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케인(토트넘홋스퍼). 게티이미지코리아
해리 케인(토트넘홋스퍼). 게티이미지코리아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골 기록을 하나라도 늘리기 위해 가족까지 걸었던 해리 케인은 이제 없다. 최근 케인의 모습은 프란체스코 토티가 연상되는 '패스의 달인'이다.

18일(한국시간) 2020-2021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5라운드를 가진 토트넘홋스퍼가 웨스트햄유나이티드와 3-3 무승부를 거뒀다. 토트넘은 45초 만에 터진 손흥민의 골을 시작으로 전반 8분과 16분 케인의 연속골까지 나왔으나 후반 막판 느슨해진 상태에서 3골을 내리 허용했다.

승리는 놓쳤지만 케인의 득점 생산성은 이날도 여전했다. 케인은 손흥민의 선제골 상황에서 정확한 롱 패스를 제공해 도움을 기록했다. 5골 7도움으로 득점 5위, 도움 1위다.

공격 측면에서 케인의 위력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케인은 토트넘의 슛 11회 중 6회를 혼자 날렸는데, 그 중 2골을 넣고 한 번은 골대를 맞히면서 높은 효율을 보였다. ‘효율왕’ 손흥민도 슛 2회로 1골을 넣었다. 두 선수가 토트넘의 높은 결정력을 유지시켰다. 케인은 키 패스(동료의 슛으로 이어진 패스)도 2회 기록했다.

최근 토트넘 전술의 특징인 케인의 후방 이동이 이날도 눈에 띄었다. 케인은 4-2-3-1 포메이션의 스트라이커를 맡았지만 좀처럼 상대 문전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토트넘이 수비할 때 케인은 보통 최전방에 서 있다. 그런데 수비에 성공하면, 케인은 패스를 받으려 전방으로 뛰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어슬렁거리며 패스를 받은 뒤 자신을 지나쳐 질주하는 손흥민 등의 동료에게 스루 패스를 날리는 플레이를 택한다. 이 플레이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이는 ‘가짜 9번’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2000년대 후반 AS로마의 프란체스코 토티가 보여줬던 경기 방식과 유사하다. 둘의 차이는 토티가 좀 더 직접 압박을 견디며 절묘한 원터치 패스를 했던 것과 달리, 경기장을 넓게 쓰는 EPL에서는 중앙선 부근의 케인에게 압박이 거의 없기 때문에 편안하게 몸을 돌려 롱 패스를 날릴 수 있다는 것 정도다. ‘스트라이커가 상대 문전을 벗어난 곳에서 상대 센터백을 유인하고, 전진하는 2선 공격수에게 스루패스를 준다’는 ‘가짜 9번’ 운용의 기본 콘셉트가 토트넘에도 적용돼 있다.

토티 이후 다른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가짜 9번’이라는 말의 의미가 넓어졌지만 케인은 가장 토티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한다. 2010-2011시즌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는 애초에 최전방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에는 가짜 9번이라고 하지 않고 4-3-1-2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고 회고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2012년경 스페인 대표팀의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패스 능력이 좋은 공격수처럼 뛰었을 뿐 이를 통해 변칙적인 공격 리듬을 만들지 못했다. 이들과 비교하면 케인의 최근 역할은 토티와 비슷하다.

웨스트햄전 세부 수치를 보면, 볼 터치 횟수는 케인이 70회로 손흥민의 50회보다 많았다. 그런데 상대 페널티 지역 안에서의 볼 터치는 손흥민이 5회였던 반면 케인은 단 2회에 불과했다. 케인의 슛 6회 중 5회는 중거리 슛이었다.

케인이 플레이메이커처럼 뛰고 있지만, 키 패스는 손흥민이 3회를 기록해 오히려 2회인 케인보다 많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손흥민이 케인보다 더 전진한 위치에서 연계 플레이를 하다보니 나온 현상이다.

케인이 내려간 만큼 손흥민은 자주 전진하는데, 이때 레프트백 세르히오 레길론 역시 빠른 속도로 올라가며 손흥민과 거리가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한다는 점도 특이사항이다. 토트넘의 세 번째 골에 이 플레이가 잘 반영돼 있다. 피에르에밀 호이비에르의 전진 패스를 받은 손흥민이 오버래핑하는 레길론에게 다시 전진 패스를 보냈고, 레길론의 크로스를 케인이 헤딩으로 마무리했다.

케인의 대단한 점은 어시스트에 비교적 치중하면서도 경기당 1.0골(5경기 5골)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손흥민이 경기당 1.4골(7골)로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어 팀 내 2위로 밀렸을 뿐 리그 최상급 득점력이다. 2선으로 내려가서 공을 뿌리다가 기회가 나면 문전으로 침투해 마무리한다. 이 점 역시 2007년 유로피언 골든슈(유럽 통합 득점왕)를 수상했던 토티를 연상시킨다.

앞으로 케인의 ‘미드필더화’가 도를 지나치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이 주제 무리뉴 감독의 과제다. 전반 마지막 장면은 케인이 문전 수비에 가담, 웨스트햄의 득점 기회를 몸으로 저지한 뒤 엉덩이를 문지르며 라커룸으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케인은 세트피스 상황이 아닐 때도 후방까지 내려가 수비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는데 이는 비효율적이다. 특히 스트라이커 케인이 걷어내기를 3회 기록했다는 건 매 경기 반복될 경우 문제가 있는 기록이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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