 아직 제가 그만큼 유명한 선수가 아니니까 당연한 반응이었어요. 나중에 혹시라도 또 비슷한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모두가 다 알아보실 수 있는 선수가 돼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다고 다시 노래하는 프로그램에 나가겠다는 건 아닙니다. 두 번 했다가는 저 정말 큰일나요.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지소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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