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파주] 김정용 기자= 정정용 U18 대표팀 감독은 뜻밖의 길을 걸었다. 지난여름 U20 월드컵 준우승을 통해 한국 남자축구 사상 최고 성적을 낸 뒤, 정 감독은 더 화려한 팀으로 갈 사람처럼 보였다. 프로 감독이나 U23 대표팀 등이 일반적인 ‘코스’다. 그런데 정 감독은 2년 뒤 U20 월드컵을 또 준비하기 위해 U18팀으로 돌아갔다.

올해 낸 성과를 2년 뒤에 재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정 감독에게 ‘커리어의 퇴보’가 될 것이 뻔한 길을 왜 가냐고 재차 물었다. 애제자 이강인, 이재익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지막에 이야기했다.

정 감독은 U18 대표팀에서 첫 본격적인 일정이었던 ‘2019 GSB 방콕컵’에서 지난 12일 우승했다. 우즈베키스탄과 베트남을 모두 꺾었다. U18 대표팀은 10월 말 다시 소집해 11월 미얀마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예선을 치른다. 궁극적인 목표는 ‘2021 U20 월드컵’이다.

 

- U18부터 U20으로 이어지는 길을 다시 가는 이유

“보통 사람이라면 안 하지. 집사람도 하지 말라고 했다. 2년 동안 U20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경험과 철학이 생겼다. 그런데 다른 지도자가 오면 자기 철학을 처음부터 다시 입힐 것이다. 기왕이면 내가 성공한 경험을 우리 대표팀이 연계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었다. 내가 올림픽대표팀이나 프로팀을 노리면서 U20을 떠나버리면 성공한 경험이 없어질 까봐. 지금 한국 축구의 색깔이 없지 않나. 굳이 말하자면 투혼인데 그걸 축구 스타일이라고 할 순 없다.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한국 축구 색깔을 세우려는 의지를 지녔고, 나도 동의하는 바가 있다.”

- 유소년 축구의 철학이 확고한 나라, 일본의 예

“일본은 한일 교류전을 하러 한국으로 건너올 때 전국의 유망주들이 공항에서 소집된다. 발 한 번 맞추지 않았는데도 일본 축구 스타일이 있으니 4-4-2 포메이션에 따라 비슷한 축구를 해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감독마다 색깔이 다르니 고작 사나흘 조직력을 끌어올린 뒤 맞붙게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연령별 대표팀 경기에서 일본에 자꾸 진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모든 대표팀이 매번 같은 전술을 쓰자는 건 아니다. 감독마다 전술이 다르고, 대회 상황마다 필요한 전술도 다르니까. 하지만 유소년 단계에서 철학은 일관적이어야 하고, 훈련 프로그램에 꼭 필요한 요소도 모든 유소년 팀이 공유해야 한다. 능동적인 축구를 하겠다는 철학을 선수들에게 심어주고, 그 철학에 맞게 선수들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 두면 포메이션이 바뀌더라도 일관적으로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다.”

- 바로 지금, 유소년 축구 발전에 내가 필요한 이유

“한 번 성적을 내는 건 언젠가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박종환 감독님(1983 U20월드컵 4강)과 나처럼. 그런데 성적을 낸 뒤, 그 사람이 남아있는 게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U18 팀에서는 내 말이 법이다(웃음). U18 대표팀 선수들은 내가 말하는 전술이 다 맞는 줄 안다. 내 말만 잘 들으면 강인이, 재익이 형처럼 A대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에 권위가 생겼다. 또 지도자들끼리 이야기할 때도 내 말이 잘 먹힐 텐데, 내 노하우를 전해주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유소년 세계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했을 때 경기 외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전체 과정을 경험한 지도자는 드물다. 지도자마다 자기 색깔이 있으니 다르게 할 수 있지만 일단 자료는 남겨둬야 한다. (고) 이광종 감독 시절 대회에서 어떻게 했는지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더라. 우리가 기록에 약한 민족이고, 축구가 원래 데이터가 약한 종목이다. 축구는 기념사진 하나 남는다. 축구협회에 걸어놓는 그 사진 말이다. 그런데 아직 우리 팀 사진은 안 걸어놓았더라. (웃음)”

- 아직 정리되지 않은 ‘세계 2위’ 노하우, 살짝 공개한다면

“폴란드 U20 월드컵에서 돌아온 뒤, 리더십 특강을 해 달라고 여러 단체에서 많은 요청이 왔다.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경험담뿐이지 그걸 이론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언어가 없더라. 그때 한 번 더 정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 노하우를 한 마디 원리로 정리하면 뭔지 고민을 해야 한다.

대충 4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수평적 리더십, 이해시켜야 할 정보는 심플하게, 코칭할 때 어떻게 보여주는지, 등등. 축구인이 아닌 분들에게 이런 강의를 한두 번 해 봤는데, 내용이 그럭저럭 전달되는 것 같았다. 언어를 더 다듬으면 된다. 그 철학을 문구로 정리하는 건 전임지도자들의 일인데, 나는 이제 전임이 아니라 U18 대표팀 전담 감독이지만 전임들을 도와야 한다.”

- 수평적 리더십으로도 선수들을 휘어잡는 비결

“예를 들면, U20 월드컵에서 선수들이 자율적으로 핸드폰을 사용한 게 화제였다. 그런데 선수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주려면 단계별 접근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18세를 만났을 때다. 이때 이해를 시켜야 한다. 너희들은 아직 청소년이고, 저녁에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걷는 거라고. 그리고 19세가 되면 선수들이 불편하니까 찾아온다. 주로 (조)영욱이 같은 친구들이 온다. ‘선생님 우리도 이제 대학생인데’ 어쩌고 한다. 그때 마음대로 하라고 한 경기 정도 저녁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해 본다. 그런데 룸메이트가 휴대전화를 새벽까지 쓰면 옆에 있는 선수가 불편해진다. 휴대전화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스스로 알게 한다. 세 번째 단계는 전문가 초빙이다. 왜 휴대전화 사용이 이튿날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이론적으로 설명해준다. 이 과정을 통해 반발을 최소화하고, 선수들이 책임감을 갖고 휴대전화 사용을 자제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이 단계를 다 거쳐도 안 되는 선수는 안 되는데, 그런 선수들은 대표팀에 못 오더라.”

- 결승 진출한 U20보다 U18의 실력이 더 뛰어나다?

“현장 다녀보면 느낌이 올 때가 있다. ‘이 세대는 골키퍼 풍년이네?’ ‘이 세대는 골키퍼가 유독 없네?’ 등등. 그런데 2년 전 18세로 만났던 U20 친구들보다, 현 U18 친구들의 전체적인 개인 능력은 향상돼 있다. 하루아침에 바뀐 게 아니라 골든에이지 프로그램을 거쳤기 때문이다. 축구협회의 유소년 지도 방식이 개선되면 그게 쌓이면서 선수들의 실력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걸 확인했다.

골든에이지 프로그램 자체는 선수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그게 한국의 코칭 문화를 잡아나가는 파생효과를 낸다. 아직 프로에도 도입되지 않은 수비훈련, 스텝훈련 등을 골든에이지에는 이미 도입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효과를 내는 거다. 내가 산증인 아닌가. 연령별 대표팀, 유소년 교육에 오래 있었으니까. 갈수록 달라지는 건 분명하다.

지금 U18 선수들의 성향이 U20 선수들과 다르다. 겨우 두 살 차이인데 세대차이가 느껴진다. 얘들만의 문화가 있다. 그 문화를 인정해주는 부분, 규율을 통해 묶어보는 부분이 모두 필요하다.”

- 능동적이고, 의사결정을 잘 하는 선수를 길러내는 방법

“선수를 리모콘으로 통제하듯 지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안 하면 된다. 축구에서 공을 안 빼앗기려면 상대를 이용해야 한다. (이)강인이가 잘 하는 것처럼. 그런데 리모컨 코칭을 안 하면, 선수들이 경험을 쌓다가 어느 순간 상대 수비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노하우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실력이 쌓인다.

메시가 아르헨티나 유소년 팀에 있을 때 그다지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냥 공 던져주고 5대5 미니게임 시킨 거지. 거기서 수비를 이기려고 매 순간 스스로 노력하면서 노하우가 생긴 거다. 메시 인터뷰에도 있다. 어떻게 드리블을 잘 하게 됐냐는 질문을 받으니까 ‘나도 모르겠다’고 하더라. 그게 정답이다.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거지. 아시아에서는 동남아 선수들이 유독 좋은 개인기를 지니고 있는데 그들도 자연스럽게 익힌 거다. 거기에 포인트가 될 만큼만 정확한 교육을 해 주려고 한다.”

- AFC U19 챔피언십 예선, 사람들은 당연히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통과가 당연하긴 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보기에는 이제 만만한 팀이 하나도 없다. 우리보다 위에 있는 팀들을 따라잡긴 어렵지만, 우리 아래에 있는 팀들에게 따라잡히긴 쉽다. 중국이 헤매는 것 같지만 3~5년 뒤 어느 정도 따라잡힐까봐 늘 신경이 쓰인다. 일본과의 유소년 교육 격차는 더 벌어지는 느낌이다. 위기의식이 필요하다. 우리 유소년 교육도 골든에이지 등 자리가 잡히고 있으니 잘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강인의 순간 반응속도는 더 성장할 것이다

“강인이는 앞으로도 성장할 여지가 충분하다. 나는 농담으로 ‘야 스피드 훈련 빨리 해라’라고 한다. 강인이는 근력적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럼 반응속도가 빨라진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스피드 훈련을 따로 해서 100m를 10초에 끊게 만든다면,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지만, 아예 플레이스타일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 강인이에게 필요한 건 근력, 코어 근력, 밸런스의 발전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꾸준히 훈련하면 자연스럽게 나아지고 그럼 순간속도가 좋아진다. 발전 가능성을 고무적으로 본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늘 건 경기운영이다. 자신감 있게 경험을 쌓다보면 어느 순간 경기운영 능력이 확 개선될 것이다. 강인이 경기는 늘 '이강인 활약 모음' 영상으로 보고 있다.”

- A대표로 뽑힌 이재익, 빌드업이 특기인 수비수

“재익이는 빌드업이 된다. A대표팀 코치들이 내게도 와서 그러더라. 이재익 최고라고. 그때 느꼈다. 선수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걸. 보통은 수비 잘 하는 센터백을 좋아할텐데. 나도 빌드업 잘 되는 센터백을 좋아한다. 센터백이 빌드업을 잘 해 주면 한 방에 골이 나온다. 그래서 센터백들에게 ‘너의 패스 하나로 경기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해 주곤 했다. 시대가 그런 센터백을 원하고 있다. 그런 선수를 키우려면 유소년 단계에서 ‘안전하게 해’ ‘걷어내’라고 지시하면 안 된다.

폴란드에서는 이재익이 빌드업에 많이 관여한다는 걸 알고 압박을 당하기도 했다. 재익이는 반대쪽으로 내주는 전환 패스도 된다. 원래 재익이는 몸 동작이 커서 상대가 읽기 쉬웠다. 그럴 때 같은 몸 동작으로 다른 각도로 패스가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즉 짧게 썰어가는 빌드업을 상대가 압박한다면 반대쪽으로 전개하면 되고, 전환 패스를 끊으려고 하면 썰어 가면 된다. 치킨처럼 반반이어야 한다. 상대 압박을 몇 번 잘 풀어내면 그때부턴 압박이 안 들어온다. 그런 점들을 대회 도중에 조언해 줬고, 이재익의 빌드업은 대회 도중에 성장했다.

재익이는 재미있고 튀는 성격이다. 이번에 A대표팀에서 그런 인터뷰를 했더라. 내가 축하한다는 연락을 지한테 안 했다고. 그렇게 톡톡 튀는 성격을 싫어하는 지도자도 있다. 예전 같으면 말 잘 듣는 애들만 좋아하지. 엄원상, 황태현 이런 친구들은 착해서 예나 지금이나 사랑받는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재익이처럼 튀는 애들도 있어야 시너지 효과가 난다. 어쩌면 이것도 팀 구성에 대한 내 노하우일수도 있겠지. 다양한 아이들을 잘 버무리는 게 중요하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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