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서귀포] 김정용 기자= 정운의 기록은 작년보다 감소했다. 그러나 정운 자신은 지난해보다 올해 더 팀 기여도가 높은 윙백이 됐다고 자부한다.

정운은 크로아티아에서 펼친 활약을 뒤로 하고 지난해 제주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국내로 돌아왔다. 지난 시즌 32경기 1골 5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베스트 레프트백으로 선정됐다. 이번 시즌에도 주전으로 뛰며 26경기 1골 3도움을 기록 중이다. 경기당 공격 포인트만 따지면 지난 시즌보다 나쁜 페이스다.

그러나 9일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정운은 “작년에 할 줄 몰랐던 걸 지금은 한다”고 말했다. 정운은 자신의 팀 기여도가 왜 높아졌는지 차분하게 설명했다.

 

산드루, 모제스, 김민우를 연구했다

정운은 어린 시절부터 수비수로 뛰었다. 센터백, 수비형 미드필더, 레프트백을 겸하다가 점차 왼발의 위력을 살릴 수 있는 레프트백으로 포지션이 정해졌다. 스리백에서 뛴 적은 거의 없었다. 포백의 레프트백으로서 수비를 튼튼히 하다가 빠르게 측면을 타고 올라가 왼발 크로스를 날리는 플레이가 특기였다. 정운의 왼발은 K리그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편이다. 지난해와 올해 모두 왼발 직접 프리킥으로 득점했다. 특히 올해 상주상무를 상대로 넣은 프리킥은 38m 거리에서 날린 엄청난 킥이었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제주가 스리백 중심으로 돌아서며 정운의 역할에 변화가 생겼다. 제주는 공격적인 스리백을 쓴다. 정운 뒤에 배치되는 오반석이 왼쪽 측면을 폭넓게 커버하면, 정운은 자주 전진해 윙어처럼 플레이해야 한다. 작년엔 그럴 때도 사이드라인을 밟고 서 있다가 왼발 크로스를 날리는 플레이를 반복했다. 그러다 반대쪽을 보면 공격수 출신 오른쪽 윙어 안현범이 돌파, 문전 침투 등 다양한 공격을 병행하고 있었다.

단조로운 공격 패턴의 한계를 느낀 정운은 스리백을 쓰는 팀의 영상을 폭넓게 찾아보며 자신의 경기 영상과 비교, 대조했다. 유벤투스의 알렉스 산드루, 첼시의 빅터 모제스, 수원삼성의 김민우 등 좌우를 가리지 않고 주로 공격적인 윙백의 플레이를 확인했다. 어떤 움직임으로 상대 마크를 떼어놓고 동료에게 패스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상대 수비를 유인해 동료 공격수에게 기회를 만드는지 관찰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전 등지는 상황을 거의 겪어보지 않았어요. 포백의 풀백은 그럴 일이 없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공을 받으니까 수비를 등질 일이 많아요. 그게 처음엔 어색했어요. 백패스, 횡패스밖에 못 했죠. 그런데 지금은 등진 상태에서 동료 선수와 호흡을 맞춰 논스톱으로 패스하고 바로 침투하는 3자 패스 같은 플레이를 할 줄 알게 됐어요. 등진 자세에선 패스하는 발도 바뀌어요. 원래 쓰던 왼발이 아니라 오른발로 패스해야 안쪽으로 줄 수 있죠. 그래서 오른발로 돌려 치는 플레이도 익혔어요.”

정운은 스리백이 여전히 스트레스를 준다고 말했다. 원래 특기는 프리한 상황에서 날리는 왼발 크로스였지만 자기 특기만 고집하면 팀 공격에 한계가 생긴다. 여전히 스리백의 윙백은 연구 대상이다. 몸에 익은 대로 뛸 수 있는 포지션은 아니다.

연구의 결과 정운은 문전 침투에 의한 득점도 올렸다. 지난 5월 감바오사카와 치른 홈 경기에서 당시 동료 마르셀로의 스루 패스를 정운이 절묘한 배후 침투로 받은 뒤 선제골을 터뜨렸다.

 

국가대표, 의식하지 않고 차분히 기다린다

정운은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시절부터 대표팀 발탁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된 선수다. 감바전 득점 장면을 슈틸리케 감독이 현장에서 보고 갔다. 그러나 결국 발탁되지 않았다. 한국은 한때 좌우 풀백 자원의 연이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어려움을 겪었다. K리그 베스트 레프트백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법했지만 대표팀 감독의 선택은 매번 빗나갔다.

정운도 한땐 기대가 컸지만 이젠 마음가짐이 편해지고 있다. 대표팀은 신태용 감독 부임 이후 스리백을 병행하고 있다. 12월엔 국내파의 비중이 큰 동아시안컵도 열린다. 대표팀을 꿈꾸는 K리거들이 가장 기다리는 대회다. 그러나 정운은 그리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몸이 제일 좋았을 땐 조금 기대를 했어요. 슈틸리케 감독님이 골을 보고 가셨던 그때요. 그땐 저와 대표팀을 연관짓는 기사도 많았거든요. 당연히 사람인지라 기대가 있었는데 못 가고 있죠. 기대감이 조금씩 없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기대가 높을수록 힘이 조금 빠지더라고요.”

대신 정운은 K리그 이야기를 했다. “올해 많이 느낀 게, 상대팀이 저희 팀에 맞춰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 팀이 강해졌다는 뜻 아닌가 싶어요. 경기 중에도 느끼거든요. 예전과 달라진 건 우리 팀 선수들이 주눅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제 전북현대와도 경기했지만 우리가 더 강한 팀같이 느껴지고, 예전에 전북에 가졌던 두려움보단 자신감이 커졌어요. 스플릿 라운드에서도 자신감을 갖고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

 

제주 유부남 선수의 추석

정운은 크로아티아에서 뛰던 시절 결혼했다. 지금은 아내, 작년에 태어난 첫 딸과 함께 클럽 하우스 근처에 산다.

이번 추석은 이례적으로 긴 황금 연휴였지만 축구 선수들에게 명절은 큰 의미가 없다. 설은 휴가 기간과 잘 맞을 경우 휴식을 취하거나 명절을 보낼 수 있지만, 추석은 늘 팀 훈련과 경기를 반복하며 보내야 한다. 이번 연휴에도 K리그가 팀당 두 경기씩 열렸다.

정운의 부모님은 손주를 보기 위해 거꾸로 아들의 집을 찾았다. 정운의 고향은 울산이지만, 명절은 서귀포에서 보냈다.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내진 않았고 전과 튀김 등 명절 음식 몇 가지를 해 먹으며 명절 기분을 조금 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 구경을 나갈 예정이었다. 다른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딸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명절 인사를 대신했다.

요즘 유행하는 ‘제주도에서 한달 살기’처럼 정운 가족은 본의 아니게 ‘제주도에서 X년 살기’를 체험하는 중이다. 첫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서귀포에서 키우는 건 약간 제약이 있다. 각종 가게와 편의시설이 제주시에 더 많기 때문에 과거엔 제주시에서 출퇴근하는 선수들도 많았다. 정운은 클럽하우스 근처에 사는 덕분에 집, 훈련장, 경기장이 모두 가까운 거리에 있는 최상의 환경에서 운동에 전념하고 있다. 쇼핑을 거의 포기한 아내에게 고마운 부분이다.

“아내는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이야기해줘요. 육지에 비해 시끄럽지 않고, 사람에 치이지 않으며 살 수 있어 좋다는 점을 이야기해요. 근처에 백화점이나 복합 쇼핑 공간만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아쉽네요. 가까운 곳에 마트가 있어서 아기를 위한 문화센터는 충분히 보낼 수 있고요. 아내 입장에선 거의 혼자 키우느라 힘든 점도 있을 텐데, 늘 고마워요.”

정운 가족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때 맛집과 카페를 찾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제 맛집 탐방은 거의 끝났고, 즐겨 가는 집이 몇 군데 생겼다. 하나 추천해달라고 하자 정운은 중문에 위치한 한식당 ‘맛있는 밥상’에서 가족뿐 아니라 제주 선수단이 곧잘 식사를 한다며 무난한 맛집으로 추천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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