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작성된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경기 리포트. MLS 홈페이지 캡처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작성된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 경기 리포트. MLS 홈페이지 캡처

[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에서 인공지능(AI)으로 작성한 경기 리포트를 올려 논쟁이 일었다.

MLS는 지난 1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마이애미와 애틀란타유나이티드, 올랜도시티와 밴쿠버화이트캡스 등 리그 2경기에 대한 리포트를 게재했다. 해당 리포트 서두에는 ‘MLS 생성형 AI로 작성’이라고 명시했다.

생성형 AI는 세계적인 화두이자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다. 2022년 ‘챗GPT’의 등장으로 생성형 AI가 대중화됐으며 사용자의 입력값에 따라 대화는 물론 그림, 음악, 영상 등을 생성할 수 있어 AI가 접목될 수 있는 수많은 산업의 판도를 뒤바꿀 기술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번에 MLS가 경기 리포트를 생성형 AI로 작성한 것도 이와 맞닿아있다. MLS는 해당 경기 리포트 말미에 “이 기사는 경기 데이터를 기반으로 자동 작성됐으며, 편집부의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라고 명시했다. 즉 MLS는 생성형 AI가 작성한 초고를 사람이 퇴고하는 과정을 밟는 대신 생성형 AI에게 모든 권한을 맡긴 셈이다.

MLS는 경기 리포트에 대한 설문조사로 피드백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 ‘애슬론 스포츠’는 “MLS는 사람들이 생성형 AI 작성 콘텐츠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파악하고, AI가 작성한 기사의 품질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을 모으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분석했다.

이번 MLS의 AI 리포트에 대해 현지 언론인들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미국 ‘CBS 스포츠’ 등에서 MLS 전문가로 활동하는 톰 보거트는 “형편이 없다. 그것도 대단히”라며 격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스포츠 전문 매체 ‘디애슬레틱’의 셉 스태포드블루어도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고 혹평했다.

생성형 AI가 작성한 경기 리포트의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은 아니다. AI를 통해 작성한 두 개의 경기 리포트는 자세한 분석이 담겨있기보다 단순 사실이 나열된 형태에 가깝다. 생성형 AI 특성상 경기 데이터도 직접 수집하지 않고 이미 통계 업체 등에서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다. 품질이 높지 않을지언정 경기 리포트가 갖춰야할 요소들은 들어있다.

현지 언론인들은 생성형 AI로 인해 축구계 종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등용문이 사라졌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MLS 홈페이지에는 매치데이 프리뷰와 리뷰를 비롯해 다양한 콘텐츠가 게재되고 있다. 단순 정보 전달 기사는 물론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 특집처럼 심도 있는 내용도 다룬다.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축구기자들도 MLS에 글을 기고하는 시절을 거쳤다.

보거트는 “경험상 MLS 글에 대한 인건비는 그리 비싸지 않다. 나는 그곳에서 귀중한 발전을 이뤘고, 수많은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라며 MLS의 실험이 사람을 AI로 대체하는 거라 내다봤다. 스태포드블루어도 “이것은 누군가에게 소중한 첫경험”이라며 생성형 AI 도입을 반대했다. 둘뿐 아니라 MLS 관련 매체에 몸을 담고 있는 기자들은 일제히 MLS의 행보를 비판했다.

돈 가버 MLS 총재(본문과 관계 없는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돈 가버 MLS 총재(본문과 관계 없는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스포츠 종사자들의 격렬한 반대는 ‘신 러다이트 운동(New Luddite movement)’으로 미국 ‘CNN’ 등에서 조명한 현상과 일맥상통하다. 산업혁명 시기 기계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쉈던 ‘러다이트 운동’처럼 생성형 AI가 노동자들을 대체하는 것이 해당 업계 종사자의 노동권을 해치는 걸로 인식하는 것이다.

AI가 경기를 직접 취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번 반발의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경기 리포트의 경우 정보 전달 측면에서 AI가 오히려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AI는 실제 현장을 체험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장감이나 지표로 드러나지 않는 사건에 대해 얘기할 수 없다.

기사도 일종의 창작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예술문화계에 대두되는 AI의 순수성 논란과도 이번 현상을 연결지을 수 있다. 올해 초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영화 ‘브루탈리스트’와 ‘에밀리아 페레즈’는 배우들의 외국어 발음을 보다 완벽하게 만드는 데 AI를 사용해 연기와 영화예술의 순수성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AI가 보조 도구로 사용돼도 논란이 이는데, MLS는 아예 콘텐츠를 AI로 제작하고 사람의 손길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에서 더 큰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무수한 반대 의견에도 세계적인 추세를 고려하면 MLS의 경기 리포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성형 AI가 책임지게 될 것이다. 경기 리포트에 한한다면 사람보다 생성형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이번 논란은 MLS, 나아가 축구계가 어느 수준의 콘텐츠까지 AI로 제작할 수 있느냐는 논의로 확대될 수 있다. 축구계에는 이미 AI를 통한 선수 스카우팅 데이터 분석, 훈련법 및 세트피스 전술 개선 등을 시행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선수 스카우터나 에이전트가 AI에 대체될 거란 우려도 꾸준히 제기된다. MLS의 시도는 생성형 AI가 그들뿐 아니라 스포츠 언론인도 대체할 가능성을 보여줬으며, 생성형 AI가 앞으로 축구계에 미칠 영향을 보여주는 예시가 될 것이다.

사진=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홈페이지, 톰 보거트 X 캡처,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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