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이탈리아 축구는 13년 만에 한국 선수가 진출한 뒤 다시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수비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많은 골이 터지고, 치열한 전술 대결은 여전하다. 이탈리아의 칼초(Calcio)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김정용 기자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유벤투스뿐 아니라 국내에 잘 소개되지 않는 2019/2020시즌의 경기와 이슈를 전한다. <편집자 주>

아탈란타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축구팬에게 다소 생소한 팀이다. 빅리그인 이탈리아세리에A 구단이긴 하지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에 처음 참가했을 정도로 강팀과는 거리가 멀었고, 심지어 강등도 자주 당했다. 아탈란타는 UCL 16강에서 이강인의 소속팀 발렌시아를 만나게 되면서 내년 2월 20일(이하 한국시간)과 3월 11일 두 차례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을 받게 된다.

아탈란타는 이번 시즌 UCL에서 초반 3연패를 당하면서 유럽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4차전에서 무승부를 거두며 사상 첫 승점을 따낸 뒤 5, 6차전 연승으로 기적적인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기세를 탄 아탈란타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특징 1 : 돈이 없고 경기장도 작다

아탈란타의 첫 번째 특징은 중소 규모 구단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UCL에 못 나올 만했다. 선수단 전체 총 연봉이 2,898만 유로(약 376억 원)로 세리에A 팀 중에서 13위에 불과하다. 선두 유벤투스에 비하면 약 9분의 1 수준이다. 발렌시아의 6,497만 유로(약 842억 원)와 비교해도 절반에 못 미친다. 발렌시아 고액급여 5명의 연봉이 아탈란타 선수단 전체보다 많을 정도다. 축구팀의 성적은 총연봉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사이먼 쿠퍼, 스테판 지민스키)를 감안한다면 아탈란타의 최근 성적은 매우 뛰어난 경영 능력의 산물이다.

아탈란타는 강등도 자주 당했다. 1980년 이후에만 강등을 6번(1987, 1994, 1998, 2003, 2005, 2010)이나 당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유럽대항전에 강한 전통이 있다. 세리에B(2부)에 속해 있던 1987/1988시즌 UEFA 컵위너스컵 4강까지 갔는데, 유럽대항전 역사상 하부리그 팀의 최고 성적이다.

아탈란타는 경기장도 작다. 밀라노 근처의 소도시 베르가모를 연고지로 하는데, 홈구장인 게비스 스타디움이 UEFA의 개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기존 유로파리그 때는 사수올로의 홈 구장을 빌려 써야 했다. 이번 시즌에는 밀라노의 유서 깊은 산 시로를 빌려쓰고 있다. 재미있는 건 이번 시즌 AC밀란은 유럽대항전 참가 금지 징계를 받았고, 인테르밀란은 UCL 16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산 시로에서 UCL이 열리긴 하지만 그 주인공은 뜬금없는 위성 도시 구단인 셈이다. 심지어 아탈란타와 인테르 유니폼 색도 네라추리(파랑과 검정 줄무늬)로 비슷하다.

 

특징 2 : 이 팀에만 가면 기량 2배, 잠재력 끌어내는 공격축구의 팀

소규모 구단 아탈란타가 성장할 수 있었던 첫 번째 발판은 유소년 육성이다. 무려 1950년대부터 육성이 살 길이라는 걸 깨닫고 유망주 수집 및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카사 델 조바네’라는 유소년 학교를 만들어놓고, 유망주들에게 축구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공부와 인성교육까지 하는 체계를 갖췄다. 바르셀로나의 ‘라 마시아’와 가장 비슷한 이탈리아의 선수 양성 기관이다. 가에타노 시레아, 로베르토 도나도니, 필리포 인차기, 크리스티안 비에리 등 전설적인 선수들을 배출했다.

그러나 3년 전부터 아탈란타의 상승세에 일조했던 유소년 출신들은 지금 다른 팀으로 다 팔려나갔다. 아탈란타는 사 온 선수 위주로 1군을 꾸렸는데, 이들을 헐값에 데려와 기대 이상의 경기력으로 이끌어준 건 잔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의 지도력이었다.

이탈리아 중위권 팀에서 맹활약하지만 인테르 등 빅 클럽에서 고배를 마셨던 가스페리니 감독은 아탈란타 지휘봉을 잡은 뒤 명실상부한 명장으로 거듭났다. 3-4-3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전술을 간소화하고, 선수들의 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합을 맞췄다. 김종부 경남FC 감독이 K리그1 2위 돌풍을 일으킬 때의 축구와 비슷하다. 점유율에 연연하지 않고 수비 조직력도 느슨한 구식 축구처럼 보이지만, 현대축구 한 가운데서 성적을 내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섬세한 공격 전술보다 마구 우겨넣는 공격에 강한 공격수 두반 사파타에게는 우겨넣으면 되는 상황을 자주 제공한다. 속공을 통해 주장이자 에이스인 알레얀드로 고메스에게 공을 전달한 뒤 빠르게 상대 문전으로 투입하는 것이다. 미드필더 마리오 파살리치는 공수 양면에서 애매한 선수지만, 가스페리니 감독은 189cm에 달하는 장신에 주목해 ‘헤딩 머신’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유연성도 있다. 사파타 중심 공격이 한계를 보일 경우에는 좀 더 다재다능한 루이스 무리엘이 투입돼 공격 방식을 바꾼다. 센터백들의 오버래핑을 허락하는 유연성도 있다. 세트피스 전술이 매우 다양해 매 시즌 1명 이상의 센터백이 5골 이상을 득점한 뒤 높은 몸값에 팔려나가기도 한다.

 

특징 3 : 현대축구에서 ‘10번’이 살아남는 법 보여주는 고메스

현대축구는 플레이메이커 한 명에게 모든 공격이 쏠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10여 년 전까지 최고 선수였던 후안로만 리켈메가 지금 돌아온다면 도태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고메스는 팀 공격의 모든 줄기를 혼자 힘으로 뚫어주는 선수다.

고메스는 지난 시즌 세리에A 도움 1위(11), 경기당 키패스 1위(3.2), 크로스 성공 1위(2.9), 스루패스 성공 4위(0.2), 드리블 성공 6위(2.2), 반칙 유도 4위(2.7)를 기록했다. 공격 기회 창출과 관계 있는 모든 수치에서 최상위권이다.

그만큼 아탈란타 공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아탈란타가 고메스에게 자유를 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일단 고메스가 중앙에 머무르지 않고 측면이나 하프 스페이스(좌중간, 우중간 지역)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상대 견제가 없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속공 위주로 빠르게 고메스에게 공을 전달해 상대 견제가 붙지 못하게 한다. 고메스는 드리블로 공을 전진시킨 뒤 스루 패스, 크로스, 중거리 슛 중 가장 확률 높은 방식을 택해 공격한다. 상대 수비가 접근하면 파울을 유도한다. 키가 167cm에 불과한 드리블러 고메스는 상대 수비가 접근할 때 몸싸움을 하며 키핑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고, 드리블로 일찌감치 빠져나가는 쪽을 택하곤 한다.

전통적인 플레이메이커는 현대축구에서 대부분 팀 플레이에 적응하며 살아남았다. 수비 가담을 열심히 하는 다비드 실바, 이스코가 대표적이다. 반면 고메스처럼 전술적 지원을 받으며 여전히 ‘1인 플레이메이커’로서 활약하는 경우도 있다. 고메스는 현대 축구에서 외로운 플레이메이커가 어떻게 살아남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 중 하나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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